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역량의 핵심은 [단순화]다.
단순화를 잘하는 사람은 디테일도 잘 챙기지만, 디테일이 좋은 사람 중에는 단순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단순화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대범함
핵심에 아주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
무엇이 본질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삶을 향해 품는 기대와 소원도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연봉 인상, 승진,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복권 당첨, 갑자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행운…? 이런 자잘한 소원은 필요 없다.
단 하나의 소원
“삶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내게 준다.”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우리는 상상 안에서만 바랄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 꿈을 물으면 과학자, 대통령, 유튜버를 말한다. 그게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아는 것이 거기까지여서. 내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물이 내 삶에 주어진다면 그 이상을 바랄 게 있을까.
도전과 성장에 있어서도 세세한 전략이나 미션, 로드맵을 짤 필요가 없다. 딱 3가지 원칙만 세우면 어떤 일이든 무조건 해내게 되어있다.
그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한다
그 시간이 되면 무조건 시작한다.
집중한다.
그래서 안 되는 일이라면? 내 몫의 성취가 아니었던 거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시간을 내서 집중하는 것뿐.
삶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해석과 창조의 결과물이다.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현재 이런 게 아니다. 과거의 그 사건들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현재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다.
내 삶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해석하고 감동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자극-반응] 사이 시공간 확보하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나를 자극하는 타인의 말, 행동, 표정에 즉각 응답하지 말 것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말고 ‘대응’할 것
흠, 이것도 더 단순한 하나의 원칙이 있을 것 같지 않을까. 고민 끝에 이 원칙을 세웠다.
“감정이 일어날 때는 일단 3분을 기다릴 것.”
자극에 습관적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내가 잃었던 수많은 관계와 기회를 떠올려봤다. 더욱 엉켜버린 일과 그 바람에 소진된 에너지가 아까웠다. 자극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순간, 긴장이 이완된다. 뇌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생각을 비우고 현재에 집중한다. 그리고 무의식은 내면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Slow Thinking.
이때의 뇌파가 [알파파]다.
알파파 상태에서 뇌는 잔뜩 힘주고 애쓸 때 발견하지 못했던 독창적이고 강력한 해답을 찾아온다.
잔잔한 내 마음에 누군가 돌을 던지는 그 순간, 두려움을 가볍게 웃어넘기고 “나는 답을 찾을 것이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두려움과 분노는 같다. 삶을 두려워할수록 일상이 분노로 점철된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무리에서 배제당하는 것 아닐까.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내 자리를 빼앗기는 것? 그렇다면 나는 삶이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언제든, 적어도 내가 있으니까.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모래시계를 산 이유로는 너무 장황한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훈련의 시작이다.
두려움과 분노가 아닌 믿음과 기대로 삶을 바라보고 싶다. 삶이 나에게서 뭔가를 빼앗아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멋없는 사람 말고 폭풍우에 우산을 내어줘 버리고 비를 맞으며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센 비가 그치고 나면 축축한 옷을 탈탈 털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크게 걸린 무지개를 볼 줄 아는 그런 사람. 무지개 너머로 비치는 햇살 아래 잠깐 지난 힘듦을 생각하고는 이내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래시계, 나의 감정을 잘 부탁해.
처음부터 단순함에 끌렸던 것은 아니다. 20대의 나는 오히려 맥시멀리스트였다. 무엇이 내 것인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몰라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그 과정이 모두 배움이었고 그 기웃거림 덕분에 내 삶이 다채로워졌다고 말하지만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당장 빠져나오고 싶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한없이 불안했다. 이것저것 하다가 이도저도 안 될까 봐. 이번에도 내 길이 아닐까 봐.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오! 나 이게 잘 맞나 봐!"하고 나의 적성을 찾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아, 이거 진짜 아니구나." 피해야 할 길만 쏙쏙 골라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내 길이 없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영영 내 길을 찾지 못하고 남의 트랙에 발만 담갔다가 화들짝 놀라 방향 전환을 하는 게 내 길인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회계사 시험 준비, 연극 동아리, 미술 학원, 재즈 피아노처럼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어이쿠야 하고 발을 뺀 분야도 있었지만 꽤 오래 재미있게 하는 활동도 있다. 요가, 홈베이킹, 티블렌딩, 글쓰기, 제로 웨이스트, 채소 요리, 명상, 식물 키우기 같은 활동들. 그렇다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다.
5년 전에는 홈베이킹에 푹 빠진 시기였다. 몇 백만 원짜리 창업반 수업까지 들어가며 홈베이킹과 티소믈리에 공부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퇴근하고 매일 빵과 쿠키를 만들었다. 밤마다 만든 쿠키는 먹어도 먹어도 남아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 했다. 친구들은 정말로 내가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창업을 할 줄 알았다고 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베이킹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보고 비건 플리마켓에서 셀러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개의 쿠키를 새벽까지 만들며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루에 한두 시간 반죽을 만지고 재료를 조합하고 오븐에서 갓 나온 쿠키 냄새를 맡는 것이었지 하나의 레시피로 똑같은 쿠키 200개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3년 전에는 책 출간을 준비하며 프리랜서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꽤 최근까지 품고 있었던 꿈이었다. 하루에 8시간씩 성실하게 글을 쓰고 기회가 닿는 대로 강연을 나가면 처음에는 지금 수입의 반도 안 되겠지만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갖고 있었다. 매일 출근하지 않는 삶, 내 일을 하는 직업인, 나도 그런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설렜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강의 플랫폼과 계약을 맺어 온라인 강의를 출시하고, 이런저런 단체의 강의 제안을 받으면서 알았다. 일은 일이었다. 내가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대충 검색해서 복붙 한 메일을 보내놓고 상세 내용을 묻는 메일에 답장도 제대로 하지 않는 파트너도 많았다. 우리는 대기업, 대형 플랫폼이고 당신은 유명하지 않은 프리랜서니까 우리가 당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는 식의 파트너도 물론 있었다. 방송사, 매거진에서 인터뷰를 제안하길래 혹해서 갔는데 거마비로 받은 출연료는 3만 원이었다. 그마저도 안 주는 곳도 많았다. 우리가 당신을 출연시켜 주는데 당신 돈으로 메이크업하고 준비해서 와야지, 이런 생각인 걸까.
내가 회사에서 버는 돈이 전보다 크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동안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끈덕지게 버텨온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경력과 실력과 네트워크가 쌓였다. 적어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그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가끔 할 만하던 일이 심지어 요즘은 꽤 재밌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토록 회사가 싫었던 건 회사 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경력도 실력도 없던 초년생에게는 제대로 된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자기 주도권과 효능감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회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일에 대한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그렇게 싫어서 늘 대안을 찾아야만 했던 회사가 재밌어진 거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중간에 그만뒀으면 어쩔 뻔했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그럼 1,000만 원이나 투자한 베이킹과 티소믈리에 자격증은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 일만큼 열심히 쓰는 글, 공부 리추얼 모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거지? 취미 수집가로 이 시간을 추억하며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데.
책상에 앉아 그동안 했던 활동들을 펼쳐보았다. 무언가가 보였다. 방향성 없이 흩어진 듯했던 과거의 경험 사이로 하나의 물줄기가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맥시멀리스트처럼 느껴졌던 내 삶이 사실은 단순함을 향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직업이 되지 못한 채 취미로 남은 수많은 기웃거림은 내 키워드가 되었다.
퇴근하고 글 쓰는 직장인
사이드 프로젝트하는 회사원
공부 리추얼을 리딩하는 마케터
키워드가 많아지는 건 얇고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분야를 찾아서 깊고 넓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것저것 발만 담가본 얇고 넓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반대였다. 오히려 키워드를 조합하고 조합할수록 깊어지고 단순해졌다.
10년 동안 E커머스 마케터로서 충실하면 그게 깊고 넓은 걸까?
그보다는 에세이 쓰는 마케터, 밤마다 공부하는 모임을 이끄는 마케터, 주말마다 홈카페를 여는 마케터가 더 확실한 자신만의 분야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단순해지려면 확실하게 좁아져야 했다. 모두가 속해있는 있는 영역에서 승부를 보려면 1등이 되어야만 한다. 소수가 속한 좁은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면 꼭 1등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점이 되니까.
단순해지려면 고유해져야 했다.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키워드를 조합하고 조합하면서 나만의 단순화된 필터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단순해지려면 디테일이 풍부해져야 했다. 나만의 영역을 좁히지 않은 채 묵직한 덩어리를 숭덩하게 잘라내 내 영역이라고 정의해 버린다면 단순해지기는커녕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세그먼트를 좁혀야 했다. 세그먼트를 좁히려면 이것저것 해보면서 나만의 키워드를 수집하고 조합하며 뾰족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냥 요리 에세이를 쓰는 직장인이 아니라
퇴근 후 매일 한 가지 채소로 요리하는 직장인이 더 단순하고 차별점을 갖는다.
그냥 책을 읽는 직장인이 아니라
마인드맵으로 독서노트를 정리하는 마케터가 더 단순하고 차별점을 갖는다.
나의 기웃거림과 시도와 방황은 나를 더욱 단순하게 나만의 키워드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더 단순해져 보기로 했다. 나는 퇴근하면 집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자아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회식도, 저녁 약속도, 가끔 있는 모임마저 가지 않는 내가 이런 식으로도 회사 생활을 오래 해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단순하고 고유한 나만의 차별점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관계를 풍부하게 맺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은 적극적이고 풍부하게 하면서 오히려 관계없이 관계를 만들며 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친한 사람은 없지만 나와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나답게,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강력한 고유함, 차별점, 능력이 될 것이다. 정말 단순하게 일 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10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하며 [단순함]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나만의 단순함] 내공을 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