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이 문장을 떠올린다.
오늘 하루는 나의 선택이므로
하루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수한 선택에 담긴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한때 "오늘 하루는 나의 선택이다"라는 말을 오해했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선을 그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고른 남자잖아, 네가 선택한 직업이잖아, 그러니 불평할 시간에 감당할 노력을 해야지."
정작 나 역시 힘들 때면 친구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으면서 뻔뻔하게 말이다.
때로 불행과 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뒤차가 내차를 들이받는 것처럼 찾아온다.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날씨가 좋아도, 규칙을 잘 지켜도 올 것은 온다. 그걸 몰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형편없어서, 능력이 안 되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하루는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그러나 내 손에 놓은 모든 선택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이었다.
It’s not your fault, but it’s your responsibility.
내 하루가 나의 선택이라는 말은 불행과 고통이 내 탓이라는 게 아니었다. 내 불행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이 많은 하루는 <배움이 있는 하루>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하루를 <반가운 하루>로, 체력이 지치는 날에는 <휴식의 소중함을 느끼는 하루>로 만드는 선택을,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아침마다 쓰는 확언 일기는 내 하루를 무엇으로 만들지 선택하는 시간이다. 저녁마다 쓰는 감사 일기는 내 하루를 무엇으로 남길지 선택하는 시간이다.
오로지 나만 보는 기록이기에 눈치 보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전에 쓰지 않았던 새로운 글을 쓰고 싶었다. 밑미 리추얼을 매월 진행하며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첫 미팅을 채웠다. 좋았던 책을 다시 읽는 것보다 새 책을 읽는 게 좋았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작년에 썼던 블로그 기록을 다시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매번 새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놀라울 만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아침 루틴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감사 일기를 매일 쓰고 나서 하루의 주도권을 되찾은 거 같다."
일상 루틴부터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있었던 거다. 신기한 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걸 값지게 바라보는 내 시선의 변화다. 나에게는 변치 않는 구심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기분이다.
나로부터 벗어나 눈에 보이는 성취를 만들려는 원심력과 결국 다시 나로 돌아오는 구심력이 공존하고 있었구나, 나는 내 삶을 균형 있게 가꿀 수 있는 두 힘을 동시에 갖고 있었구나. 너무 대견하잖아?
스스로를 이렇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 1년을 걱정과 달리 잘 살아냈다. 그러니까 지금의 걱정도 별일 없이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들여보지 않았더라면, 계속 지금의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을 거다. 그러나 작년의 나를 통해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작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록을 해두지 않았더라면, 그 기록을 다시 들춰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거다.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마치 역사를 공부하며 깨달음을 얻듯이 과거의 나를 보며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기록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경험하고, 깨닫고, 기록하고, 다시 보기.
나를 전공과목처럼 공부하고 싶다.
어제 실수로 에버노트에서 글 300개가 담긴 독서기록 폴더를 삭제했다. 텅 빈 폴더를 본 순간, 온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한순간에 로그아웃 된 기분이었다. 간신히 복구를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에버노트에 있던 예전 글들을 읽었다.
2015년부터 쓴 에버노트에는 1,471개의 글이 저장되어 있다.
2015년 ~ 2017년은 암흑의 시기였나 보다. 처절한 절망과 분노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때는 글의 호흡도 짧았다. 줄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화살, 물, 불, 미움, 권리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때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기록을 통해 나를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기억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주 오래된 나의 친구인 글로, 기록의 중요성을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오늘 저녁에는 갑자기 이소라의 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 느낌 그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를 듣다가 왜 이 음악이 떠올랐는지 알았다. 밤마다 이소라 음악을 몇 시간씩 들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던 2018년의 기록을 보라고, 내가 나를 부르는 신호였다.
2018년은 슬픔을 껴안기로 결심한 시기였나 보다. 위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나는 나의 위로다.”
“나는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기를 바라.”
“애쓰지 않아도 너는 귀하다.”
2019년의 글에는 반짝임, 봄, 빛, 감탄 이런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 도전기, 요가 에세이, 베이킹 레시피, 티클래스 기록이 연이어 나온다. 무엇이 나를 일으켰는지 명확하게 보였다. 읽던 책의 목록도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갔다.
<자아>라는 개념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것에 더 가깝다. 자아는 내가 남긴 기억과 기록이라는 흔적으로 쌓아 내린 지층이자 쌓아 올린 탑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기록함으로써, 내가 누구여야 하는지, 누구일 수 있는지 선택해 왔다.
요즘은 내 일상이 평온하고 산뜻하게 행복하다. 인생이 그럴 리가 없는데 자꾸 이러니까 불안했다. 예전 기록을 보며 알았다. 내가 지금을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맞서 싸워왔는지.
1,471개의 글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행복을 맛볼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 걱정 말고 지금을 누리라고.
8년 전, 물에 닿아 쓰라린 상처처럼 들리던 이소라의 음악이 오늘은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 중 가장 신기한 말이 “마음이 단단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오래 알아왔던 나는 정 반대의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약해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불안과 우울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서 필명을 ‘단단’이라고 지었다.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새 이름으로 글을 쓰고 쌓으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처럼 조금씩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과정에는 세 가지 노력이 있었다.
- 건강한 음식
- 적당한 운동
- 꾸준한 마음관찰
제철 채소를 찌거나 삶고 볶아서 휘리릭 만드는 자연식 요리를 좋아한다.
이직 후 한동안 일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자연식 채소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남편이 재택 도시락을 싸주는 날도 많았지만 반찬가게 음식이나 냉동 만두, 빵을 점심으로 먹는 날도 여럿 있었다.
특히나 아침은 그래놀라, 빵, 과일, 커피를 자주 먹었고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초콜릿과 케이크를 많이 먹었다. 대부분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든 케이크였지만,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빵과 케이크는 결국 가공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가장 좋은 음식은 자연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해서 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뇌가 ‘진짜 음식’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충만감과 행복감이 크다.
이번주에는 <하루하루 문숙> 채널을 보면서 아침으로 채소찜과 팥호박죽을 먹었다. 하루 종일 속이 편하고 기분이 좋았다. 계절 채소찜으로 아침 시작하기 루틴을 새롭게 정착시키고 싶다.
매일 아침 15분 스트레칭을 한다. 이제는 안 하면 온몸이 뻐근해져서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않는 루틴이 되었다. 평일에는 주 2회 요가를 가고 주말에는 1시간 이상 걷는다.
마음의 미세한 변화를 끈덕지게 관찰한다. 혼자 글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3년째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예전에 한 심리상담사가 상담을 “마음 관리 스파”라고 표현한 것을 듣고 정말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 관리를 받듯이 주기적으로 마음을 관리받는 기분이다.
나는 고질적인 중독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는데, 바로 모든 시나리오를 부정적인 결과로 연결 짓는 습관이다. 중독을 끊는 방법은 단번에 자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실패하더라도 계속 끊는 시도를 해야 한다.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조사한 통계를 보면 여러 번 시도할수록 성공확률이 높다고 한다.
현재를 긍정적인 미래와 연결 짓기 위해, 익숙한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내가 쓰는 방법은 <명상>, <심상화>, <확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매일 일기를 쓰면서 반복해서 점검한다.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기르기 위한 노력을 매일 매 순간 의도적으로 한다. 건강하고 쉬운 요리를 해 먹고, 적당한 강도로 운동하고, 일상을 촘촘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려고 한다.
지난달부터는 코칭도 받고 있다. 직장인으로서 일하며 성장하고, 동시에 이야기가 풍부한 작가로서 계속 글을 쓰고 싶다. 회사원과 작가라는 두 정체성 사이 균형을 잘 맞추고 싶다.
이번주 코칭이 끝나고 일기에 <오늘의 성취>를 추가하기로 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놓쳤던 성취를 발견해 주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템플릿이 생기니 기록할 성취가 늘어났다.
검색이라는 기술은 '무엇이든지 원할 때 찾을 수 있으니 기억할 필요도 기록할 필요도 없다'.라고 믿게 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순간, 검색은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 안에서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은 감정에 감싸 잘 저장해 두어야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다. 위로가 되었던 음악. 머리를 울렸던 책의 구절. 꼭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그냥 저장해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좋았는지, 어떻게 좋았는지 그날의 감정과 함께 꼼꼼히 기록해 두어야 검색과 출력이 가능한 상태로 뇌 안에 저장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정리해서 저장해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다.
상황에 맞는 음악은 음악추천 어플이 찾아주고, 책 추천 어플, 레시피 어플... 모든 분야에서 내가 찾던 그것을 찾아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쉽게 순간을 지나친다. 나중에 찾아보면 되니까.
소중하다는 생각을 잊는다. 언제든 검색하면 다시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막상 좋았던 순간을 잘 찾아보지 않게 된다. 오히려 자극적인 경험과 기억만 자주 난다. 대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감싸진 경험과 기억들이다. 이런 자극들은 알고 보면 일상에서 경험하는 빈도가 낮은데도 자극적인 감정과 결합되어 저장되어 버렸기 때문에 쉽게 출력된다.
기록은 하루의 경험과 감정을 선별하여 출력 가능한 상태로 저장해 두는 것이다. 기록을 할 때 우리는 경험과 감정을 편집하고 가공한다. 어떤 키워드와 연결해서 저장할지 결정한다. 이때 뇌에서는 경험과 감정이라는 정보들 사이의 회로가 재구성된다.
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기를 쓰는 이유는 뇌의 회로를 재구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오늘 하루는 ____가 있을 거야!"
저녁에는 "오늘 하루는 ____를 발견했어!"
이렇게 미리 만들어둔 빈칸을 채운다. 무작정 채우면 쉽게 부정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키워드를 지정해 둔다.
[아침] 오늘의 기대와 배움
[저녁] 오늘의 감사와 성취
내 뇌의 회로를 불안이 아닌 기대로 연결하고 싶다.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불안이 사실은 소중한 성취의 동력이었다고 인정해주고 싶다.
나는 나의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치어리더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