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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20. 2024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이 제목으로 책이 나왔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질문이다. 책 [일을 잘한다는 것] 저자 야마구치 슈와 같은 비즈니스 대가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정의가 있다. 지금은 모두 각자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가져야 하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는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할 줄 아는 능력이 일잘능력일 수도 있겠다. 말장난은 그만하고, 내 정의는 이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건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각자에게 맞는 무대가 있다. 최고의 MC로 불리는 유재석이 통계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성공했을까? 마케팅의 구루 세스 고딘이 배우의 길을 가야 했다면 성공했을까?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나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업무에 성과가 나는 사람이라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시공간에 모여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의 업무에서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월화수목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모여 얼굴 맞대며 일하는 회사를 떠나 일주일에 반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남들과 똑같이 왕복 2시간 출퇴근, 하루 8시간 근무를 한 것뿐인데 타고나게 약한 체력 탓에 두통과 위염을 달고 살았다. 출퇴근 노동에서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해방되니 숨통이 트이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재택근무의 좋은 점은 점심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 사이 점심시간에 충분히 쉬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보내면 쉽게 지치지 않고 업무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이직을 통해 나에게 맞는 조직 문화 속에 나를 데려간 후에는 팀 이동을 통해 나에게 맞는 업무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시도하는 것보다 복잡한 일의 질서를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만들며 영역을 확장하는 일보다는 정교하게 조율하고 그 위로 쌓아가며 위아래로 깊이를 더하는 일을 좋아한다. 작년 여름, 프로모션 마케팅팀에서 CRM 마케팅팀으로 팀 이동을 신청했다. 그전에 1년 동안 내가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간을 가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마케팅'이라는 큰 업무 범주는 동일하지만 일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팀이 어디인지 탐색하는 기간이었다. 오늘은 그 탐색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다시 일잘능력에 대한 나의 정의로 되돌아가보자.


"일을 잘한다는 건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질문을 끝까지 파고들어 보겠다.



"그렇다면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인가?"


일을 잘하게 되려면 우선 나에게 맞는 환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즉, 일을 잘하려면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꾸어보자.


"내가 일에서 칭찬을 받았던 때는 언제지?"

"내가 일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던 때는 언제지?"

"나는 누구와 함께 일할 때 기분이 좋지? 그 사람은 어떤 성향과 성격을 가지고 있지?"

"내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흥분하는 상황은 언제지?"


위 질문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일을 잘하려면 먼저, 일하는 환경에 연관된 모든 요소들을 촘촘하게 점검하며 나에게 맞는 환경이 무엇인지 정교하게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기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모'가 아니라 '기록'이라는 점이다. 메모와 기록의 차이는 시스템의 유무다. 메모는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생각 더미여서 쌓일수록 오히려 꺼내 쓰기가 힘들다. 산처럼 쌓여있는 옷더미에서 원하는 옷을 찾으려면 힘든 것과 같다. 기록은 일정한 규칙에 맞추어 쌓아 두기 때문에 필요할 때 바로 꺼내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칙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하루에 5만에서 7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을 전부 메모할 필요는 없다. 그중에서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꺼내어 가공해서 편집하고 데이터화할지 결정한 후 그 방향에 맞게 기록해야 한다. 기록을 하려면 '의도'를 먼저 세워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수면 패턴을 찾아서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수면 기록을 한다. 일기장 첫 줄마다 동일한 템플릿을 만들어두고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아래 줄에는 피로감과 기분을 적는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계획한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는지 최적의 패턴을 찾아가는 것이다.


수면 패턴처럼 업무 방식도 기록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매일 업무를 마치고 오늘 일하면서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을 적는 것이다. 주말에 5일 치의 기록을 보면서 반복되는 게 무엇인지 찾아서 요약한다. 그리고 월말에는 그렇게 모인 4주간의 요약 기록을 보면서 다시 요약한다. 이 월말 데이터는 다음 달 월말 기록을 작성할 때 다시 본다. 이 과정은 엑셀에서 방대한 raw 데이터를 가지고 피봇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과도 같다. raw 데이터를 보고 한눈에 데이터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표나 차트로 가공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으로 도식화해야 비로소 이 데이터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내가 반복해서 적는 좋았던 것들  

 업무 시스템과 템플릿을 만들고 끊임없이 개선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과정   

 업무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머릿속에 한 장의 지도로 만드는 것   

 동료들에게 나와 함께 일해서 든든하고 배울 점이 많다는 피드백을 받는 것   

 내가 동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진심으로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반복해서 적는 싫었던 것들  

 매번 임기응변으로 업무를 하고 결과 정리를 하지 않는 동료와 일하는 것. 결국 해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벼락치기 공부가 남는 게 없듯 이런 방식으로 일하면 쌓이는 게 없다.   

 시스템을 중요시하는 내 방식이 초반에는 시간 투자가 많은데 이것을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조직과 동료를 만날 때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 그는 알까?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조직과 동료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록하지 않아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기록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으면 왜곡된다. 기억은 빈도와 강도에 따라 저장된다. 정말 중요하다고 해도 자주 생각하지 않으면,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잊힌다. 기록은 기억하고 쌓아서 그것으로부터 패턴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내 안의 좋은 것을 꺼내 쓰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내 안에 아무리 좋은 것이 넘쳐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기록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 저장소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기억의 씨앗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기록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도 기록해야 다음에 그것을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다. 매번 반복되는 문제에 시달린다면 해답은 기록이다.


내가 계속해서 메모나 글쓰기가 아닌 [기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록은 분명한 의도를 가진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할 때 비로소 나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위의 질문을 바꾸어야겠다.


"나는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느냐로 연결된다. 통제라니, 이 단어가 억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통제라는 단어에 스트레스부터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통제는 정해진 규칙을 완벽하게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통제의 의미를 넓혀보자. 진정한 통제는 온전한 이해다.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책상에 앉혀두고 1시간 동안 책을 보게 만드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 억압이다. 진정한 통제는 의도를 세우고 반복하는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지금 공부하면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공부하면 좋은지 함께 고민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통제다. 단기적으로는 '매일 1시간 책 보기'라는 똑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장기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정말 '매일 1시간 책 보기'일까? 진정한 의도는 '매일 1시간 독서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지혜와 용기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아닐까. 진정한 통제는 의지와 의도의 차이를 이해하고 의도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뇌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의지는 오래가지 못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의도는 중간중간 실패하더라도 결국 원하던 길로 가게 만든다.


질문을 다시 이렇게 바꿔볼 수 있겠다.


"나의 의도를 제대로 세우고 있는가?"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루틴이 무너지는 게 괴로웠다. 주 5일 사무실 근무를 할 때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집을 나가야만 했기에 의지나 의도 없이도 규칙적인 루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니 일어나는 시간도 불규칙해지고 무엇보다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늦게 일어나서 헐레벌떡 준비하고 바로 컴퓨터를 켜서 일하다 보니 일과 일상의 분리도 안 되고 오히려 집중이 안 되는 시기가 있었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일에 잡아먹힌 기분이었다. 자유라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다른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것이 자유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더라도 그 시간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는 게 자유 아닐까? 그 당시 나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불규칙하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의도를 다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내 선택으로 시작하자   

 일상에 규칙을 부여해서 하루를 온전히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바탕에 세우고 변칙을 너그럽게 허용하자   

 아무리 바빠도 멀티 플레이는 하지 말자. 한 번에 하나씩. 양치할 때는 양치만, 밥 먹을 때는 밥만, 보고서 쓸 때는 그 보고서에만 집중하자.   

 지금 이 순간, 나는 도망자처럼 쫓기며 달려가는 게 아니라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내 춤의 리듬은 내가 정한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도착했다. 나의 의도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내 삶의 의도는 무엇인가."


생명과 죽음 사이,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태어난 김에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소중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의 의도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못했거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혈액형이나 성별, 눈동자 색처럼 태어나자마자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기 전,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내 삶의 의도를 만든다. 나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 의도였다. 나 하나를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 주변에는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린 나에게 전가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그들의 삶이 힘든 게 내 탓인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인생 전체가 억울해졌다. 그 억울함에서 빠져나와서 나는 이용당한 것이 아님을, 착취당한 것이 아님을, 단지 그들을 사랑해서 그 무게를 같이 짊어지고 싶었을 뿐임을 깨닫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관계가 무너지고 부서졌다. 나 하나를 되찾기 위해 나를 제외한 모두를 잃었다. 내 삶의 무게를 전가할 사람을 모두 잃었으므로 나는 누구와도 내 짊을 나눠질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를 오롯하게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 성숙한 어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속이 텅텅 빈 성공인 셈이다.


천천히 감춰진 의도와 욕망, 상처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은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삶의 의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때에도 '나는 꼭 스스로를 오롯이 감당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오래 심리 상담을 받고 글을 쓰면서 그것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내 필명 [단단]과 인스타그램 아이디 [orotte_moment]는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 오롯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 의도의 실체를 마주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른들이 전가한 무게에 짓눌린 어린 나를 구원해 주는 일이니까, 나를 위해서 나는 여전히 변함없이 계속해서 그 의도를 지키고 싶다.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질문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시작된다.


"내 삶의 의도는 무엇인가."


내 기록은 매일 아침 의도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하루가 어땠으면 하는지 [오늘의 기대]를 한 줄로 적는다. 그 아래에는 3~4줄로 풀어서 [기대]를 적고 그 기대에 얽힌 [감정]을 적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다시 일기장을 펼쳐 [성취] 한 것들을 적는다. 기대했던 것을 이루었는지, 감정은 조금 나아졌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할 것들을 찾아 적는다. 아무것에도 감사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적는다. 그런 날에는 미리 준비해 둔 기본 감사 항목을 기계처럼 적기도 한다. "지붕 있는 집에서 잠들 수 있어서 감사해." "숨 쉴 수 있어서 감사해." 이 같은 문장이라도 매일 적다 보면 감사가 습관이 되어 사소한 감사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의도를 세웠으면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반복]이다. 아침의 [기대]와 [감정] 저녁의 [성취]와 [감사]를 주말에 돌아보며 요약하고, 월말에는 한 달의 기록을 돌아보며 요약한다. 그러면서 삶의 의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어떻게 실현되는지,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극적으로 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한다. 나는 내 삶을 아주 촘촘하게 놓치지 않고, 미세한 모든 변화를 목격하고 응원하고 감사하는 유일한 타인이자 증인이자 당사자다.


일을 잘하는 것과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은 다르지 않다. 좋은 동료와 되는 것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나를 응원하고 인정하는 것과 타인을 응원하고 인정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기록을 할수록 기록이 단순해지고 명료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하나의 본질로 모인다. "나는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내 삶의 의도를 세우고 감사하는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하루 종일 기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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