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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18. 2023

지루한 반복에서 우아한 반복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 업무 회고


연말 인사 평가 시즌이 돌아왔다. 연말에 일도 많아서 바쁜데 올해 성과도 정리해야 한다니, 다들 미간을 찌뿌리며 말한다. “으… 하기 싫어.”


신입사원 시절 옆 자리 선배는 첫 평가를 앞둔 나에게 연말 자기 평가 작성은 1년 동안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며 바쁘다고 대충 쓰지 말고 정성껏 고민해서 쓰라고 했다. 1년 내내 열심히 일해놓고 얼버무리듯 “올해 마케팅 프로모션 이런 거 이런 거 했습니다.” 라고 쓰면 1년 간의 고생을 누가 알아주겠냐고 말이다. 그때는 그 말을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니 팀장님 보시기에 열과 성이 가득 들어간 성과 보고서를 쓰라는 뜻으로 들었다. 그렇게 10년 넘도록 나를 평가할 팀장님을 위해 보고서를 쓰면서, 그럼에도 그 결과는 온전히 내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해 쓴다고 여기며 연말마다 열심히 평가를 작성했다.



성과 평가는 나를 위한
회사 생활 회고록



그렇게 10년 동안 반복하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성과 평가는 ‘팀장님도’ 보긴 하지만 가장 먼저 ‘내가’ 보는 나의 회사 생활 회고록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이 조직에서 잘 쓰이고 있는지, 내 몫의 일을 하며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계획했던 대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맡게 된 일이 나에게 잘 맞는지, 내가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었다. 정신없이 일의 파도에 휩쓸려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내 일의 맥락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성과 평가가 성과급을 더 받기 위해 내 성과를 증명하는 수단인 동시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회고 도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직 준비를 하면서였다. 어쩌다보니 몇 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하게 되었고 연말이 되면 평일 하루 연차를 내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는 리추얼을 갖게 되었다. 작년에 써둔 포트폴리오에 올해 했던 프로젝트를 중요도 순서대로 추가하고 각 항목마다 수치화된 성과를 기재했다. 이전에 써둔 내용도 다시 들여다보며 점검한다. 오래된 프로젝트는 비슷한 프로젝트끼리 합쳐서 짧게 요약하고, 원하는 커리어 맥락과 맞지 않는 프로젝트는 과감하게 삭제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과 평가를 잘 써두면 포트폴리오를 따로 작성할 필요가 없겠는데?”


성과 평가는 1년 간 어떤 일을 얼만큼 잘해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했는지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포트폴리오의 작성 목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성과 평가를 쓰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내 업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올해 내가 한 일을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그치지 않고 더 넓혀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업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회사 HR 담당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10년 후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10년 후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계획은 목표가 아닌 의도를 세우는 것


결과를 보고 잘 했는지 못 했는지를 판단하려면 비교 대상,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게 매출 100억을 만들었다고만 적으면 알 수 없다. 작년에는 90억을 만들었고, 목표는 130억이었는데 결과가 100억이라고 말해야 비로소 판단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연말 업무 회고를 할 때는 연초 계획을 꺼내봐야 한다. 여기서 연초 계획이란 숫자로 표현된 경영 계획 목표가 아니다. 이미 그런 업무 성과는 전략팀에서 월 단위, 아니 일 단위로 관리하고 있고 나 역시 일 단위로 목표를 달성하라는 독촉을 받고 있으니까. 그 숫자는 내 커리어의 목표가 아니라 회사의 목표다. 지금 우리는 팀장, 임원의 시선이 아니라 업계의 시선, 내 커리어 전체를 기획하는 관점에서 업무 회고를 해보려는 것이니 그에 맞추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내가 세워야 하는 것은 일의 의도



연초에 내가 세웠어야 하는 것은 숫자 목표가 아니라 [일의 의도]다. 의도는 계획이나 목표와 달리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 의도란 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이다. 의도와 목표, 계획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의도]

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삶의 모습 결정하기

ex. 동료들과 단단한 신뢰를 주고 받으면서 함께 성공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



[목표]

의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ex. 함께 성공 경험을 만들었다는 감각을 동료들과 공유하려면 어떤 결과값을 만들어야 할까?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프로모션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성공적으로 이끌면 함께 성공 경험을 만들었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럼 구체적으로 얼만큼 성공해야 하지?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 프로모션 매출액을 전년 대비 150% 성장시킨다고 하면 어떨까?



[계획]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행동 설정하기

ex. 블랙 프라이데이 프로모션 매출액을 150% 성장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프로모션 직전에 다양한 테스트를 해보기 어려우니까 그 전에 작은 규모의 프로모션에서 이벤트와 상품 기획을 먼저 시도해보면 어떨까? 990원 특가 이벤트를 만들어서 블프 전까지 매월 1회 운영해보자.



목표는 의도를 세운 다음에, 계획은 목표를 정의한 다음에야 나올 수 있다. 첫 고민은 언제나 의도여야 한다. 의도는 목표와 계획을 포괄하는 거대한 개념이다. 의도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이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감에 따라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이 바뀌어감에 따라 의도 역시 매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2022년의 의도는 [적응]



2022년 3월에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했다. 2022년 내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기존과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다른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었다. 잘 적응했다는 것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기존 멤버들과 동일하게 비대면 방식으로 일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비대면이 기본 소통 방식인 조직에서는 무엇보다 글쓰기 능력이 중요했다. 얼굴 보고 말로 할 수 없으니 최대한 간결하고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슬랙, 노션, 지라, 피그마와 같은 새로운 업무 도구를 배웠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니 읽고 따라잡아야 할 문서량이 어마어마했다. 글로 된 방대한 히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계획을 세웠다.



2023년의 의도는 [확장]



2022년의 의도가 적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3년의 의도는 업무 범위를 확장하고 뾰족한 성과를 만들어서 내가 조직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다듬는 것이었다. 2022년에 길을 내고 2023년에 길을 닦았던 셈이다.


이렇게 의도를 세우고 보니 1년에 딱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는 미세하게 방향 조절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성과 평가를 작성하고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는 것만으로는 연초에 세웠던 의도를 실현할 수 없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마라톤을 시작할 때 시작점에 정확하게 서서 결승선을 잘 바라본 후 눈을 질끈 감고 달리는 것과 같았다. 중간중간 제대로 달리고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 옆 사람들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경로와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리 처음에 시작점과 끝점을 잘 맞추어도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회고는 매달, 아니 매일, 아니 매 순간


Monthly: 프로젝트 일기


그래서 만든 것이 [프로젝트 일기] 였다. 한 달 정도 집중해야 하는 규모의 프로젝트 단위로 의도, 목표, 계획을 세우고 회고 해보기로 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CRM 마케팅 채널을 운영하는 일이라 프로젝트 주제는 대개 지표 개선과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대한 고민이었다. 회사의 프로젝트와 동시에 그러나 별개로 실행되는 나만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프로젝트 일기 양식


회고 문서 템플릿


프로젝트 일기는 대개 한 달을 기준으로 준비-진행-회고가 이루어지지만 주간 단위로 중간 점검을 한다. 따로 시간을 내서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들이어서 금요일 오후 30분을 따로 빼둔다.



Daily: 업무 일기


프로젝트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공통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관심사가 [지속 가능한 성장 시스템 구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진 에너지의 120%를 써서 으아아아! 전력질주하듯 단기 성장을 만들어내는 동료와 함께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동료 옆에 있으면 자주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저 사람처럼 달려야 할 것 같고,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체력과 열정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가 타고난 에너자이저라고 생각했다. 함께 몇달 일하면서 그 역시 나와 비슷한 평범한 체력을 가지고 있고 번아웃과 증명 욕구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았다. 힘든데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꾹 참고 내달리는 그는 언제나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었고, 그 앞에서 동료들은 덩달아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 동료보다 덜 일하는 것을 들킬까봐, 실수할까봐 경계하고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결국 그는 번아웃을 호소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테트리스 블럭을 깨부수는 쳇바퀴같은 업무 말고 좀더 새로운 일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고 싶다며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가 떠나고 남겨진 일을 재분배하면서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는 비교하고 경계하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싶었다.


그 시기 프로젝트 일기의 주제는 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1명이 줄어든 만큼 남은 사람들의 몫이 늘었지만 꼭 이전에 하던 모든 일을 이전에 대한 방식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동료처럼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완벽하게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다시 정의하고, 꼭 집중해야 하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쓰고 싶었다. 다르게 일하고 싶었다. 지금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도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번아웃 없이, 중단 없이, 안정적으로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성장이 더뎌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더 크게 성장한다. 이게 내가 믿는 [우아한 반복]의 법칙이다.


새로운 일을 모두 멈췄다. 그리고 하던 일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매일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은 일을 하되 새로운 배움을 그 안에 넣어보기로 했다. 복리 이자가 불듯이 매일 조금씩 개선하다보면 어느 순간 놀랄 만큼 변화하고 성장해 있을 거라고 믿었다.


템플릿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진행 템플릿, 업무 가이드 템플릿, 업무 분장 템플릿. 오늘의 업무를 시작할 때는 어제의 업무 템플릿을 그대로 복사해서 그 위에 내용을 추가했다. 어제 써둔 개선 사항을 오늘의 업무에 반영하고, 오늘을 마치며 다시 개선 사항을 남긴다. 내일 일을 시작할 때는 다시 오늘의 템플릿을 복사해서 그 위에 내용을 쌓는다. 팀원들이 공통 문서함에 공통 템플릿으로 문서를 남기지 않고 개인 문서함에 개인 스타일로 문서를 쓰면 일일이 다시 다 복사해서 공통 문서함에 넣고, 다음부터는 이 곳에 내용을 쌓아달라고 요청했다. 귀찮고 짜증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템플릿을 꼭 써달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피카소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청했다. 피카소는 슥슥 몇 분만에 초상화를 그려줬다. 얼마를 주면 되겠다고 묻는 사람에게 피카소는 50만 프랑 (약 8,000만원) 이라고 답했다. “고작 몇 분 밖에 안 걸렸는데 50만 프랑이라고요?” 항의하는 사람에게 피카소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라고 답했다. 멀리서 보면 피카소의 40년은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그림 그리는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갖게 되기까지 매일 40년동안 훈련을 반복했다. 



남들은 몰라도 나 만큼은
나의 미세한 성장을 알아주어야 한다.



선 하나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 점 하나를 어떻게 찍을 것인지, 붓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터치할 것인지 매일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시도]-[행동]-[수정]을 통해 피카소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피카소가 정말로 매일 ‘완벽하게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완벽하게 똑같은 작업’을 했다면 절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을 이렇게 그리니까 훨씬 부드럽네? 다음에는 저렇게 해볼까? 끊임없는 수정과 적용을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미세한 조정과 변화, 성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스스로만큼은 그 변화를 똑똑히 관찰해주어야 한다.


뒷자리 동료가 “저 사람은 맨날 똑같이 일하네? 똑같은 템플릿에 결과 보고서 쓰고, 똑같은 이미지로 광고 소재 제작하잖아.”라고 생각할 때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대신, 나 스스로는 똑같아 보이는 일 사이 사이에 내가 만든 변화를 알아주어야 한다. 알고보면 템플릿 세부 항목을 바꾸었는데, 표 서식을 바꾸었는데, 똑같아 보이는 이미지들은 광고 발송 타겟이 달랐는데, 그래서 지난달보다 광고 CTR이 1% 나 상승했는데 뒤에서 슥 흘려 보는 사람은 그 미세한 성장을 모른다.


완벽하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던 대로 쭉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잘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다. 그것을 다름으로 인지할 때 배움이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



자연스럽게 업무 일기를 쓰게 되었다. 매일 퇴근 전 10분에 알람을 설정해두었다. 알람이 울리면 노트를 꺼내서 딱 10분 동안 기록을 남긴다. 업무 일기 작성의 핵심은 일의 도파민이 남아있을 때 글을 쓰는 것이다. 업무 시간에 어떤 감정에 휘말렸는지 복기하고 그 감정 아래에 숨어있는 의도와 욕구를 찾아낸다. 감정은 아주 예민하고 강렬한 신호 체계다. 매일 내가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다 보면 앞으로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느라 짜증이 났는데, 심지어 실수를 해서 더 짜증이 났다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적는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개선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하던대로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따로 시간을 빼서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방법을 수정해야 한다. 퇴근 전 10분 업무 일기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바꿀 수 있는지 발견하는 시간이다. 똑같은 일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뇌가 혼자서도 척척 알아서 최적의 방법을 찾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던 대로 하는 게 뇌 입장에서는 가장 에너지를 덜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던 대로 일하는 게 힘들고 싫다면 지금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뇌가 적응하고 나면 훨씬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일을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저 사람 말에 꼭 이렇게 반응 했어야 했나? 아주 사소하게라도 다르게 할 수 없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변화가 없다면 회고할 필요도 없다


업무 회고는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 집착과는 다르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다르게 시도해보는 ‘변화’의 과정이 있다는 게 회고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했으면 결과가 더 나았을텐데,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에서 끝나는 게 후회와 미련이라면 “그러니 다음에는 이렇게 바꿔보고 그 후에 결과를 다시 보자”까지 끌고 가는게 회고다. 회고의 핵심은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데 있다.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는 게 아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그보다 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재정의하는 시간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능력이 적절하게 잘 쓰이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처음 세웠던 의도를 잊지 않도록 자주 펼쳐보고 지금까지의 결과와 끊임없이 비교 대조하면서 미세하게 경로를 조정하는 과정이 회고다. 우리가 달려야 할 마라톤은 일직선의 쭉 뻗은 도로가 아니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 어떤 구간은 비포장 도로, 아차 하면 막다른 길, 오르막 길과 내리막길이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그런 길이다. 그러니 지도를 펼치고, 아니 이왕이면 아이패드가 낫겠다. 아이패드를 들고 구글맵을 켜서 두 손가락을 오므려 Zoom-in으로 전체 경로를 봤다가 다시 손가락을 펼쳐 Zoom-out으로 지금의 경로를 확대해보며, 전체 길이 어떻게 생겼고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줌인-줌아웃-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경로를 수정하며 나아가야 한다.


목적지까지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쓸데 없이 힘 빼지 말고, 이왕이면 옆 자리에 앉은 동료와 즐겁게 가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나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기왕 다니는 회사, 일 잘하고 싶다.” 이런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체력이 안 따라줘서, 상황이 안 받쳐줘서, 능력이 안 되서, 재미가 없어서 어느 순간 일잘러의 꿈을 접어버린 사람조차도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일 잘하는 사람이기를 꿈꿨을 것이다.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해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은 욕구, 이 사회에 굳건한 내 자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니까.


문제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에너자이저처럼 보였던 동료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면 밤 늦게까지 울면서 힘들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파워풀한 카리스마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던 리더도 가까이 지켜보면 불안해했고, 자신이 상처 준만큼 상처 받고 있었다.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없다.


회고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 자원이 인적 자원이라면 시간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단순하고 강력하다.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면 잠을 보충할 수 있고, 운동으로 체력을 키울 수 있다. 8시간 근무 중 반복 업무 1시간을 효율화하면 그만큼 차분하게 중요한 일에 고민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업무 회고는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한 평가다. 내가 내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세상도 내 시간을 존중해준다. 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세상은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연말 성과 평가 기간에 한 해를 돌아보며 나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얼만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가.

나는 업무를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는가, 우아하게 반복하며 성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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