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젠가 제주에서 꼭 살아봐야지.’
그 마음을 현실적으로 먹었던 건, 3년 전 쌍둥이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제주로 떠났던 내 친구 덕분이었다. 일하다 전업주부로 전향한 지 7년 차 된 내 친구는, 어느 날 문득 ‘나 제주도에 한 달 살러 가.‘ 연락을 하고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와, 저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했었지만 ‘그래도 저건 내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라고 내심 생각했던 내가, 아빠 없이도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을 살아볼 수 있구나, 마음속에서 용기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회사는 군말 없이 일을 받아 쳐내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일을 주었다. 어느덧 ‘언젠가 꼭 제주에 긴 여행을 갈 거야.’라는 생각은 그저 생각이 되고 말았다. 집에 오면 육아도 잘 해내고 싶은 나였기에, 그렇게 쉴 틈 없이, 내 시간 하나 없이 몇 년을 살았다. 자기 전에 단 한 시간이라도 충전을 하고 싶었는데, 유독 잠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그런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나는, 아이들을 재우면서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과 아이메시지를 동시에 확인한 후 작가들에게 원고 방향을 잡아주고 수정 요청을 해야 했기에 머릿속이 정말 여러 갈래로 분할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를 악물고 해냈다.
그러다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선 상사가 문제였다. 현직에 대한 과욕, 너무도 폭력적인 일 진행 방식, 거친 언어, 그리고 ‘나는 옳고 너흰 다 틀려.‘식의 전형적인 빌런 상사. 그의 밑에서 방송을 제작하다가 난, 그야말로 영혼이 갉아먹히는 경험을 했다. 부당하다 느껴도 참았고, 또 참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몸이 아팠다. 수시로 편도선이 붓고, 목소리가 쉬었다. 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걸 참으며 꾸역꾸역 해내니까 이제 내 몸이 아프구나. 이젠 그만해야 한다고, 나한테 시그널을 보내는구나. 그래도 애써 무시하고, 또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너는 별로인 피디야.’를 은연중에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며 자존감을 밟고 나를 깎아내리는 그 비열한 방식에, 한 참을성 하는 나의 인내심이 어느 날 한계를 넘어서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뻥, 하고 폭발해 버린 내 안의 나. 그리고 별안간, 선언했다. 저 이제 더 못하겠습니다.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갔어야 하는 일이었다. 참으면 누가 알아준다고.
그리고 그 선언을 한 날, 바로 실행했던 게 제주도 비행기 티켓 예약, 그리고 3년 전 내 친구가 살았던 제주 숙소 예약이었다. 둘째가 1학년 되면 쓰려고 아끼고 아껴뒀던 육아휴직이었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아직 회사에 정식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인수인계 기간도 남아있을 테지만, 최대한 빨리, 가능한 날짜로 휘리릭 예약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제주에서 살아보기에 앞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로 숙소일 텐데, 나는 다행히도 마음 속에 정해놓은 곳이 있었다. 몇 년 전 친구가 살며 전해준 행복감이 전화기 너머로도 밀려온 바로 그 곳, 그게 제주도 어디쯤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면 된 거였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과거엔 한 달 살기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지만 그새 정책이 바뀌어 과거에 왔던 사람들이나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2주간만 묵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을 계획했었지만 이곳에서 2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급히 계획을 수정했다. 사실 추운 2월이라, 푸르른 바다와 오름들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 한 달은 너무 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숙소에서 답을 주었다. 이번엔 처음이니까 2주만 한번 살아봐, 라고. 그렇게 정해진 나의 2월의, 2주간의 제주. 그렇게 갑자기 꿈이 현실이 되어버리던 순간 만난 그 숙소가, 그 공간이, 내 집 우리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일 그리운 장소이자 풍경이다,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