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우연히 스텔라장이 부른 [L'amour, Les baguette, Paris]를 들었다. 나에게 파리는 사실 외롭고 불편한, 숨어버리고 싶은 곳이었다.
영어도 유창하게 못하고, 불어불문학과 학생인데 불어도 못하고, 어울리는 것도 못해서 늘 수업만 듣고 도서관으로 사라지는 학생이 바로 나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펴놓고 사실은 읽지도 않으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걷고, 빵을 사 먹고, 낯선 나라의 밤이 무서워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는 날의 반복. 그러면서도 혼자인 내가 부끄러워 여기저기 한국 유학생 무리에 끼어봤지만 결국 혼자인 채로 짧은 6개월의 교환학생 시절을 마무리했다.
오늘 저녁 이 음악을 들으면서 신기하게도 찌질했던 파리에서의 내가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혼자여도 되는데, 불어도 영어도 못 해도 괜찮았는데, 고독을 즐기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남들과 다르지 않기 위해 애쓰던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다시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니까. 눈치 보고, 고민하고, 한없이 무너지는 마음 같은 건. 그 상처받은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 소중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꽤나 뻔뻔하고 무던하고 단단해진 내가 기특하다.
마음 쓰렸던 그 시절의 파리도, 나도 괜스레 애틋한 밤.
12월의 끝자락. 2023년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나는 30대가 참 좋다. 서른은 이제 막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좋았고, 서른하나 서른둘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린것 같아서 좋았고, 서른셋은 어리숙한 티를 벗어서 좋았다. 서른넷은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서른다섯은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20대에서 30대가 되면서 이 정도로 좋아진 거면, 30대에서 40대가 되면 얼마나 더 좋을까. 40대의 멋진 나를 상상하면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부끄럼 많고 혼자이기를 좋아하고 고요한 몰입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도, 함께보다 혼자일 때 사랑과 자유를 만끽하는 나 같은 사람도, 좋은 사람들과 오래 일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40대가 되어서 이런 나라도 괜찮을까 묻는 20대 30대들에게 말이 아닌 삶으로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도 괜찮은 나를 만들기 위해 2023년을 가득 채웠던 키워드와 문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 본다.
오늘은 미래의 내가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은 하루다.
일기는 매일 썼지만 기록한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볼 수 없었다. 회고를 위해 다시 본 기록은 딱 하나, 월간 회고였다. 월간 회고는 다른 글보다 짧게 일정한 템플릿에 맞추어 쓰는데 바로 그 규칙성 때문에 30분 안에 훑어볼 수 있었다. 월간 회고 템플릿은 올해 6월부터 쓰기 시작했다. 1월부터 5월에도 기록은 열심히 남겼지만 머릿속에 남는 키워드나 문장이 없었다. 기록은 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해야 한다던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전화번호도 노래 가사도 외울 수 없게 되었다. 연락처 앱에 번호를 저장할 때 그것을 어떻게든 외워보려는 노력하지 않고 여기에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며 안도한다. 어딘가에 써두고 잊어버린다면 아무리 많이 기록해도 소용없다던 김교수의 말이 야속하게 들렸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에 남으려면 생각을 키워드 중심으로 구조화해서 저장 용량을 낮춰야 한다. 기록 루틴과 템플릿을 만들어 그 리듬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록하고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중요한 생각이라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기록하며 그 생각을 날카롭게 벼리고 내 키워드로 각인시켜야 한다. 키워드가 없는 기록은 아무리 잘 저장해 두어도 찾을 수가 없다. 실마리가 되는 키워드가 있어야 검색이라도 해서 뒤져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며 대학 시절 수업 자료 파일을 다시 들춰보다가 깜짝 놀랐다. 분명 내가 쓴 보고서인데, 4개월 동안 들었던 수업 커리큘럼인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이 보고서를 쓰려고 며칠을 끙끙댔을 텐데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기록만 떡하니 남아있었다.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면 기록이라도 해둬야 한다는 생각과 그렇게 기록해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차피 찾아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김익한 교수가 추천한 일상 기록법을 한 달째 매일 실천하고 있다. 2~3시간마다 한 줄씩 지금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임금의 농담까지 받아 적었다는 조선왕조실록 서기관처럼 나의 일상을 촘촘하게 기록하다 보면 한 달 안에 뇌 구조가 바뀔 거라던 말에 너무 궁금해서 따라 해 본 지 딱 한 달. 뇌의 구조가 정말로 바뀌었다. 내 하루를 마치 손바닥에 쥐고 있듯이 선명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2~3시간마다 무엇을 기록할지 생각하는 것은 그 시간을 어떤 키워드로 정리할지, 어떻게 편집해서 남겨둘지 선택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삶의 순간을 선택하고 편집하면서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 결과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2022년 3월에 일기 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로 계속해서 일기 템플릿과 기록 루틴을 조정하고 있었는데 2023년 들어서 일기 쓰기의 치밀함과 방대함이 극대화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내가 정기적으로 쓰는 기록은 시간 기준으로 일기가 5개, 주제 기준으로 노트가 7개다.
시간 기준 기록
[시간 일기] 2~3시간 단위
[하루 일기] 잠 깬 직후, 잠들기 직전
[주간 일기] 한 주간의 기록을 모아 하나의 글로 엮어 브런치 연재
[월간 일기] 키워드 중심 회고
[연간 일기]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며 회고
주제 기준 기록
[공부 노트] 하루를 돌아보며 배운 것이 있는지 기록
[생각 노트] 일 하다가, 이동 중에 떠오른 짧은 생각들을 기록
[상담 노트] 그때그때 떠오르는 상담 주제를 적고, 상담 후에는 그날의 대화 기록
[코칭 노트] 그때그때 떠오르는 코칭 주제를 적고, 코칭 후에는 그날의 대화 기록
[차 시음 노트] 차 마시며 맛/향미/어울리는 디저트 기록
[문장 수집 노트] 책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 기록
[독서 마인드맵] 책 읽으며 내용을 구조화하여 키워드 중심으로 기록
일하고 밥 먹고 운동하는 시간 빼고는 늘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를 정말 조선왕조실록 서기관처럼 기록하고 있는데 귀찮거나 힘들지 않다. 오히려 바빠서 기록을 못할 때는 뇌 속에 정신없이 쌓인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인간이 하루에 5만에서 7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하니까, 시간당 최소 3천 가지의 생각을 하는 건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속도와 양으로 쌓이는 생각을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생각 더미 아래 묻힌 기억할 만한 순간을 계속 놓치면서 사는 기분이다.
기록 방식은 2024년에도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일과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시시각각 변함에 따라 기록 패턴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오래된 것을 사랑한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시간의 힘을 이토록 강렬하게 느낀 시기가 있을까. 올해 해외여행을 두 번 다녀왔다. 모두 일본의 오래된 도시로 5월에는 오타루, 12월에는 교토에 갔었다. 오타루는 지금이야 관광업만 남은 지방 소도시지만 100년 전만 해도 일본 제일의 은행들이 앞다투어 지점과 분점을 낼 만큼 번성한 금융 도시였다. 홋카이도 은행 본점도 오타루에 위치했다. 막대한 돈이 오가고, 멋들어진 건축물, 비싼 유리 장식품, 호사스러운 가게로 빛을 발하던 오타루의 번영은 태평양 전쟁과 함께 막을 내렸다. 더 이상 오타루 운하로 물자가 수송되지 않았다.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흐름도 바뀌면서 오타루의 광산업도 저물었다. 한때 월스트리트라 불렸던 오타루 은행 거리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유리 공예 잡화점 거리가 되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만이 반짝였던 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듯 시간이 멈춰버린 곳, 오타루에서 빛바랜 오래된 건물과 거리를 걸으며 내가 낡고 오래된 것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된 것의 무엇이 좋은지 알아보고 싶어서 2023년 두 번째 여행지를 교토로 정했다. 교토는 1869년까지 천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도시로 오타루와 달리 아직도 새로운 가게와 문화가 만들어지는 생기 있는 도시였다. 천년 고도답게 곳곳에 오래된 사원과 왕궁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블루보틀, 스타벅스, 아라비카 커피와 같은 요즘 브랜드가 즐비한 도시. 교토에서는 니넨자카 거리 스타벅스 2층에 앉아 천년 사찰 청수사를 바라보는 관광이 제 맛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야 할 다른 곳들이 있었다. 500년 넘은 사탕 가게, 300년 넘은 문구점, 100년 된 서점과 찻집에 가서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내 마음속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500년 넘은 사탕가게 미나토야는 당황스러울 만큼 휑하고 한산했다. 눈에 띄는 간판도 별다른 광고 문구도 손님도 심지어 주인도 없었다. 한참을 크게 부른 뒤에야 가게 안쪽에서 사탕을 자르던 할머니가 나왔다. 오래된 역사만큼 여러 종류의 사탕과 일러스트가 그려진 다양한 패키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사탕은 딱 한 종류 [유레이코소다테아메] 뿐이었다. 가게 벽면 한쪽에는 가게 나이만큼 오래된 돈궤(금고) 사진과 설명이 붙어있었다. 사탕가게의 역사를 보증하는 소중한 물건으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돈궤 사진을 보며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낡은 돈궤를 버리고 튼튼한 나무 돈궤를 새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기술이 발전한 만큼 열쇠가 있는 철제 금고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버리지 않고 500년 가까이 쓰고 보관하고 있는 걸까.
300년 넘은 문구점 큐쿄도, 100년 넘은 찻집 프랑수아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왜 이제 더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벼루와 묵을 만들고 예전 방식으로 만든 한지를 파는 걸까. 왜 100년 전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걸까. 왜 어떤 오래된 가게는 낡고 촌스러워서 가고 싶지 않은데, 망하거나 개인 사정으로 장사를 중단하는데, 왜 여기 있는 이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가게들은 여전히 가보고 싶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대를 잇고 다른 이에게 물려주면서까지 매일 문을 열고 닫는 걸까.
여행에서 돌아와 이사 준비를 하면서 버릴 것들을 정리하며 알았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소중해서 차마 버릴 수 없어서 새로 사지 못하고 고쳐 쓰고 다시 쓰며 곁에 두고 싶은 마음.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 내가 하는 일, 내가 가진 것, 내 곁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낡고 오래된 존재가 되겠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내가 그런 존재일 수도 있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바래지 않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시간의 세례 위에 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힘껏 사랑하는 것. 아마 나에게 기록과 리추얼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꽉 붙잡고 바라보며 정말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그 다정한 눈길일 것이다.
언어는 생각의 구조라는 점에서, 하나의 시스템이고 건축물이고 체계이다. 내가 언어를 사랑하는 이유이고, 언제든 마음껏 다듬을 수 있는 글을 말보다 사랑하는 이유다. 언젠가 낯선 언어로 읽고 쓰는 경험을 꼭 해보고 싶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는 건 모국어로도 어려운 일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았지만 내 생각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다른 시스템을 통해 내 생각을 꺼낸다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그나마 외국어 '읽기'는 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외국어' 쓰기'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라 틈 날 때마다 훈련하고 있는데 읽기에 몰입하는 중 잠깐씩 영어를 한국어 체계가 아닌 영어 구조 그 자체로 읽는 경험을 할 때마다 경이롭고 짜릿하다.
이럴 때 보면 외국어 문학을 전공했던 나의 이력은 "점수 맞춰 대학 갔지 뭐."라고 농담 삼아 말하고 다녔던 것이 머쓱할 만큼 나답다. 그 머쓱함에 변명을 해보자면 대학시절 내내 수업에서는 주로 고전 문학을 읽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소설에는 영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에세이만 읽는 편향적인 독자였던 거다. 고생해서 외워 봤자 뭐 하나 싶은 고대 프랑스어 단어를 보며,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몇백 년 전 유럽 사회와 인물의 고뇌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전공 잘못 선택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대학 3학년 때 국문과 친구 따라 수강했던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 수업에서 글쓰기 모형을 만들며 '엇? 이거 뭔데 이렇게 재밌지? 나 언어학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수님이 면담 시간에 '언어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벅찼지만 무턱대고 대학원에 진학하면 등록금이며 생활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앞길이 막막했고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용기는 없었다. 하늘대신 회사에서 떨어지는 월급을 받으며 취미로 글을 쓰고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며 지낸 지 10년이 흘렀다. 하고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일에서 자리를 잡고 나자 하고 있는 일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결국 나답게 일하는 것이며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무기와 확고한 정체성이 되어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언어학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거다. 언어학 수업에서 글쓰기 모델을 만들던 것처럼 일과 일상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체계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일과 삶을 해석하는 태도 자체가 언어학자의 자세와 다르지 않지 않을까.
일에서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게 된 즈음, 그러니까 거의 10년 만에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영어 공부 앱 [플랭]을 사용하면서 다시금 내 안에 있던 언어 공부 세포가 깨어났다. 요즘 영어 학습 가이드는 아무도 쓰지 않는 고대어를 외우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원어민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불필요하게 엄격한 문법 규칙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2분 내외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요즘 사람들이 쓰는 표현을 패턴화 해서 배우고 반복해서 말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내가 20년 전에 이 앱을 쓸 수 있었다면 지금쯤 영어로 못 읽는 책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다가 사람들이 '내가 지금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난 정말 할 만큼 했지만 서울대는 못 가겠던데. 암튼, 이제라도 영어에 다시 재미를 붙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게 중요한 것 아닌가.
2022년 11월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매일 30분씩 플랭으로 영어 듣기와 말하기 공부를 하고 있다. 6개월 즈음 지났을 때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원서로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한국어에 비하면 3배 정도 느리게 읽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쌓이면 5년 뒤에는 영어로 에세이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낯선 언어로 생각하고 글 쓰는 건 어떤 감각일까. 영어가 편해질 만큼 실력이 늘면 그다음으로는 대학 전공이었던 프랑스어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
그 밖에 오래 생각했으나 글로 마무리하지 못한 키워드
우아한 반복
리추얼
내맡김
일과 삶의 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