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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Dec 10. 2023

내 인생은 내 선택인 걸까?


그 선택은 내 선택이었을까?


사회 초년생 때는 내 선택이 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했다.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컸다. 그때는 내 선택의 비중이 90%라고 느꼈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칠까 봐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연료로 달렸다.



11년 차 직장인이 된 지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고르고, 네 번째 직장으로는 IT 스타트업에서 성장한 기업을 고른 것이 정말 오롯한 나의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 선택들은 거대한 사회 경제 흐름의 파도 위에 있었던 것 아닐까? 지금까지 내 인생은 그럭저럭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해 왔다. 그러나 직장 경력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조금씩 막막해졌다. 아니 어쩌면 저금리와 고금리, 세계화의 종말을 몸으로 느끼면서 불안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궁금해졌다. [대학 입시 - 전공 선택 - 취업 - 이직 - 결혼 - 이직 - 이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이 내 선택이 아니라 시대와 흐름이 90%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내고 싶어졌다. 내 인생을 바꾸고 결정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 질문은 한 장면에서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회사 밖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메리는 이전에 다니던 대기업이 더 낫지 않아요? 칼퇴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곳이니까요.”



그 질문을 듣고 생각나는 답은 이거였다. “그래도 대기업 다닐 때보다 이직하고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강연, 아티클 연재 모두 이직하고 하게 된 거예요. 대기업보다 네카라쿠배 타이틀이 요즘 20대, 30대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잖아요.”



대기업보다 네카라쿠배. 바로 그 흐름을 타고 이곳으로 이직했다. 첫 직장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틈 날 때마다 비난하면서도 2012년 취업 준비생이던 나는 그런 곳만 쏙쏙 골라서 지원서를 넣었다. 왜? 그런 기업들이 좋아서? 아니, 사실 그때는 어떤 기업이 좋은지 몰랐다. 시대가 나에게 그런 곳에 가야 한다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럼 2022년의 나는 왜 네카라쿠배로 이직했을까? 왜 2013년에는 지원하지도 않았던 회사들에 2022년에는 그렇게도 열심히 문을 두드렸을까?



어쩌면 2013년의 대기업들이 보수적인 기업 문화 속에서 업무 집중보다는 사내정치에 힘썼던 것도 그 시절 내가 생각한 것처럼 무능하고 뒤쳐져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수출이 잘 되니까, 내수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개인의 업무 효율 개선보다는 정책과 경제 상황이 기업 실적에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랬던 것 아닐까?





정말 그 선택 때문이었을까?


기업에 다니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면 마음공부만큼 경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며 나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를 알았으니 이제 내가 올라탄 파도의 실체, 이 바다에 대해 알아야겠다. 내 인생을 좌우하는 거대한 흐름인 경제를 그동안 단순하게 주식, 비트코인, 부동산으로만 봤던 것 같다. 에이, 나는 그런 리스크 있는 투자는 안 해. 그 시간에 내 몸값을 올리는 게 더 수익률이 좋은걸?



지금까지는 꽤 괜찮은 전략이었다. 부지런한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연봉을 꽤 올렸다. 그 사이 세계에 여러 변화들이 불어닥쳤다. 코로나와 전쟁, 그로 인한 여러 부작용과 위험들. 그 변화들은 경제를 마구잡이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저금리와 늘어난 유동성으로 폭주한 부동산과 비트코인, 주식으로 돈을 벌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트랙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달렸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제 변화는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미리 알고 대처할 능력은 여전히 없지만, 알고도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시 경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에 내가 한 선택, 그 결과, 그 후로 세 번의 이직을 거치며 내가 내린 결정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내 선택이라고 굳게 믿었던 생각과 행동의 배후에 있는 거시 경제를 알아야겠다고 말이다.



대학교 1학년인 2008년부터 2023년까지의 초근현대 경제 역사를 알고 싶어졌다. 이 주제에 대한 책이 한 권쯤은 있지 않을까? 검색창에 [2010년대 한국 경제 책 공부]라고 검색하니 책 한 권이 보였다.



경제 1타 강사로 유명한 오건영의 [위기의 역사] 이거다. 그렇게 2주 동안 출퇴근 지하철에서,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어른이 되어 내가 했던 선택들과 그 선택을 둘러싸고 있던 경제 상황에 대해 공부했다.





인과관계라는 착시 현상



인간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꾸만 법칙을 만들어낸다. 지난 10년간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친구가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값은 장기 우상향 한다고 믿는다.



물론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관점 아래 몇몇 연속적인 사건들에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 시공간 안에서는 맞는 말일 테니까. 적어도 유동성이 넘쳐흐르던 시기에는 투자 안 하고 저축만 하는 내가 틀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투자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투자 안 하고 있으면 또 언젠가는 내가 바보였어... 를 외치겠지.



다음 분기점이 언제든 올 수 있으며 늘 변화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 잃어도 괜찮은 게 아니라면 다 걸면 안 된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라는 말은 이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의 총합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미래를 보장해 줄 정보를 알려준다면 그는 둘 중 하나다. 신이거나 사기꾼이거나. 난 신도, 사기꾼도 믿지 않는다.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회사를 계속 다니며 이 공부 저 공부를 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변의 법칙은 없다. 반복되는 위기에서 배울 것은 자만하지 말라는 것. 언제든 다 잃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 그러니 삶에 인색할 필요도 없고 삶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현재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다 잃어도 무언가는 남을 것이다.





원인은 격차였다


은행은 장단기금리 차이로 돈을 번다. 단기로 예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예금보다 높은 금리에 장기로 대출을 해준다. 주식과 부동산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투자는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 가치가 낮을 때 사서 가치가 높아지면 팔고 그 차익을 챙긴다. 가치 차이이며 시점 차이다. 관계에서는 정보의 차이가 권력을 결정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쪽이 권력을 갖는다. 정보가 없는 쪽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결정권을 내어줘 버린다. 조금 더 가까운 관계에서는 마음의 차이가 권력을 갖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덜 사랑하는 쪽에게 지게 되어 있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2008년에 금융 위기가 일어났다. 신문에서 자주 보던 큰 회사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문득 IMF 때 대학 졸업반이어서 취업이 정말 힘들었다던 논술 과외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그때보다야 지금이 낫지 않을까, 어차피 졸업하려면 4년은 더 남았으니 일단 대학 생활이나 즐기자고 생각했지만 불안했다. 남들 다 돈 잘 벌고 잘 사는데 나만 그러지 못할까 봐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저렇게 해야 한다더라 하는 말들에 휩쓸렸다. 특별할 것 없는 대학 생활이었다. 3학년까지는 때 되면 과제와 시험공부를 했고 용돈 벌이로 꾸준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2011년에는 친구들을 따라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다녀왔다.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다. 40개 회사에 지원하고 39개 회사에 떨어졌다.



그때는 어떤 회사에 가야 할지, 어떤 일이 나에게 잘 맞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고민은 정말 머리 터지게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모르겠다는 거다. 더 문제는 그걸 알아낸다고 해도 나에게 딱 맞는 회사에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안전한 선택은 무엇일까. 그때의 나에게 안전한 선택이란 학교 취업 지원 사이트에 채용 공고가 올라오면 부지런히 지원해 보는 것뿐이었다. 한 번쯤 이름 들어본 대기업에 들어가면 그래도 다닐만하지 않을까? 여기는 들어가기가 힘들 테니까 사람이라도 많이 뽑는 영업 직무를 써볼까. 내가 세울 수 있는 전략이란 그 정도였다.



나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했고, 회사에 대한 정보는 무지했다. 나에 대해 잘 몰랐으니 나에게 잘 맞는 회사를 선택할 수 없었고, 회사에 대해 잘 몰랐으니 지원하는 족족 불합격이었다. 전쟁 같았던 졸업 학기가 끝나갈 무렵 합격 안내 문자를 받았다. 40개 넘는 회사에 지원했고, 39번의 불합격 통보 끝에 가까스로 얻어낸 첫 최종 합격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기약 없는 백수가 될지도 모르는데 재고 따질 여유가 있을 리가. 스스로를 사지로 몰고 가는 선택을 한 이유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하다는 건, 대안이 많다는 것


SVB 은행이 파산으로 가는 과정에서, SVB는 단기로 받은 예금으로 과도하게 만기가 긴 장기국채에 투자하게 된다. 경제 호시절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으로 국채 가격이 하락할 줄은 몰랐을  것이고, 예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SVB는 인출해 줄 예금이 부족할 정도로 무리하게 많은 자금을 장기국채에 넣어버렸다. 금리 상승으로 경제 흐름이 바뀌었을 때 SVB에게는 대안이 없었다.



외환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금리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가 상승률도 높았고 가계 저축으로 기업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인 데다가 저축보다 투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1996년 OECD 가입과 함께 금융 시장이 개방되었다. 국내 은행의 높은 금리에 대출을 주저하던 기업들은 달러 대출을 받기 시작한다. 아마 달러 빚을 내던 시점에는, 환율이 오르면 원금과 이자까지 갚아야 할 빚이 높아진 환율만큼 두배로 덩달아 오르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정환율제에 가까운 관리변동환율제였으니까.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 변동환율제가 되었고, 기업들의 달러 빚 부담은 결국 부도로 이어졌다. 너무 많은 자금을 달러 대출로 끌어온 탓이다.



안전하려면 적절하게 분산했어야 했다. 하나의 선택지에 올인하는 전략은 언젠가는 문제가 된다. 영원할 줄만 알고 믿어왔던 법칙들은 특정한 시기의 현상이었을 뿐이다. 지난 10년간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내년에도 집값이 오르리라는 보장은 없다. 계속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가지고 있는 자산의 100%를 넘어 부채도 자산이라며 가진 돈보다 더 많은 대출을 내서 집을 사게 되면 대안이 줄어든다. 그만큼 위험해진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에게도 대안이 없었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회사원이거나 백수이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대안이 없어서 불안하고 위축됐다. 어떻게든 회사 안에서 적응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고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때 나에게 일은 곧 회사였다.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첫 회사를 무작정 퇴사한 후 백수가 되어 바로 다시 취업 준비를 한 이유는 회사가 아닌 다른 형태의 일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회사 말고 대안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황금 같았던 20대의 백수 시절을 즐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지만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첫 실패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빨리 잡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선택도 대기업 신입사원이었다.



두 번째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떻게든 대안을 만들자."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대학생 때 직업에 대한 옵션을 여러 개 준비해 두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이제라도 회사 밖에서 경쟁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베이킹 클래스와 티 클래스를 다니며 주말마다 빵과 케이크, 과자를 만들었다.  내 관심사를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실험했다.



3년 정도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써가며 꾸준히 시도한 끝에 기회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올린 채소 요리 일기를 보고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이 왔다. 그즈음 이직한 회사 선배로부터 "우리 회사에 너한테 딱 맞는 포지션 채용 중인데, 지원해 볼래?" 제안이 왔다. 선배는 대기업 중에 이렇게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이 없다면서 자신은 정말 만족한다고 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11시-3시 고정 근무 시간만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니 나처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회사가 없다는 것이다. 20년 업력의 전통 유통 대기업에서 5년 차의 신생 대기업 계열사로의 이직이었다. 모기업의 재계 순위나 인지도는 5년 차 신생회사가 더 좋았지만 커리어 성장이라고 볼 수는 없는 선택이었다.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회사원으로서 경쟁력을 더 갖추는 것보다 회사 밖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직 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책을 쓰고 홍보하면서 SNS 계정도 열심히 키웠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회사 다니며 SNS로 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며 강의 제안이 왔다. SNS에 올린 비건 베이킹 사진을 보고 비건 마켓에서 셀러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대안을 탐색하는 시기였다.





내 몫 이상을 탐내지 말라


그즈음 코로나 초반 쇼크가 지나고 금리 인하와 재정 정책 확대로 시장에는 돈이 넘쳐났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들이 비슷했다. 넘쳐나는 돈은 코로나 시기에 가속화된 비대면 전환 흐름을 타고 IT 기업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갔다. 일명 FAANG (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이라 불리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식은 자고 나면 올라있었다. 우리나라 시장도 비슷했다. 네카라쿠배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의 가치가 훌쩍 뛰어올랐다.



2012년 내가 취업 준비할 당시에는 모두가 삼성, 현대, LG, SK, 롯데와 같은 재계 10위권 기업에 들어가기를 꿈꿨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취준생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빅테크 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성장기를 지나 안정적이지만 시스템이 이미 너무 잘 갖춰져 있기에 개인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전통 대기업보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빅테크에서 회사와 함께 개인도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빅테크 기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한 시기였고, 기업들은 투자금으로 더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 경쟁적으로 인재를 영입했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육성에 시간이 필요한 신입사원보다는 돈을 더 주더라도 당장 일을 해줄 경력사원이 필요했다. 대기업에서 일 잘하는 인재가 온다면 연봉을 더 높여주고 데려오는 게 이득이었다. 더 멋져 보이고, 돈도 더 많이 주고, 성장 가능성도 더 많은 옵션이 내 앞에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네카라쿠배 중 한 회사로 이직했다. 네 번째 회사를 선택하던 마음은 첫 회사를 선택하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이 인정하는 선택지 안에서 결정하고 싶었다. 쉽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직 준비를 하면서 빅테크로 옮기면 워라밸은 포기해야 할 텐데, 회사 밖에서 대안을 찾는 탐험은 당분간 미뤄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 독립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회사 생활을 당분간 이어가야 한다면 몸은 조금 힘들어도 나라는 브랜드의 상품성을 더 올려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좋은 선택일 거라고 판단했다. 내가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모두 "회사원이면서"라는 수식어 덕분에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원이면서 SNS를 키우고, 회사원이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회사원이면서 티클래스를 여는 이 활동을 나처럼 대안을 찾는 회사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워너비 회사원일수록 더 흥미롭지 않을까? 요즘 워너비 회사원은 대기업보다는 네카라쿠배에 다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던 거다.



그 판단은 맞았다. 이직을 하고 더 많은 기회가 다가왔다.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 시장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아직 고금리 기조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기 전이었다. 온라인 강연 플랫폼,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 온라인 독서모임, 온라인 커리어 커뮤니티에서 자주 협업과 제안 메일을 보냈다. 업무 강도가 센 회사로 이직한 후 하루종일 낮에는 업무 하느라 애쓰고 밤에는 퇴근하고 강의 준비를 하느라 새벽까지 일했다. 뭔가 내 삶이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졸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달리던 시기였다.



회사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한 회사에는 95년생 팀장이 있을 정도로 승진 시스템이 유연하고 보상 속도가 빨랐다. 팀원들은 "곧 나도 팀장을?" 기대에 부풀어 더욱 열심히 일했다. 모두가 업무에만 몰입하는 분위기, 팀장과 연차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위계도 크지 않은 수평적인 분위기, 계속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 고금리와 경기 침체, 전쟁이 찾아왔다. 투자처를 찾아 헤맬 만큼 넘치던 돈은 갑자기 사라졌다. 매주 10명 넘게 인재를 영입하던 회사는 채용 중단을 발표했다. 당분간은 퇴사자가 있어도 충원은 없다고 했다. 팀원들은 예전처럼 빠르게 팀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회사가 성장하고 인력이 늘어가야 새로운 팀이 생기고 새로운 팀장 자리가 생기는 것이니까. 마케팅 비용이 줄었고, 잘 나가던 서비스들이 하나둘씩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연락이 왔던 헤드헌터의 문자와 메일이 잦아들었다. 강의와 협업 제안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성장했던 게 맞나? 한껏 부푼 시장과 함께 그저 바람만 든 것은 아닐까.



외환위기를 이겨낸 기업 대표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무리하게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달러 빚이 많지 않았어요." 어떤 상황이 와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본질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 이상은 자신의 몫이 아니며 더 욕심 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코로나 호황기에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러다가 회사 밖에서 버는 돈이 월급을 추월할 수도 있겠는데? 남의 일 말고 내 일 하면서 지금처럼 살 수 있겠는데? 그때 바라봤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경쟁력이 아니라 나의 성장'세'였다. 늘어나는 협업 제안, 늘어나는 부수입이 나의 경쟁력이라고 착각했다. 그것이 정말로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법이다. 나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수영복이 없었다. 물이 다 빠지고 나서야 예측 가능한 저성장이 불안한 초고속 성장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다. 단기 흐름에 파도를 잘 타며 서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파도에도 이겨낼 튼튼한 배를 만들어 타는 것도 중요했다.



저성장의 시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침체의 시대가 찾아왔다. 경제전문가들이 올해 초 2023년은 '상저하고'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상반기는 경기가 안 좋지만 하반기에는 풀릴 것이라는 전망), 한 해가 마무리되는 지금 아무도 상저하고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몸집을 불리고 파도를 타는 것보다 나만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차근차근 쌓으며 현재에 충실할 때다. 미래가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며 큰 변화에 내 삶을 걸지 말고 땅바닥에 두 다리를 단단하게 붙이고 걸어 나갈 때다. 회사원인 나는 회사 생활에 오히려 마음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다음 파도가 밀려올 때는 10년 차 직장인이 아닌 15년 차, 20년 차 직장인으로서 더 큰 이야기 판을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문서 정리, 업무 회고, 기록법 정도라면 그때는 조직 관리나 전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파도에서 내가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꼭 지금 회사를 뛰쳐나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내 몫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답게 성장하고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건영 팀장이 전해준 4개의 위기 (외환 위기, 닷컴 버블, 외환 위기, 인플레이션 위기) 이야기를 통해 위기의 시대를 건너가는 지금 내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며 하나의 질문을 발견했다.


"그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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