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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Oct 01. 2022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다름아닌 용기


2021년 8월 12일


OOOO 2차 면접 다음날. 자아성장 플랫폼 밑미에서 무료로 진행한 <메타인지 강의>를 들었다. 풀리지 않던 생각의 다음 매듭이 스르르 풀렸다. 마법같은 타이밍이다. 일하는 '나'에 대해서 그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일'에 대한 고민은 정말 많았는데 일하는 '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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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vs 돈이 되는 일


하고 싶은 일과 돈이 되는 일 사이의 접점을 생각해봤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이 되게 하는 방법

= 내가 선택한 일을 '남의 기대와 욕구'에 맞추는 것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게 하는 방법

= 지금 주어진 일을 '나답게' 수행하는 것


처음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원했던 방식은 <하고 싶은 일을 돈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사이드프로젝트로 어른 공부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충만함을 느꼈고 그것을 돈이 되는 일로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고 싶었다. 3년 전 OOO 서점 면접을 봤던 것도 그 욕구 때문이었다. 문제는 돈이 되는 일은 어쨌든 '남의 기대와 욕구'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가고 싶어서 간절하게 준비해놓고 결국 못 가겠다고 답한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면 지금 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그래서 그 다음 단계로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게>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 나에게 돈을 주는 곳)에 가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7년동안 해온 E커머스 자사몰 운영이라는 직무를 유지한 채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것이 OOOO 면접에 지원한 이유였다. 그러나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맞는 선택인지 계속 의심스러웠다.


2차 면접을 보면서 그 의심의 실체를 알아냈다. '나답게 일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답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방식과 최대한 가까운 형태로 일하는 기업을 찾을 수 있다.



/

나다운 성장이란?


"주도적으로 일하며 성장하고 싶어요."

면접에서 반복적으로 주도성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말했다. 면접관은 나에게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에서 성장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물었다.


조직의 리더가 되어 더 많은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을 원하는 걸까?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 주도적인 성장일까? 둘 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 욕구는 '나답게 일하는 것'의 일부였다. 나답게 일한다는 것의 핵심은 아니었다.


나답게 일한다는 것을 대상/방식/관계로 나누어봤다.


[대상] what 무엇을 할지 (산업/직무)

[방식] how 어떻게 할지 (조직문화/사업모델)

[관계] who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할지 (동료/조직문화)


회사에서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이 있다. 위로부터, 옆으로부터 요청받은 일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수행하는 사람. 무례함 앞에서 '그 정도 무례함으로 나를 흔들 수 있나 봐.' 속으로 가볍게 비웃으며 신속하고 명확하게 결과물을 전달해버리는 사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일하는 페르소나'는 그런 것이었다. 그 무표정과 무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했다. 대기업에서 벗어나기 두려운 마음은 아마도 그 거리를 좁히고 싶지 않음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 가면을 쓸 수 있는 데에도 자그마치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가면을 쓸 능력이 없었던 때 나는 너무나도 쉽게 자주 무너졌다. 사회 초년생 시절,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맞지 않는 무거운 가면을 짊어지고 다녔다. 타인의 평가와 비판에 흔들렸다. 내가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욕 먹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나를 숨길 가면을 손에 쥐게 되었다.


가면은 신세계였다. 운 좋게 훔친 투명망토 같았다. 가면 속에서 무례한 상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도 가면 밖으로는 평온한 호수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이 정도로 내가 흔들릴 줄 알았지? 어림없어. 평정심을 유지한 채 적정선에 맞춰서 일했다.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만큼 일하고, 관계 맺고, 거리를 유지했다. 일 속에 성큼성큼 들어가기보다는 평행선의 각도가 흐트러지지않게 선을 바로잡으며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날렵한 평행선이 완벽하게 평행을 유지하면 할수록 공허했다.


일이라는 게 이렇게 원래 공허한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음 속에 에너지가 많은 사람인데 그걸 표현할 공간이 없었다. 어딘가는 쏟아내야했고 회사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을 쏟아내던 첫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시는 회사에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나답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지 못한게 아니라 회사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 일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한 것은 그 이유였을 것이다. 메타인지 강의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 생각에 이르니, 울고싶어졌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일하는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 그 쿨함과 나이스함을 가지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노력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앞으로도 옆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디로든 나아가려면 이 가면을 돌려줘야겠지. 다시 맨 얼굴로 세상에 나가야겠지. 그 일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서 싸우고, 내 의견을 설득하기 위해 달려들고, 그러다가 비난을 받고, 실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운 좋게 생각이 통하는 동료를 만나기도 하겠지. 그에게 의지하고, 신뢰하고, 마음을 다해 손잡고 달리다가 등을 돌리기도 하겠지.


회사생활을 시작하던 25살, 그때처럼 또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번엔 안 무너질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약해서 나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일의 의미, 성장, 하고 싶은 일이건 돈이 되는 일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8년이 지났다. 단단하게 만들어 쓴 가면 덕분에 나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외면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의 의미, 성장, 하고 싶은 일을 돈으로 만드는 법,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법.


욕심이 났다. 몸을 앞으로 움직여 손을 뻗었다. 손을 조금 더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휙 어깨를 잡았다.


"잠깐! 여기서부터는 가면을 놓고 가야 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다울 수 있는 '용기'였다. 맨 몸으로 다시 걸어가볼 용기.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는 사실 그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나... 다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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