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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04. 2023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파도를 타고 놀아야지


한 달에 한 번 코칭을 받고 있다. 지난달 코치님이 코칭을 마치며 했던 인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공명하는 가을 되세요."


가장 충만한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느끼고 경험한 것을 나누며 서로 공명하는 순간]이라고 답했던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요즘, 나의 [일하는 방식]에 변곡점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지금 나는 회사 생활 2.0에서 3.0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의 회사 생활

[1.0] 주어진 것을 이 악물고 열심히

[2.0] 시스템으로 효율을 높임

[3.0] 내맡김으로 다른 차원에 도달


그동안 템플릿, 시스템, 체계 만들기에 집중했다. 이제 그 바탕 위로 [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내맡길 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혼자서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공명하며 흐름을 타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어졌다.

중단했던 윤소정의 생각구독을 다시 신청했다. 업무만으로도 숨이 차서 한동안 읽지 못했는데 다시 보고 싶어진 것을 보면 내 안에 무언가가 소화되었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라는 신호다.


오랜만에 읽은 생각구독에서는 잊고 있던 문장이 다시 등장했다. 오래 품고 싶은 질문들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하면 궁극의 심플함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일을 잘한다는 것은 뭘까?


내가 만들어야 할 [공명]의 정의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내 안에 품고 있던 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 깊은 곳에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공명이었다. 공명의 내용과 대상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었고, 통제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공명]은 흐름 속에서 서핑하듯 자유롭게 내맡기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상황 앞에서 “이 일 하기 싫은데, 이 사람이랑 일하기 싫은데. 이렇게 하기 싫은데.” 생각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완벽하게 나와 맞지 않아도, 업무 파트너가 완벽하게 나와 맞지 않아도 지금 이 상황이 나를 위한 최적의 무대라고 믿고 진심을 다하기로 했다. '나에게 온' 일이라는 것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나와 함께하는 그 사람이 ‘있어야’ 내가 내 일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면 행복하게 성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길만 찾아다니면 평생 나 혼자 할 수 있는 규모의 일밖에 못 한다. 성장은 품을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누구나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 시스템을 의심스러울 정도로 단순하게 설계하고 싶다.


똑똑한 사람이 큰돈 못 버는 이유가 쓸데없이 이것저것 잘하려고 해서, 쓸데없는 포인트에서 굳이 더 생각을 해서다.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집단을 들여다보면 쓸데없이 디테일이 좋다.


심플하게 탁월해지자.


삶은 언제나 내가 꿈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하나만 품고서 말이다.




흐름에도 원칙이 있다


일이 바빠지면서 일터에서 자주 화가 났다. 나는 왜 비난받거나 통제당할 때 이성을 잃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걸까?


일터에서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할 때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게 기분이 나쁘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엥?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할 정도로 분노할 때가 종종 있다. 순간  머릿속에 끈이 탁- 끊어지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서 폭주하는 기분이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려보면 일은 일대로 엉켜있고 관계는 상할 대로 상해있는 데다가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써 버려서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도 못하고 하루가 다 가버린 후다. 그런 모습을 고치고 싶어서 우선 "도대체 왜 그러는지"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Q. 모든 분노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균형을 잃을까 봐 두렵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내가 틀렸을까 봐 두렵다. 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게 정말 내가 잘못돼서 일까 봐.


Q. 무리한 요구는 그냥 산뜻하고 우아하게 "안 돼요." 한 마디면 되는데 왜 안 되는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며 화를 내는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어차피 안 해줄 거면 가볍게 "네~ 생각해 볼게요." 한 마디면 되지만 그렇게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해주게 될까 봐!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까 [원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내 원칙을 무너뜨리는 게 싫은 거였다. 이 원칙은 생각 없이 쉽게 정한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고 조정하고 쌓고 조정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일 안에서 모두가 지속 가능한 최적의 타임라인과 프로세스를 정리했다. 엑셀 시트 컬럼 위치와 크기까지도 오랜 시간 미세한 조정과 반복을 통해 최적화를 시켜둔 건데, 그런 나에게 "그냥 한 번만 봐줘~" 이 말은 그 모든 시간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 상대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는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원칙의 무게를 몰라서였다.


[우아한 단호함]은 언제나 꿈꾸고 바라는 모습이다. 아직은 [단호함]만 장착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아함]도 장착하는 날이 오겠지. 나의 고유한 성향, [원칙]에 가치를 두는 점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이 원칙 덕분에 나는 꾸준할 수 있었다. 원칙 안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무리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원칙주의자인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못했다. 나의 원칙을 고지식하고 유별난 약점으로 생각했다. 원칙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을 만큼 원칙의 가치를 믿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 흐름을 지키는 원칙

나의 원칙을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전달하자.

상대가 원칙을 모를 때 그것이 나에 대한 무시는 아님을 알자.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레드카드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내 원칙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의 운동장에서 내보내면 그만이다.

내 규칙을 존중해 달라고 먼저 말하자.




내가 가야 할 방향에 집중하기


추석 연휴가 지나고 오랜만에 상담에 다녀왔다. 올해 삶에 대한 태도와 감정 변화를 깊게 겪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이전보다 [함께하는 것]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무엇이든 혼자해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으면 계속 신경 쓰이고, 회의 때 여럿이 이야기하면 도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다가 혼자 고민하면 그제야 일이 되는 사람이었다. 조금씩 함께하는 것이 편안해졌는데 그 이유를 상담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이전에는 남들과 함께 있을 때 고유한 색깔이 사라질까 봐 경계하고 두려워했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음... 사람들이랑 있어도 제 색깔이 사라지지 않아요. 그걸 느껴요. 회사에서 업무를 바꾸거나 조정해도, 새로운 일을 헤쳐나갈 때도,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저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알아요."


20대에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나'인 것처럼 꾸며냈다. 목소리가 낮은 편이지만 밝은 신입사원처럼 보이고 싶어서 억지로 얇고 높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진중하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지만 호탕한 것처럼 연기한 적도 많았다. 즐거울 때도 조용히 소리 없이 웃는 사람인데 하하하- 억지로 웃은 거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아! 사람들이랑 뭐 하는 거 제일 싫어!" 이렇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자신감도 생기고,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세상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사슬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상대를 존중하는 딱 그 정도의 리액션을 한다. 일부러 공감하는 척, 나도 비슷한 사람인 척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나고 별난 점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냥 그렇구나 한다. 나도 상대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다. 그 산뜻한 감각이 좋다.


아...! 이거구나. 흐름을 타고 놀려면 우선 내가 편안해야 되는 거였다. 혼자 있을 때에만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반쪽자리다.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나를 잃지 않아야 진정으로 나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없으면 타고 놀 흐름도, 주체도, 대상도 모두 없다.




편안하게, Slow Thinking


지난달에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위대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를 만났을 때 몰입하는 법에 대해서 배웠다.


    Slow Thinking 천천히 생각하고  

    Deep Thinking 깊이 생각하고  

    Long Thinking 오래 생각하기  

    이 세상에 오로지 그 문제와 나만 있다는 생각으로 집중하기  


몰입을 배우고 나서 [회사 프로젝트 문제 해결]이라는 노션 문서를 만들었다. 점점 정해진 일을 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일이 많아진다.


[회사 프로젝트 문제 해결] 노션 페이지


지금도 도통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몰입]에서 배운 생각법으로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고요한 아침 거실에 가만히 앉아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샤워를 하면서, 산책을 하면서 오로지 그 질문만을 마주했다. 그러다 보면 하늘에서 사과가 떨어지듯이 길이 보이기도 했다.




생각과 생각 사이, 연결하기


업무 강도가 높은 회사로 이직하고 긴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글쓰기로부터 점점 멀어지다 보니 생각 정리가 안 되는 기분이 들고 생각 정리가 안 되니 주변 정리도, 마음 정리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이라도 쓰는 습관을 놓지 않고 싶어서 지난 몇 달 동안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을 올렸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정리하지 않고 후루룩 써서 올렸다.


브런치 구독자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적지만 반응은 더 빠르고 강렬했다. 빠르게 도착하는 좋아요와 댓글에 도파민이 분비되었고, 그 덕분에 글감이 떠오르면 재깍 어울릴만한 사진을 골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의도한 대로 다시 글 쓰는 습관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뭔가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연결이었다.


긴 글을 쓰려면 꽤 많은 이야기 씨앗이 필요하다. 뿌리가 되는 생각을 중심에 놓고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 씨앗을 가져와 엮어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미 장기 기억 저장소로 가버린 이야기 씨앗들을 하나씩 작업대에 올려두고 연결을 할지 말지 고르고 꿰어내는 작업이다.


“이건 어때? 저기에 붙일까? 아냐, 이 주제랑은 좀 어긋나는 것 같은데. 아! 저번에 생각했던 그 이야기를 가져와볼까? 그게 뭐였더라…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자 집중! 집중! 리추얼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아! 로우키 커피 대표님 인터뷰였어! 메모장 찾아보자. 그래, 이거였구나. 이렇게 이어서 쓰자."


짧은 글을 쓸 때는 연결이 필요 없다. 그 순간의 경험과 감각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면 연결을 잊는다. 임시 저장한 키워드들을 붙잡아 연결해두지 않으면 먼지에 덮였다가 아스라져버린다. 나에게서 자꾸만 생각 씨앗들이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뇌 안에 둥둥 떠다니며 정리와 연결을 기다리던 소중한 생각 씨앗들은 자극적인 정보, 유튜브 영상, 충격적인 뉴스를 보는 한 순간에 팡-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씨앗들이 자유롭게 흐르던 자리에는 계획에 없던 불필요한 자극이 들어온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긴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글감을 제대로 연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단 연결부터 끊기로 했다. 인터넷과의 연결 말이다. 손글씨보다 타이핑이 편해서 생각이 떠오르면 일단 아이패드나 휴대폰, 노트북을 켰는데 문제는 그 기기들이 단순한 메모장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메모 기계들은 모두 “온라인” 상태에 있다. 외부 세계와 나를 연결해 주기 위해 쉬지 않고 정보를 보여준다. 그 때문에 접속 상태에서는 생각이 무르익기도 전에 자꾸만 탐색하려고 든다. 온라인에서 남의 생각을, 남이 찾은 해답을, 남의 방법을 찾아서 내 것과 붙이려 든다. 좋게 말하면 자료 조사이지만 지나고 보면 뻔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지름길이다.


나는 오래 걸리더라도 내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단기 수익을 위해, 글로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위해 글을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 길은 결국 나에게서 글을 빼앗아 무력화하고 내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쌓고 정제하고 묵히는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것이 시간의 축복을 받으며 글을 지켜내고 빛내는 길이다. 스쳐 지나가는 감각과 생각을 가득 수집한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 단단하게 이야기 씨앗을 연결하고 발굴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마침내 컴퓨터 앞으로 갈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자꾸만 쉽게 가려고 한다. 남의 해설을 훔쳐보려고 한다. 살아남는 지식은 누군가의 깊은 고민과 오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 역시 내 안에 쌓인 시간과 경험과 생각의 힘을 믿어야 한다.


가장 먼저 손으로 기록하기 위해 만든 일기장. 코칭, 상담, 업무, 생각 일기.



삶에 나를 내맡기기


그렇다면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답을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에서 찾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맡김]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맡김이란 호불호를 버리고 인생이 나에게 주는 것을 무엇이 되었든 겸허히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다. 인생이 나에게 준 것을 숙제가 아닌 선물로 여기고 몰입해서 해결하다 보면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 자세다.


내맡김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궁금해졌다. 내맡기는 삶은 끌려다니는 삶과 무엇이 다를까? 이게 내 인생이겠지 뭐, 하고 망연자실하게 포기한 채 삶을 받아들이는 것과 삶에 나를 온전히 내맡기고 삶이 건네는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태도의 차이는 뭘까?


그 답은 몰입, 원칙, 집중이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가진 것, 잘할 수 있는 것,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던져진 레몬을 인상 찌푸리며 꾹 참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이 레몬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집중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지 말고, 타인의 능력을 탐내지도 말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해결책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몰입하는 것이다.


내 삶은 숙제인가, 축제인가?

그것은 내 인생의 문제를 어떤 자세로 바라볼 것인가에 달려있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은 내 탓은 아니지만 나의 책임 가운데 있습니다.

나의 상황이, 나의 감정이, 내 책임이라는 것은 아주 멋진 일입니다.”


자주 듣는 명상 가이드 문장이다.


지금 내가 건너가는 이 고민의 시간은 미래의 나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이 모든 상황과 감정이 내 책임 가운데 있으므로. 내 상황이, 나의 감정이 나의 선택임을 알면 삶의 방향키는 나에게 주어진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은 내 앞에 펼쳐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흐름 위에 올라타는 것, 그것뿐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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