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밤 공부일기
** 매일의 일기는 블로그에 남기고 있습니다.
공부 모임에서 추천받아서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농담>을 읽고 김하나 작가에게 푹 빠져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2년 넘게 들었고 책 <힘빼기의 기술>, <15도>,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다. 요즘 김하나 작가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했는데 팟캐스트를 시작했다니! 바로 구독하고 들었다.
오늘 들었던 에피소드
후반부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여둘톡에서 알려준 성공의 기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한 독자의 댓글을 소개해줬다.
성공한 사람이기에 30대보다 40대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라는 의견에 조심스레 답해본다. 나는 성공 근처에도 못 가본, 내 명의 집도 없는 비혼 마흔 여성이지만 나도 나이가 들수록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가 안정적이어서도, 가진 게 많아서도 아니다. 많은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치며 살아오면서 나 자신과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 안의 우선순위를 깨닫기 때문에 삶이 어느정도 편안해 진다. 그래서 서른보다 마흔이 더 편안하다.
그래, 이게 성공 아닐까?
오늘 이 문장에 마음을 홀딱 뺐겼다.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내가 훔쳐먹는 것이다
김태리 배우의 수상소감을 듣고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왜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매일밤 공부 일기를 쓰는지. 20대 때는 세상이 나를 방치하고 시험하는 것 같아서 매일이 억울했다.
세상이 이렇다는 걸 왜 아무도 나한테 안 알려줬어?
배신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변 사람들을 미워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움은 그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니라 훔쳐 먹는 것이었으니까.
어디서 뭘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악착같이 찾아내는 건 내 몫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세상이 예전보다 두렵거나 밉지 않았다.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걸 배웠다. 처음에는 자세하게 일을 가르쳐주지 않는 동료가 미웠다. 내가 일을 빨리 배워야 본인들도 편할 텐데 왜 저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대하는 걸까?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잘못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배워서는 일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내가 필요한 것을 쏙쏙 찾아내 훔쳐먹으며 배워야 비로소 그게 내 것이 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훔쳐 배움의 진수를 맛봤다. 출판사에 투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티 클래스를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지, 독서모임 리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붙잡고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되는대로 훔쳐 배웠다. 출판사 투고하기를 검색해 블로그 글을 뒤지고, 작가들의 이력을 샅샅이 뒤져 첫 책을 어떻게 냈는지 조사했다
티 클래스를 하는 문화 공간에 무작정 연락해 메일로 내 기획안을 보냈다. 찾아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저는 티 소믈리에 공부를 했어요. 차와 향, 비건 디저트 페어링으로 클래스를 해보고 싶습니다." 영 관심없는 표정으로 날 봐도 상관없었다. 또 말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내 또 말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또 말했다. 가끔은 그런 모습이 보기 답답했는지 누군가 나를 붙잡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기회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또 놓치지 않고 그들은 어떻게 기회를 얻었는지 훔쳐보고 따라했다.
제안 메일을 쓰는 방법, 노련한 척 하는 방법, 매력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방법, 책 읽고 요약하는 법, PT에서 낮고 안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따라했다. 거절당한 기획안이 쌓여갔지만 마음이 꺾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쌓여가는 기획안이 차근차근 아카이빙 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훔쳐먹는 것이다.
이 문장을 쓰던 20대의 김태리도 그랬을 것이다.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디션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차근차근 붙잡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훔쳐보고 따라했을 거다. 오디션 장에 어떤 옷을 입고 갈지, 문을 열고 누구의 눈을 어떻게 바라볼지, 탈락이라고 느끼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없이 허공에 발차기를 하는 순간마다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기회를 손에 쥐는지 놓치지 않고 봤을 거다.
30대가 훌쩍 넘어, 내가 그렇게 훔쳐 배웠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차근차근 짜여진 커리큘럼대로 배운 것이었다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배웠을 것 아닌가. 내가 악착같이 훔쳐 배웠기 때문에, 이 배움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되었다.
브런치북 <내 콘텐츠로 전문가 되는 법>은 그 배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썼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배움의 과정을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훔쳐 배워야만 했던 그 때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세상에 나 밖에 없는 사람처럼, 잠을 자지 않아도 힘이 솟아나는 사람처럼, 굴하지 않고 세상을 붙잡고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외치던 그때의 내가 내가 맞는지 어색할 정도였으니까.
(2:40)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훔쳐먹는 것이다.
https://youtu.be/4hKtDK9mdv4?t=160
어떤 사람의 인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후회할 만한 인생인지 아닌지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존재니까. 타인은 그래서 소중하다. 나에게 무언가 해줘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해주니까. 나 자신을 잊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그때가 어쩌면 우리가 신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 숲 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었다.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화가 되는 게 신기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자신의 이야기로 귀결이 되는 대화를 보며 나의 대화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똑같다. 친구의 고민을 들어줄 때조차 그 친구의 상황에 온전히 몰입하기 보다는 그 주제를 들으며 내 처지와 입장을 생각한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를 온전히 내 안으로 들이는 일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영혼없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온 것 아닐까? 몸만 함께이고 마음은 저 멀리 가 있거나 내 속 깊은 곳에 있을 때 상대는 알아챈다. "너, 그렇게 영혼 없이 들어줄거야?"
공부 리추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보는 기회를 얻었다. 한 달간 우리는 오래된 친구보다, 가까운 가족보다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휘몰아치는 욕망과 좌절 사이 모순된 마음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내가 가장 놀라워하는 지점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공부 기록뿐만 아니라 메이트들의 공부 기록을 정말 열심히 읽고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다.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차원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은 곧 존재이자 정체성이다.
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무엇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 쓰고 싶다고 말할 시간에 글을 써야 한다. 운동을 하고 싶다면 운동할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 그럼에도 글을 삶의 중심에 놓기로 한 이상 글을 쓸 시간을 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단순하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단순하다.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단순하게, 아름답게.
주말에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성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나답게 살아가고, 매일매일을 선물이라고 느끼는 삶.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내 인생을 선물이라고 느끼는 건 어떤 걸까? 주말에 들은 이 말을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을 지나 3일 내내 생각했다. 나는 언제 삶이 선물이라고 느낄까?
대학 입학 통지서, 졸업장, 경력, 통장 잔고를 볼 때 나는 내 인생이 선물이라고 느꼈던가? 성취의 순간 느꼈던 전율은 선물을 받아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마음과는 달랐다. 안도감, 후련함, 유능감, 통제감... 그렇다. 성취는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주었다. 이것이 내 삶의 주도권을 얻은 것일까?
선물은 통제 가능한 결과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 의도치 않게 얻는 행운 같은 것이다. 이른 봄 길을 걷다가 우연히 손등 위에 내려앉은 벚꽃잎 같은거다.
인생이 선물이라는 건 애써 성취해낸 것을 손에 쥐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오후 햇살을 가득 받으며 걷다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이마가 시원해지는 것
늦은 봄 퇴근 길 터덜터덜 걷다가 만개한 아카시아 꽃 향기에 고개를 들어 아카시아 나무를 보는 것
행복지려면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현재를 산다는 게 뭘까? 시간을 잊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분노는 과거에서 오고, 불안은 미래에서 온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는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이 순간 과거와 미래에서 빠져나와보라. 분노할 과거도 불안할 미래도 없다.
선물 같은 인생의 반댓말은 뭘까? 착취당하는 인생, 끌려가는 인생, 삶의 주도권을 상실한 인생 아닐까? 선물도 착취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왜 전혀 다른 경험을 주는 걸까? 그 차이가 시간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시간은 고통이다.
시간을 잊었을 때 나는 오롯이 현재를 살 수 있다. 불안은 미래에 사는 것이고 분노는 과거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지금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루 중 조금이라도 지금의 감각에 온전히 내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이 나를 착취하지 않고 지금을 살고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것 아닐까?
오늘은 점심 시간에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숲 플레이리스트는 들으며 산책했다. 유독 오늘은 바람이 시원했다. 햇살은 명확히 나를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나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현재를 사는 것, 그것이 나를 내 삶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 핀 조명을 비춰주는 일이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새들의 소리, 아직 시원한 초여름의 산들바람, 노래가 이 모든 순간이 오직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 같았다.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일, 매일 아주 잠깐씩이라도 잊지 않고 그것을 반복하는 노력이 기어이 나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신발을 벗은 채로 벤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람이 살결에 닿는 감각과 새 소리에 집중했다. 이런 순간 나는 <나만 있음>과 <내가 없음> 사이를 오간다. 눈을 감아도 볕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구름이 움직이며 순간순간 해를 가렸다가 비켜선다. 빛이 많았다가 줄어든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가 잦아든다.
어릴 때 카세트 플레이어로 라디오를 들었다. 늘 빈 테이프를 플레이어 안에 넣어두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런 날이면 우연한 횡재에 기분에 날아갈 듯 기뻤다. 잠들기 전까지 선물처럼 얻은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예기치 못한 선물, 선물이란 그런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것.
인생을 통제할 수록 삶이 더 쉬워지는 게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세상에 기꺼이 나를 드러낸 채로, 불행에 아파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행운에 기뻐하는 것이 인생을 선물처럼 사는 것이다.
회사에서 경력이 쌓이고, 연차가 쌓여간다. 회사 밖에서는 내 글이 점점 더 많이 읽히고 자주 언급된다. 그럴수록 나는 내 성취와 기회를 더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악플, 불리한 계약, 악의적인 피드백에도 그만큼 더 노출된다. 성취하는 삶이란 그런 것들을 피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불행에도 기꺼이 나를 맡기는 일이다.
오징어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오영수 배우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젊을 때는 꽃을 보면 꺾어 오지만 늙으면 그 자리에 둔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렇게 살고 싶다”
우리 집에는 8개의 화분이 있다. 작은 집이라 8개의 화분으로도 집 안에 소담한 숲을 만들 수 있었다. 매일 그 숲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만든 숲은 통제 가능한 숲이었다. 비도 바람도 필요없는 인공 숲, 내가 때에 맞춰 물을 주고 영양제를 주면 쑥쑥 자라는 화분.
오늘 산책길에 오랜 봄가뭄으로 말라버린 풀들을 봤다. 꽃은 꽃잎을 떨구어내기 전에 말라 비틀어진 채로 시들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봄에는 오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까. 마른 풀 사이, 힘 없이 바람에 비틀대는 나뭇가지 사이 벤치에 앉아 예기치 못한 햇살과 바람의 움직임에 행복을 맛 보았다.
내가 어쩌지 못한 시든 나무와 풀을 한참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꾼 집 안의 건강한 화분이 보였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세게 불고 후두둑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세차게 비가 내렸다. 흠뻑 비가 내렸다. 활기찬 빗소리에 점심 산책 때 본 나무가 생각났다. 와! 다행이다, 나무가 얼마나 좋아할까! 오랫동안 목이 말랐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선물처럼 비가 내린다. 밤새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