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리추얼 메이커로 2년 넘게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는 메이트(참여자) 입장에서만 기록을 남겼다. 지난주 밑미팀과 1:1 인터뷰를 하면서 메이커로서 리추얼이 좋은 이유, 리추얼로 만든 변화, 리추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봤다.
** (참고) 올해 초에 남긴 2년 간의 리추얼 회고
https://brunch.co.kr/@melanie-jg/268
"내 리추얼의 매력이 뭘까." 이 질문은 메이커인 나의 강점이 뭘까,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똑같은 활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하느냐 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이 누가 하느냐 이다. 매월 순식간에 마감되는 리추얼을 보면 부럽지만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걸 그 메이커가 했기에 매력이 있는 거지 내가 똑같이 한다고 그게 내 강점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이고, 그래서 어떤 리추얼 메이커가 될 수 있느냐다. 리추얼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메이커의 성향에서 시작한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남는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특유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공명한다.
리추얼 메이커로 성장한다는 것은 나의 리추얼을 나답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메이트가 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나다운 리추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나는 통제 욕구가 강하다.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일이 흘러갈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안정감을 느껴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무작정 즉흥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고 독려한다면 오히려 더 위축된다.
메이트도 그러지 않을까? 메이커로서의 모든 행동을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 1. 자기소개 템플릿
처음 리추얼을 경험하는 메이트는 커뮤니티 멤버들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3주 동안 매일 같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잘 맞는 사람들일까. 내가 여기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뭐라고 소개하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지?'
매월 리추얼 단톡 방이 열리면 두 가지 공지를 한다. 자기소개 템플릿과 선언 미팅이다. 자기소개 템플릿에는 매월 동일한 질문 4개가 있다.
나를 소개해요
1. 이름 or 닉네임을 알려주세요.
2. 리추얼을 신청하면서 어떤 기대가 있었나요?
3. 이번 달에 하고 싶은 공부는 무엇인가요?
4. 그 목표를 이룬 3주 후의 나를 상상 해보세요. 대견한 미래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이 질문은 모두 하나하나의 기능이 있다.
리추얼 메이트 리스트에는 밑미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할 때 기재한 닉네임이 노출된다. 밑미 닉네임, 카톡 아이디, 줌미팅 이름, 실제 스스로 소개하는 이름이 모두 다른 경우가 꽤 있다. 비대면 모임이라 얼굴 없이 닉네임으로만 서로를 알아봐야 하는데 이름이 다 다르면 알기 어렵다. 이 질문을 통해서 어떤 이름을 사용할 것인지 확인한 후 "이곳에서 이 이름으로 불러 드리면 될까요?"하고 묻는다. 이 질문을 받은 메이트는 자연스럽게 닉네임을 통일해 주기에 서로 헷갈리지 않고 쉽게 기억하고 관계 맺을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리추얼 신청 계기를 묻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내 리추얼은 브런치 보고 왔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다. 밑미팀 정연님도 브런치 유저와 밑미 유저가 꽤나 공통점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일상에서 경험한 것을 회고하고 기록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한 분들이 브런치와 밑미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세 번째 질문은 이번 달에 하고 싶은 공부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공부 주제나 방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목적이다. 같은 공부를 하는 메이트를 만나면 반갑고, 공통점과 유대감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질문은 처음에는 부끄러워하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질문이다. 마음 챙김과 명상에서 영감을 받은 질문인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이미지 트레이닝이 목표를 이룬 나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그 성취의 감정을 심상화하는 것이다. 시각화와 심상화를 해본 목표는 강력하게 기억되고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는 힘이 있다.
이 자기소개는 한번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월별 리추얼 노션 페이지에 저장해 두고 선언 미팅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함께 본다. 나와 비슷한 내향인인 메이트 분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분명할 때 오히려 더 자유롭게 풍부한 이야기를 한다. 리추얼 중간중간 메이트의 자기소개를 보면서 원하던 목표에 가까이 가고 있는지, 목표나 마음 가짐에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고 댓글로 코멘트를 남긴다. 내 리추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이 세심한 관찰에 감동을 받는다고 자주 말한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 2. 일정 공유는 가능한 자세히
리추얼에 익숙하지 않은 메이트는 선언 미팅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줌으로 첫인사를 나눈다고? 어색하겠다. 1시간 동안 줌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냥 가지 말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단톡방에서 자기소개가 한 차례 이루어지고 잠잠해지면 선언 미팅 공지를 한다. [일정] [줌링크]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미리 볼 수 있는 자료]를 공유한다.
촘촘한 안내와 공지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메이트가 참여하는지 미리 알고 싶고, 메이트가 일정과 리추얼 활동을 쉽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서 자주 자세히 안내를 한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 3. 댓글은 24시간 이내로
오래 인연을 이어가는 메이트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제 리추얼이 습관이 되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매월 등록하는 이유는 여기서 주고받는 응원과 지지 때문이에요." 밑미는 비대면 커뮤니티이기에 댓글이 응원과 지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댓글을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생각보다 꽤 크다. 나는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메이트 기록을 읽고 댓글을 남긴다. 이 시간만 모아도 내 공부를 할 시간이 꽤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꼭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이유는 모든 메이트가 "이곳에는 언제든 내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주고 답장해 주는 사람이 있어."라는 다정한 안정감을 가졌으면 해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세상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어도 살만하다.
내 원칙은 24시간 이내로 댓글을 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하루 이상 밀리면 나 스스로 댓글 달기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하루 안으로 답을 들어야 비대면이지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감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공부 리추얼 안에는 다정한 댓글 문화가 정체성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모든 글에 댓글을 달지 않아도 치어리더와 메이트 분들이 서로의 글에 답을 남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성실하게 댓글을 다는 이유는 "메이커가 전하는 응원과 인정"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느낀 것인데, 리더는 자신이 맡은 역할의 무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리더는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구성원에게 미친다. 스스로 가진 영향력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힘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오히려 그 힘을 마구잡이를 쓰지 못한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지위를 이용하고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것이다.
24시간 이내로 예측 가능한 지지와 인정을 애정을 담아 보낸다. 그렇게 보낸 2년의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 더 크게 불어나서 나에게 돌아왔다. 나 역시 이 공간에서 언제든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거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돌아갈 곳이 생겼다. 나에게는 리추얼이 그런 곳이다. 하루 1시간 댓글 다는 것이 수고로움이 아닌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나를 늘 찾아주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성취이며 감사할 일이다.
내 리추얼이 좋았다는 피드백 중 하나가 "저도 몰랐던 제 키워드를 이곳에서 선물 받았어요."라는 것이다.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면서 숨은 장점과 매력을 발견하는 재능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재능은 꾸준한 기록으로 만들어졌다. 10년 넘게 퇴근 후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순간에 기쁨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내 반짝임을 발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반짝임을 발견하려는 끈질긴 마음"이라는 재능을 얻었다. 그 재능이 내 강점을 파악하는 데만 쓰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매일 밤 메이트의 기록에서 문장을 수집한다. 하나의 기록에서 한 문장씩 모아서 메이트의 자기소개 아래에 차곡차곡 모아둔다. 일주일이 지나면 수집한 문장들을 관통하는 단어, 이야기, 생각, 마음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나 한 시기에 한 가지 거대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자주 발견하는 키워드는 [용기]와 [꾸준함]이다. 리추얼을 찾아오는 이유는 더 나아가보고 싶은 열망, 그 열심을 꾸준한 습관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메이트가 건네주는 일상과 배움에 대한 기록에서 나는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반짝임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고 새롭게 배우고 채워야만 닿을 것 같은 세계가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발견은 다른 삶을 선택하지 않고도 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회사 밖에서 이런저런 외부 활동을 하면서 [정성스럽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시간과 마음과 에너지를 더 써야만 하는 스스로가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는 게 적더라도 마음을 더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소중해서 정성을 들이는 게 아니라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일도, 사람도, 취미도 모두 그렇다.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정성을 쏟아주는 사람에게 뭔가 더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메이트의 모든 기록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기록에서 문장을 수집해서 키워드를 찾아주는 일은 리추얼 메이커가 굳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매월 선언미팅을 위해 공부하는 마음에 대한 새로운 강의를 만드는 것 역시 의무가 아니다. 회고 템플릿을 만들고, 새로운 리추얼 속 미니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모두가 반가워하지도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정성을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낀다. 가끔은 나조차 계획적이고 정성스러운 내가 힘든데 함께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박아름송이님의 [피아노 리추얼]에 메이트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마침 이전에 공부 리추얼에 참여했던 메이트도 있었는데 줌미팅에서 그 메이트가 조심스럽게 두 리추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부 리추얼을 할 때는 너무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사실 좀 부담스러웠어요. 저한테 리추얼은 휴식과 놀이인데, 공부 리추얼은 정말 다들 일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러다 피아노 리추얼에 오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정말 좋았어요. 좋아하는 음악 듣고 어땠는지 남기는 건 부담 없이 할 수도 있고 재밌더라고요." 이 코멘트가 너무 이해돼서 서운함조차 들지 않았다. 나도 피아노 리추얼에서 똑같은 편안한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허리를 바로 세우고 해야 할 것만 같은 공부가 아니라 편하게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한두 줄 느낀 점을 남기면 되는 음악 감상은 공부의 뿌듯함과 완전히 다른 행복감이었다.
내가 너무 나답게 리추얼을 운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처음 참여했던 메이트가 재등록하지 않을 때, 몇 개월 이상 참여했던 메이트가 돌아오지 않을 때, 유독 참여가 저조한 시기가 찾아올 때 그 생각은 불안감으로 자랐다. 인기 있는 리추얼 메이커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워서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하며 흔들렸다.
마음의 중심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오래 함께해 온 리추얼 메이트 덕분이었다. 그들은 모두 공부 리추얼의 정성스러움과 다정함, 촘촘한 가이드를 배려로 느끼고 고마워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리추얼을 경험하러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매번 가장 먼저 등록해 주는 채준 님, 공부 리추얼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이랑 님, 첫 만남부터 폭풍 칭찬을 해주시며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는 귀동님, 공부 리추얼의 다정한 댓글 문화를 만들어준 다정 보스 재원님, 바쁠수록 오히려 더 리추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성원님까지.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10개월 이상 참여해 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를 전해요.) 공부 리추얼이 밑미의 시그니처 리추얼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메이트 분들은 오히려 부담스러우리만큼 깊고 찐한 내 방식을 좋아해 줬다. 오히려 "회사에서도 친구들끼리도 가족 간에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와 삶에 대한 찐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 좋다."라고 말하며 말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사랑받으려면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사랑은 포기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오픈과 동시에 마감되는 리추얼의 메이커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더 이상 스타 메이커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다워야 내 강점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온다. 잘하는 것을 놓아두고 못하는 것을 잘해보려고 애쓰는 것만큼 어색하고 불편한 것도 없다. 마음 불편해지는 리추얼에 메이트가 계속 찾아오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재능과 매력과 강점을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내 몫이 아닌 것을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 된다. 내 몫이 더 적은 영향력, 더 적은 에너지, 더 적은 메이트이어도 상관없다. 나에게 집중할 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다. 더 많은 영향력과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월 1천만 원 벌기 vs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환경에서 5백만 원 받으며 일하기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환경에서 5백만 원 받으며 일하기'인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월 1천만 원을 벌지 못해도 5백만 원 정도는 벌 능력은 된다는 것이다. 마감 신화를 기록하는 메이커는 아니지만 밑미라는 사랑받는 플랫폼이 메이커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최소한의 매력과 강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최소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내 것이 아닌 것까지 더 욕심낼 필요가 있을까? 5백만 원 정도 버는 삶이 이미 주어졌다면 더 버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더 나답게 일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지속 가능한 리추얼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외로 인기가 아니다. 메이트가 적어도 리추얼은 계속할 수 있다. 메이커들이 리추얼을 중단하는 이유는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메이커의 피로감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커에게 밑미는 직장이 아니고 리추얼은 직업이 아니다.
메이커에게는 본업이 따로 있다. 시간과 에너지, 마음을 쏟아야 진정한 리추얼의 재미와 보상을 느낄 수 있기에 욕심껏 하다 보면 무리하게 된다. 그러나 직업이 아닌 일에 쏟을 수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다. 출퇴근과 운동, 집안일을 제외하면 평일에 남는 시간이 많아봤자 1시간인데 그 시간을 오롯이 리추얼에 쏟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추얼 운영을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매번 고민하고 애쓰지 않고 템플릿과 기록을 복붙하는 정도로 투입 에너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앞에서 강조했던 정성스러움과 헷갈릴 수 있지만 정성과 시스템은 공존할 수 있으며, 공존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고 꾸준히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일과 삶을 무 자르듯 딱 잘라 분리할 수 없듯이 리추얼도 그렇다. 일과 삶과 리추얼을 모두 하나의 덩어리로 통합해서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Plan-Do-See] 개념과 유사하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점검하며 계획을 보완하고 다시 실행하고 다시 점검하고 다시 보완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계속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나의 리추얼 운영 시스템은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엑셀/노션] 메이트 빅데이터
[PPT] 선언미팅 강의
[구글 메모장] 단톡방에 매일 올리는 메시지 템플릿
[네이버 박스] 칭찬 캡쳐 수집
메이트 빅데이터는 정량화할 수 있는 엑셀 데이터와 콘텐츠 형식의 노션 데이터로 나뉜다.
엑셀에는 메이트의 참여 횟수를 관리한다. 어떤 메이트가 언제, 몇 회 참여했는지 기록한다. 이 데이터는 감각과 기억에만 의존해서 "요즘 참여율이 저조한 것 같아. 신규 메이트 비율이 낮아지는 것 같아." 걱정될 때 객관적인 기준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이번달 참여율이 얼마나 안 좋은지, 우려할 만한 수준인지, 계절마다 반복되는 패턴일 뿐인지 엑셀 데이터를 보면서 파악할 수 있다.
노션에는 메이트가 남긴 기록으로 메이트 각자의 스토리를 수집한다. 월별로 자기소개, 공부 기록, 회고 템플릿을 모아둘 수 있도록 노션 페이지를 만드는데 이전 템플릿을 복사해서 메이트 이름을 바꾸고 그때그때 새로운 내용을 채우면 돼서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메이트 문장 수집은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메이트의 기록을 읽고 댓글을 남기면서 동시에 한다.
선언미팅에서 30분 동안 강의를 하는데, 공부하는 마음에 대해 매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에 모두가 정성스러움의 끝판왕이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시스템화할 수 있다. 회사 밖에서 일과 기록에 대해 강의할 일이 종종 생긴다. 그때 강의 자료를 [모듈 형태]로 만들어두는 것이다. 하나의 큰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안에 여러 세부 주제들이 모여서 큰 맥락을 구성하게 된다. 예를 들면 헤이조이스에서 [SNS로 나 기록하기]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만든 강의안에는 총 7개의 모듈 콘텐츠가 있다. 이 모듈 콘텐츠 중 1~2개를 꺼내서 리추얼에 맞게 살을 붙인다. 살을 붙일 때에는 직전 리추얼에서 자주 오갔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는다. 12월에 리추얼 방에서 루틴 형성에 대한 고민과 기록이 있었는데 그때 오고 간 댓글과 추천 영상으로 모듈 콘텐츠의 내용을 구체화해서 방향을 잡았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30분짜리 선언미팅 강의를 준비하는데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보통 선언미팅 전날 저녁과 당일 아침에 작업하고 30분 전에 입으로 빠르게 읽으면서 스크립트를 쓴다. 이때 기록한 스크립트는 그대로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리고, 강의 영상은 내가 나오는 부분만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린다. 선언 미팅을 준비하면서 내 콘텐츠를 만들고 내 콘텐츠로 선언 미팅을 준비한다. 원 소스 멀티 유즈 방식인 셈이다.
구글 메모장에는 매일 단톡방에 올리는 [오늘의 질문], [줌미팅 공지], [공부척 미션], [별게 다 공부 미션], [회고 템플릿] 메시지 템플릿을 저장한다. 매일 단톡방에 올리는 메시지라서 오히려 일정한 템플릿을 갖춰두는 편이 메시지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피로감이 덜하다. 매일 비슷한 형식의 메시지가 오니까 내용이 길어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매일 다른 질문을 보내는 [오늘의 질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매달 똑같은 메시지를 복붙 한다. 한 달에 한 번만 받는 메시지여서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리마인드를 받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네이버 박스에 수집하는 칭찬 캡처는 효율을 위한 시스템은 아니고 동기 부여를 위한 시스템이다. 리추얼 방에서 워낙 다정한 응원과 위로가 오가다 보니 힘이 되는 칭찬을 매일같이 듣는데, 안타깝게도 마음이 힘들고 흔들릴 때는 까마득하게 잊는다. 신청자가 저조한 달에는 그동안 받았던 칭찬을 모두 잊고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걸까. 왜 내 리추얼은 인기가 없을까." 이런 생각의 굴레에 빠져든다. 그럴 때 캡처로 저장해 둔 칭찬 댓글과 후기를 꺼내 읽는다. 잊고 있던 자신감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리추얼 메이커의 공통 성향이 있다면 퍼스널 브랜딩과 콘텐츠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고유한 나만의 이야기가 가진 가치와 힘을 알기에 큰돈이 되지 않는데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메이커로 활동하는 것 아닐까. 선언미팅 준비 시스템에서 소개했듯이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콘텐츠가 주르륵 나오게 된다. 물론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록이 착착 쌓이는 것은 아니고 리추얼을 운영하면 자동으로 콘텐츠가 생산되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밑미에서 하는 리추얼 활동에는 [매일 인증하기]가 필수인데, 글과 사진으로 인증을 남긴다. 오늘 무엇을 공부했는지, 공부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은 무엇인지 매일 기록을 남기다 보니, 한 달만 모아도 방대한 기록이 생긴다. 기록이 콘텐츠가 되려면 활용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작업, 즉 편집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메모를 남길 때부터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하면? 밑미 리추얼을 했는데 내 콘텐츠까지 덤으로 생기는 것이다.
내 기록을 남기는 과정뿐만 아니라 메이트 기록에 댓글을 남기는 과정에서도 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듯이 댓글을 남기면서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얻은 힌트로 쓰다가 막힌 글을 이어나가고 또 막히면 메이트 글과 댓글에서 힌트를 찾는다.
기록은 피드백 유형에 따라 총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나만 보는 기록
일기장에 쓴 비밀스러운 이야기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않은 모습
피드백 없음
커뮤니티에 올린 기록 (=밑미 리추얼)
소수에게만 공개된 기록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모습
제한된 피드백 (100% 긍정 피드백. 무엇이든 응원해 주는 댓글)
모두에게 공개된 기록
SNS에 올리는 콘텐츠
모두가 봐줬으면 하는 이야기
공개된 피드백 (종종 마주하는 부정적인 댓글)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3가지 유형의 기록을 모두 해야 한다. 나만 보는 기록만 하면 피드백을 받을 수 없어서 글의 확장성을 키울 수 없다. 모두에게 공개된 기록만 남기면 오해와 일방적인 비난으로 상처받기 쉽다. 무엇보다 나만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소화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개 글만 쓰다 보면 내 주관이나 개성을 깊이 있게 세우기 어려워진다. 커뮤니티에 올리는 기록은 이 두 가지의 장단점을 잘 보완한 기록이다. 적당히 독자를 의식하면서 적당히 내 스타일을 만들어갈 안전함이 있다. 세 가지 기록 모두 해야 콘텐츠의 깊이와 매력이 생긴다고 믿지만 바쁘고 힘들다면 셋 중에 커뮤니티에 올리는 기록만이라도 쓸 것을 추천한다. 그게 바로 리추얼 인증 기록이다.
회사에서는 팀원이지만 리추얼에서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회사 생활을 좀 더 해보고 싶은데 회사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일을 잘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차까지는 일을 잘한다는 게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능력, 누구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요청할지 판단하는 능력, 제한된 자원을 조율하는 능력이 있어야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이다. 밑미에서 메이커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의 본질을 배우고 있다.
리더십의 본질은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모든 동료들이 성향과 상황이 다르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답을 찾는 것은 당사자 본인의 몫이다. 리더의 역할은 '끝까지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가'이다.
딱히 대단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리더의 어깨 위에 얹어진 무게를 기분 좋게 감당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할 수 있으면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불합리한 회사의 결정, 답답한 조직 문화, 문제를 자꾸만 일으키는 동료)에 집중하면 나아지는 게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나와 함께 일하면 언제나 든든하다는 감각, 그 감각을 딛고 좀 더 해보려는 마음, 그런 서로를 향한 믿음과 감사. 이런 것들이 내가 집중해야 할 문제다.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하며 배운 것도 그것이다.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 (늘지 않는 신청자 수, 신청했지만 참여하지 않는 메이트, 리추얼이 안 맞다는 피드백)에 집중하면 답이 없다. 대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리추얼에 오면 적어도 단 한 명만큼은 나를 응원하고 답장을 보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다정한 안정감을 심어줄 수 있다. 이 리추얼에 오면 적어도 단 한 명만큼은 삶에 진심인 태도로 배우고 기록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영감을 받고, 그 사람을 응원하고, 응원의 답장에 뿌듯함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그 단 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 마음으로 2년을 보냈더니, 이제 메이트가 오히려 나에게 말한다.
"할머니 될 때까지 할 테니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세요."
그러니 별수 없지 않을까, 밑미가 리추얼을 그만둘 때까지 나도 리추얼을 하는 수밖에.
이 글은 내가 썼지만 내가 시작한 글은 아니다. 한동안 회사 업무에서 소진감을 느끼며 글쓰기를 놓고 있었다. 언제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질까 가만히 기다리면서. 그러다 지난주 밑미팀 정연님과 1:1 인터뷰를 하면서 [메이커로서의 리추얼]에 대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오늘 피아노 리추얼 메이커인 아름송이님과 브런치를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메이커에게 리추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소진될 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밑미에게, 밑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필요한 순간 필요한 에너지를 받는다. 리추얼 메이커로 사는 게 감사하다. 리추얼이 내 삶의 동력이 되어주고, 나를 나아가게 하는 만큼 나도 리추얼을 오랫동안 잘 이끌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