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계속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20대까지의 나는 단 한번도 전업주부인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살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일과 가정의 양립, 가사노동의 분담 등에 대해 남편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저 일하면서 아이들 키우겠지 라는 두루뭉술한 생각만.. 그게 얼마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지도 모르고 그저 ‘우리 결혼해요’ 에만 빠져 모든 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생각 없던 철부지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나는 워킹맘의 현실을 직시했다. 시간에 쫓겨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종일 일한 뒤 퇴근 후 다시 육아를 해야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여기저기 눈치보고 부탁해야하는 처지. 시댁이나 친정의 부모님께 맡기면 이런 저런 간섭을 받아야하고, 기관이나 제3자에게 맡기기엔 온전히 놓이지 않는 마음.
시간에 계속 쫓겨야하는 일상도 자신없었고, 눈치보고 간섭받고 마음 졸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직접 오롯이 지켜보며 나의 교육관대로 키우고 싶기도 했다.
그러려면 내가 일을 버려야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전업주부의 모습을 강요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자발적으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게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 때는 몰랐다. 일을 버리기는 쉬워도 다시 시작하기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었으면 그 선택에 만족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그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마음편히 즐기며 살지, 나는 왜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까… 언젠가는 다시 내 일을 가져야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항상 시간에 쫓기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약간의 틈만 생기면 뭔가를 배우러 다녔고, 공부를 하거나 손으로 사부작댔다. 그런 욕구 때문에 때로는 아이들을 방치했고, 아이들로 인해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게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밥솥의 밥이 다 되길 기다리는 10분의 시간도 아까워 그 찰나의 시간에도 손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 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없어져버리는 건 내 시간, 내 일이었다. 왜 나의 일은 항상 후순위가 되어 밀려나야하는걸까.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이 항상 원망스러웠고,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의 노고를 모르는 게 아님에도, 집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틈만 나면 쉬지않고 뭔가를 해댔으니 쉬지 못한 몸은 탈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힘들다 투정말고 피곤하면 쉬라고 말했지만, 남편의 그런 말 마저도 야속했다. 쉬라고 쉽게 말할 수 있어 좋겠다. 육아와 가사노동의 시간 제하고 쉬는 시간까지 제하고 나면 나는 언제 내 일을 준비할 수 있겠니.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뭐라도 하나 이루었어야 할텐데 그러지도 못했다는 것이 또 나의 문제였다. 조바심으로 결정한 일들이 내 마음이 진정 원하던 일이 아니다보니,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이내 방향을 틀었다. 공무원 시험, 외국어 강사, 선물포장, 손뜨개, 북아트, 번역… 참 많이도 건드렸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상황에 맞지않고, 참 이유도 여러가지… 처음부터 신중하게 선택해서 한 가지 일을 주욱 준비해왔다면 어느 분야든 전문성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쉬는 시간 없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나 해놓은 것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이야기 속 대학시절 동기들과 선배들의 경력은 어찌나 화려한지… 한 때는 잘 나가는 줄 알았던 나는 어딘가에 내놓을 내 소속과 이름을 잃고 움추러들고 있었는데, 바로 내 옆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들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대기업 혹은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전문직을 가졌거나 꽤 높은 직급의 공무원 이거나… '오, 그렇구나. 어울린다. 대단하네' 류의 말을 반사적으로 꺼냈지만, 속으로는 너무 쓰렸다. 패배감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졌지만 자존심 때문에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마치 내 가치관에 따라 일 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선택한 척, 내 삶에 만족하고 있는 척, 억지 웃음을 지었다.
얼마전까지는 나도 그 비슷한 부류에 속해있었는데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만 혼자 남겨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일을 그만두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으나 때로는 그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곤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많은 이들 뒤에 나만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공허했다.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정한샘/조요엘, 열매 하나
나의 마음을 이렇게 그대로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책을 몇 장 넘기자마자 만난 이 문장에서 나는 이미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문장을 읽자마자 그 때의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분명 내가 선택한 일인데 그 선택이 나를 내내 힘들게했다. 그 때문에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뭘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내 삶의 방향이 약간의 지그재그이면 어찌되었건 어딘가로 향해 가고 있었을텐데 가던 길을 거꾸로 되돌아오기도 하다보니 나는 방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얼 하고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사는 게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던 그 때.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던 시간.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나은 게 아닐까?
모든 것을 멈출 필요가 있었다. 힘을 빼야했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았는데 그저 시간이 흘러가게 두었다. 갑자기 달라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불안해보였는지, 남편은 낮에 뭐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이제는 뭐가 되든 해보는 게 어떻냐 말을 건네기도 했다.
가만히 있자는 마음을 먹고 얼마간 지냈을까, 집에 있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난독증인가 할 정도로 책이 잘 안 읽혔는데 어느새 나는 책이라는 우주에 빠져들었다. 처음으로 동네 도서관에 가서 대출증을 만들었고, 조금씩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책으로 우리가 치유된다는 걸.
매일 아침, 책을 펴고 읽던 곳을 눈으로 찾으며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들이키는 순간. 저절로 숨이 크게 내쉬어지고 몸이 사르르 녹으며 몇 번의 긴 호흡을 한다. 볼썽사납게 날뛰던 내 정신이 다시 땅에 내려와 발딛고 선 기분. 나의 뇌를 뒤엉켜 꽉 묶고 있는 것 같던 보이지 않는 실이 그제서야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 책을 읽으면 뒤죽박죽인 정신상태와 혼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책 읽는 시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나를 완성하는 것은 책 읽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세상을 만났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했던 문장들이 쓰인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아닐까.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정한샘/조요엘, 열매 하나
다시 읽게 된 책은 내게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마음가짐을 알려주었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언행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해주었다. 가끔 두루뭉술하게 느끼던 나의 감정을 명료한 언어로 표현된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몰랑거렸다. 책에서 만나는 문장을 통해 얻는 위로는 강력했고, 중독성이 있었다.
에세이처럼 감정을 위로하는 책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고 꼬리를 물고 계속 찾아나가야 하는 비문학책도 그랬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갈 때,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이 저 책에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갈 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알아가는 즐거움이 희열이었고 쉼이었다.
여전히 나는 이뤄놓은 것이 없고 객관적인 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으로 나를 채워가는 즐거움을 알고나니 분명히 전과는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가끔은 흔들리지만, 예전보다는 단단하게 여물고 있었고 이제는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가 책을 통해 얻게된 것이 많으니 아이들도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 나가길 바라는 마음.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모든 것은 책의 우주 안에 다 있더라. 정한샘 작가도 책 속에서 아이들과 책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의 후반부에는 책을 주제로 작가와 아이가 주고받은 편지를 담고 있다.
내가 책 세계에 빠져있다고 아이들에게 책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의 시간을 책으로 채워주고 연결해주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제는 제법 혼자 글을 읽는 아이들과 조금씩 책으로 소통하는 단계. 아직까지 우리 아이들은 책으로 휴식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해주니, 그것만으로도 ‘엄마 뿌듯’ 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함께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책 읽기를 교육의 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으며, 어떠한 지점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책이 그렇듯 아이에게도 책이 어떤 순간에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로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정한샘/조요엘, 열매 하나
나는 얼마 전부터 아이들과 주말 책파티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과자파티를 하는 거다. 같이 읽은 책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각자 자기가 읽은 책을 소개해주기도 하는 우리집 북클럽. 책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한 부분을 같이 검색해보기도 한다. 물론 매주 하지는 못하지만, 가늘게라도 끈을 이어나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작가와는 달리, 책읽기를 교육의 한 도구로 생각하기도 해서, 우리는 한 주제의 책을 공부하듯이 읽을 때도 있다.
다행히 아이들은 책파티를 좋아해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이유가 첫번째인 것 같긴 하지만(ㅋ),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워한다. 새로 알게된 것을 자신의 언어로 엄마에게 설명해주고 싶어하는 아이들. 엄마의 질문에 대답해주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오예, 오늘 책 파티 하는 날이다!"
이 말을 들으면 웃게 된다. 우리의 책모임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에서 작가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아이가 “우리 엄마는 공부 때문에 나를 야단친 적은 한 번도 없어. 대신 우리는 마주 앉아 좋은 책을 함께 읽었지.” 라고 말해주면 참 좋겠다.’ 고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공부 때문에 나를 야단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책을 함께 읽었지” 정도로 지금의 시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넓어질 아이들과 나의 세계가 기대된다.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정한샘/조요엘, 열매 하나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는 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딸이 함께 주고 받은 책 편지를 담은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 아이와 책으로 소통하고 싶은 엄마들에게 비슷한 시간을 먼저 보내고 있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책은 Part 1과 Part 2로 나뉘는데, Part 1은 책에 대한 엄마의 기록. Part 2는 책을 좋아하는 딸과 주고 받은 책 편지를 담고 있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세상의 질문들에 대해 엄마와 딸이 함께 읽으며 답을 찾는 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