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과 노동의 이유

시그널에 대한 서론

by 혜진

우리가 출근하는 이유

회사원으로 산 날이 전체 인생의 40%에 육박했다. 가끔은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이룬 회사원이 얼마나 될까. 늘 탈오피스를 꿈꿨지만 돌아보면 빛나고 재미졌던 날들도 많았다.


회사원이 되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라운지 무료커피와 스낵바, 쾌적한 온습도의 사무실, 꿀맛 같은 점심시간, 죽이 잘 맞는 동료와의 농담, 상사의 격려, 일이 잘 풀릴 때의 희열과 끝난 후의 안도감, 가끔은 기다려지는 회식. 게다가 보람도 만만치 않다. 레벨 업하는 커리어, 경제 인구로서 사회에 일조한다는 성취감,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위안. 그렇지만 이 수많은 장점 모두가 회사를 다니는 첫 번째 이유가 될 순 없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재미 삼아 함께 로또를 구매하는데 그중 한 명이 얘기한다. ‘저 월요일에 출근 안 하면 당첨된 줄 아세요.’ 이 말엔 ‘돈 있으면 이 놈의 회사 당장 때려치운다', '돈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회사 다닌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출근하는 첫 번째 이유는 누가 뭐래도 돈이다. 급여를 못 받는다면 노동의 이유는 즉각 사라진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너무나 명료하고 지당하다. 허나 생각보다 많은 동료가 모르거나, 간과하거나 나와 무관하다 여기거나 애써 외면하는 걸 봐 왔다. 해서 한 번은 짧게라도 짚고 싶었다.


직장인의 영원한 테마, 월급

회사원은 월급으로 매달 경제적 삶을 꾸린다. 주거비, 식비, 통신비, 교통비, 공과금, 경조사비, 교육비 등 매달 일정한 돈이 필요하다. 피로한 육체에게 지속적인 출근을 도모하기 위한 영양제를 구입하고 피트니스 클럽에도 등록한다. 품위 유지와 기분 전환을 위해 옷과 화장품을 사고 인센티브를 수령하는 달엔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고 만찬을 즐긴다. 월급은 충실하다. 따박따박 통장에 입금되는 급여는 우리 삶을 평온하게 지탱한다.


취업 후 1년 정도는 팍팍했던 학생 때 소비 습관이 남아 있어 카드대금이 월 3-40만 원가량 나왔던 것 같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검소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대출을 받고 자녀가 생기면 자린고비로 유명한 나도 모르는 새 고정비가 거대해진다.

어느 연말,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매년 지급하던 인센티브가 취소됐다고 한다.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국내여행으로 변경한다. 연봉협상 시즌, 물가가 오르는데 급여가 동결된다. 외식비를 줄인다. 이참에 아이가 가기 싫다 실랑이하던 발레 학원도 그만두게 한다. 희망퇴직 공고가 뜬다는 소식이 들린다. 피트니스 클럽 갈 시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운동삼아 해본다. 대출을 어째야 하나 고민이 든다. 월급이 오르면 소비를 늘리고 어쩌면 저축도 한다. 반대로 월급이 줄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은 꿈도 안 꾼다. 근로소득자인 직장인은 어쩔 수 없이 급여에 종속된 삶을 산다. 급여는 노동의 제1 목적이다.


너무나도 명료한 기업의 목적

직원의 입장을 회사로 바꿔본다. 기업은 고객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서 매출을 창출하고 돈을 번다. 매입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그 값을 지불한다. 직원에게 급여를 주고 임차료, 관리비, 각종 세금, 마케팅비, 수수료, 소모품비, 교통비, 차입금 이자비용을 부담한다. 그러고도 남으면 그게 바로 회사의 이익이 된다. 이익이 계획보다 크면 신규 투자를 하거나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고 주주에게 배당을 하기도 한다. 이익이 회사에 쌓이면 잉여금이 된다.


그렇다면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는 어떨까. 우리가 소득이 줄면 가장 먼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처럼 회사도 줄일 수 있는 비용을 찾아낸다. 잉여금이 있다면 그걸로 잠시 버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담당부서를 압박한다. 손실이 길어지면 회사는 부동산, 자회사 등 갖고 있던 자산을 매각하기도 한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지면 기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인수하기도 한다.


급여가 직장인의 제1목적이라면 기업의 제1 목적은 무엇일까. 대학 1학년 경영학원론 첫 시간, 교수님이 기업의 목적을 물었다. 학생들의 답은 다양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업도 있고 수명을 연장하는 제품을 만들어 인류를 구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도 있다. 교수님은 모두 훌륭한 답이지만 제1 목적은 누가 뭐래도 '이윤추구'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고, 비전과 가치를 달성을 할 수 없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이십여 년이 지난 그날의 수업이 강렬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몇 달간 이익을 내지 못한 어느 스타트업의 대표는 급여일마다 걱정을 한다. 멋진 피칭으로 받아낸 투자금이 서서히 줄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재투자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쓴다. 역시 쉽지 않다. 비용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것저것 살펴봐도 결국엔 인건비를 줄여야겠다는 계산이 선다. 직원 중 누군가는 바로 다음 달에 출근의 제1 목적이 상실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업무를 담당하든 회사원이라면 적어도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내 회사가 제1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은지, 만약 벗어났다면 언제 제자리로 올 수 있을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아야 한다. 그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염두하고 상황이 닥치면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라면 언제나 예의주시해야 한다. 앞선 글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스타트업은 속도전이다. 다운사이징 또한 초스피드다.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다. 예민하게 회사의 시그널을 읽어야 한다. 시그널 중 가장 객관적이고 믿을만한 건 역시 회사의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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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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