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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Dec 04. 2021

당신의 희망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사원 2년 차 때, 나에게도 첫 후배가 생겼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어딜 가나 직급으로도, 나이로도 막내였다. 새로 들어온 후배는 나와 동갑이었다.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직급이 낮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풋내기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짧은 시간 동안 깨닫고 배운 것들이 많았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그가 내가 겪은 어려움을 덜 고생스럽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내가 하는 업무와 그동안 배운 것, 소소한 노하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 날, 과장님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신입사원 교육은 대리 이상이 하는 거야. 앞으로 신입사원한테 업무 알려주지 마."


그 순간 내 안에 무언가가 쨍그랑-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배가 과장님께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한 걸까? 아니면 과장님이 내가 그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모습을 본 걸까? 자세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을 지우고 회사 생활의 새로운 명제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신입 사원 교육은 대리 이상이 한다. 신입 사원 교육은 대리 이상이 한다.


***


"매니저님 연차가 어떻게 되죠?"


세 번째 회사에서 1년을 보내고 난 후, 새로운 팀에 합류했다. 팀장님은 첫 면담 자리에서 아직 인사 정보가 넘어오지 않았다며 연차를 물었다.


"9년 차요."

"9년 차. 파트장 해도 되겠네요. 운영 파트 맡아볼 수 있겠어요?"

"제가 커버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운영 업무, 그리고 광고 쪽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 순간 십 년 묵은 체증이 훅-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내 판>을 드디어 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 6개월간 겨우 사원이라서, 겨우 대리라서, 겨우 팀원이라서 <남이 짜 놓은 판>에 비집고 들어가 남이 정해준 방식으로 일했다. 내 방식과 내 관점을 적용하려고 들면 언제나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넌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냥 내 말을 들으라고.


8년 6개월 간 회사가 싫은 이유를 찾지 못해서 끊임없는 방황을 했다. 그러면서도 회사를 놓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용기 없고, 대안 없고, 확신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승진을 시켜주지도 않으면서 책임을 더 주겠다는 이 제안에 오랫동안 산산이 부서졌던 마음이 비로소 괜찮아졌다. 그제야 긴 방황의 원인을 알았다. 나는 조직에서 내 판을 짜고 싶은 사람이었다.


***


두 번째 회사에서 첫 승진을 했다. 첫 회사에서 2년을 채우자마자 호기롭게 퇴사한 후 알았다. 이직을 하려면 2년이 아니라 최소 3년 정도의 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6개월의 백수 기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 첫 회사에서 신입 사원으로 2년, 두 번째 회사에서 신입사원으로 3년을 보내고 대리가 되었다. 5년 만에, 누군가에게 내 업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리가 된 것이다.


승진 후 프로젝트의 메인 담당자가 되었고, 두 명의 후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우리가 하는 일에 반짝임을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반짝임을 얻기 위한 스몰 스텝을 가이드로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그냥 하면 ."였다.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답답했다. (지나 보니 하라고 말하던 사람도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일을 받아왔던  같다.) 그냥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탁월하게 하려면  해야 하는지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목적이 있어야 실행 방법을 설계할  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방식으로 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에  역량의 50% 투입했다. 함께하는 후배들이 기꺼이 자랑스럽게 희망을 가지고 나와 일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비전을 세워야 했다. 그때부터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습관을 들였다. 비록 나는 팀장이 시켜서 임원의 입맛에 맞는 의미 없는 프로젝트를 수행할지라도  사실을 곧이곧대로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 후배들과 일할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금 와서 정리해보니 <비전, 가이드, 존중>이었다.


#비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희망이.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확신, 그걸 눈에 보이는 성과로 연결시키는 스토리텔링이 진실보다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그게 진실이다. 진실은 믿을  있는 , 믿고 싶은 것이.


#가이드

좋은 일이니까 잘해보자고 한다면 너무 막막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비전만큼 중요한 것은 명확한 가이드이다. 일정 계획 수립, 업무 분담, 책임 범위 설정은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 어디까지는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는 서로 협의해야 하는지 선을 공유해야 한다. 내 마음의 바운더리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알 수 없다.


#존중

사람마다 동일한 상황에서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이다. 실수가 잦은 구성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템플릿이 어려워서인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그가 입력해야 하는 영역을 줄이고 수식을 활용해서 자동 입력할  있게 했다. 엑셀 파일은 점점 온갖 수식으로 가득 찼고, 용량은 커져갔고,  번의 실수가 파일 곳곳에 오류를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가이드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줄  있어? 여기 네가 작성한  셀에 이익률이 150% 적혀있는데, 상품 마진이 150%  수는 없거든."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익률이랑 마진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아차! 그는 예술 전공이었다. 그날 반나절 동안 이익 구조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그는 그날 이후로 어떠한 오류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원리를 일단 이해하기만 하면 누구보다 응용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일을 '못하는'사람은 없다는  알았다. '다르게'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름의 원인을 찾을  있다면, 관점을 전환하게 도울  있다면 누구든 함께 일할  있었다. 그리고  관점을 전환하는 데는 비전과 가이드가 힘을 발휘했다.


후배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매일이 충분했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 부담스러워 도망갈까  말하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그들을 정말로 사랑했다.  안에 있는 것들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다른 팀에 찾아가 부탁을 하는 일도, 비난을 받는 일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그들이 나와 일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


시계를 다시 돌려,  번째 회사를 다니는 지금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겨우 9 , 겨우 팀원이다. 남이 만든 조직에서 남이 만든 사업모델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조직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할  정도는 정할  있게 되었다. 조금 욕심을 내서 비전을 갈고닦아 반짝임의 채도를 높인다면 <누구와> 일할지도 조금은  결정의 영역으로 들여올  있다. 원하는 팀에 가겠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나와 함께  팀원을 끌어올 수도 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있게 되었다는   변화이다.


"신입사원 교육은 대리 이상이 하는 거야. 앞으로 신입사원한테 업무 알려주지 마."


이 말을 들었던 7년 전이 떠올랐다. 귓속에서 윙윙대는 이 한마디는 회사에서 뭔가를 요구하고 싶을 때마다 내 발목을 잡았다. 가고 싶은 팀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손을 들지 못했다.


"9년 차. 파트장 해도 되겠네요. 운영 파트 맡아볼 수 있겠어요?"


이 말은 나에게 <봉인 해제> 신호와도 같았다. 늘 습관처럼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듯이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곤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나니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실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글을 다시 보기가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내가 무엇에 동기부여되는지 기억하고 싶어서다.


 번째 회사로 이직하고 이유를   없는 무기력 방황이 찾아왔다. 출퇴근 20, 유연근무제, 자율 출퇴근제, 늘어난 휴가, 재택근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누리는데 도대체  이러는지   없었다. 이보다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는 직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기력했다.


타인의 희망에 기여할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희망을 공유하고, 그 희망을 향해 발맞추어 나아가는 일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일하며 방황할 때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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