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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o Jul 11. 2020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심리상담사 S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벌써 심리상담이 다 끝났네요. 일곱 번의 상담 동안 한 말이 올 한해 제가 했던 말보다 많았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시간, 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상담 가는 날이 설렜어요. 그런데 상담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기분이 찝찝했어요. 선생님에게 완전히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못했거든요. 저 ISTJ잖아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저 자신을 감추는 방어기제가 요즘 더 세진 것 같아요. 이건 치료니까 괜찮다고 되뇌었지만,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 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못 다한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대신 하려고 해요.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요즘 혼자 있으면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이에요. 왜 이 문장이 내 머릿속에 박혔을까 생각해보니 스무 살 때의 일이 떠올랐어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누나가 한 명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였을 거에요. 누나는 대학교의 계약직 교직원이었는데, 저는 그때만 해도 계약직이 뭔지도 모르고, 교직원이면 좋은 직업인 줄만 알았어요. 원래 교회에서는 모여서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하고, 한탄도 하고, 또 위로도 해주고 그러잖아요. 어느 날 누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쳤어요. 아마 누나에게 특별히 힘든 일주일 이었나 봐요.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왜 인제 와서 누나의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난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의 저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말이라서, 기억의 구석에 처박혀 있던 문장을 끄집어냈나 봐요. 


대학원 조교로 일하던 친구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어요. 요즘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들 학생회장이니 무슨 대회 수상자니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대요. 그 친구들은 큰 실패 없이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그러다 보니 고작 성적이 잘 안 나왔다든가, 인턴에 떨어졌다든가 하는 거로 엄청나게 좌절을 한다고요. 돌이켜보면 저도 20대에는 그렇게 큰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 덕에 그 흔한 알바 한 번 안 하고 공부만 했으니까요. 지금 저의 실패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실패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일지 모르겠어요. 밥을 굶거나 길거리에 나앉게 된 건 아니니까 말이에요. 누군가는 저의 좌절을 그저 징징대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겠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부모님이 기뻐하셔서 좋았어요. 그래도 아들이 있어 보이는 연구원이라는 직업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 밑에서 일한다는 데 부모님은 꽤 뿌듯해 하셨나 봐요. 하지만 복잡한 속사정을 거쳐서, 결국 저는 회사에서 잘렸어요. 기분은 좀 나빴지만, 사실 그 전부터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괜찮았어요. 이제 내가 생각한 걸 내 손으로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어요. 무조건 성공한다는 자신감도 넘쳤죠. 물론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어요. 무모하다고, 안 될 거라고요.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을 때니 그 말이 귀에 들어오겠어요?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그러고 나서 연락하겠다 다짐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잠시 멈췄어요. 그런데 일 년이 지나, 저는 그 일에 실패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도 창피한 처지가 되었네요. 


그래도 첫 번째 폐업을 뒤로하고,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어요. 창업 지원 사업에도 서류를 넣어봤지만 탈락했고요, 사무공간 입주를 지원해주는 사업도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끄적거리고는 있는데 큰 반응은 없네요. ‘출판업계는 날 알아줄지도 몰라’하고 출판공모전도 나가봤어요. 당연히 광탈이고요.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출판사에 출간기획서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 연락 오는 곳은 없어요. 작가가 될 상은 아닌가 봐요. SNS에 여행 에세이를 추천하는 글도 올리고 있는데, 제가 봐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는 아닌 것 같아요. 여행 가서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아무도 보지 않네요. 심지어 모창 공모전도 지원해봤어요. 잘되면 행사비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완전히 끊겨버린 인간관계는 여전히 복구 불능 상태고요.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말을 안 해서 목이 항상 잠겨있어요, 요즘. 


이게 다 최근 일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 샤워를 할 때면 ‘이 짧은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회사에 다시 복귀하는 꿈을 꿨어요. 꿈에서 예전 제 책상에 다시 앉으면서 참 다행이라며 안도했어요. 꿈에서 깨자 두 가지 마음이 들었어요. 하나는 그걸 좋아했던 내 모습이 싫었고, 다른 하나는 그게 꿈이라는 아쉬움이었어요. 그 더러운 곳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울 정도라니, 갈데 까지 갔나 봐요. 


선생님께서 제 심리검사 결과 불안이 굉장히 높다고 하셨잖아요. 최근에 갖가지 실패를 맛봐서 그런가 봐요. 사회과학에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과거에 일어난 일이 하나의 경로를 따르면서 그다음에 일어날 일과 선택을 제약한다는 거예요. 냇가에서 어지럽게 널린 디딤돌을 밟고 건널 때 돌 하나를 먼저 밟으면 그다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돌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저는 최근에 일을 벌이는 족족 다 실패하고 있어요. 이게 가까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제 미래는 실패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데 제가 시도했던 일들이 실패한 것보다, 정신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가장 수치스러워요. 왜냐면 삶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거든요. 자살이니 죽음이니 이런 무서운 단어까지는 아니에요. 그냥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 세상이 아니라거나,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갑자기 차에 치인다거나 하면 좋겠다는 정도요. 김영하 작가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남으로써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고 말해요. 저는 리셋보다 완전한 망각을 원한 것 같아요. 처음 사업에 실패하고 방콕으로 도망갔을 때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제가 지워지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어차피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대신 저의 모든 기억이 다 지워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 못 할 정도로요. 이렇게 나약한 정신 상태로 추락했다는 게 창피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원인이 모두 저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그동안 저는 누구보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어요. 특히 인간관계에서요. 사람은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것으로 생각해서 가는 사람 굳이 붙잡지 않았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딱히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고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먼저 관계를 끊은 건지, 그들이 먼저 떠나간 건지 애매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지금 혼자거든요. 이것도 경로의존을 따르겠죠. 저는 아마 이상한 성격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인간관계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확률은 낮을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이든, 관계든 시작하기가 두려워요. 어차피 실패할 테니까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자신의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하는 것은 아니냐고,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냐고요. 그런데 저는 누구보다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관점이 비관적이라서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겠지만요. 세상은, 사람들은 원래 긍정적인 걸 좋아하잖아요. 아니, 매사에 꼬여 있는, 성격 이상한 인간으로 치부하잖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을, 그리고 저는 그냥 솔직할 뿐인 것을. 부정적인 모습과 전혀 안 어울리지만, 지금은 로또 때문에 살고 있어요. 매주 토요일이 다가올 때마다 ‘혹시’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있어요. 글도 로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혹시 이런 찌질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혹시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뼛속 깊이 비관적이라, 이 혹시가 역시로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로또에 당첨되는 일도, 제가 작가가 되는 일도 없을 거에요.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 혹시를 믿어보는 것밖에 없네요. 당분간은 뭐라도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살아 볼게요. 당분간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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