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12월 24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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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밖 독립 실험을 1년 반 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
오로지 글로 먹고 사는 삶은 불가능에 가깝다.
커리어를 전환하면 몸값이 낮아질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강의 해야 먹고 산다." "글만으로는 못 산다." "수익 구조부터 만들어라." 귀한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셨는데 잘... 안 들렸다. 아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기가 필요했나보다. 이제 방황의 시기를 졸업할 때.
일단 여기서 말하는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만약 이 글이 ‘책’이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이유는 시장 사이즈다. 책을 사는 사람보다 책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다.
책을 두 권 출간한 기성 작가인 나는 원고 투고를 하면 적어도 하나의 출판사에서는 연락을 받는다.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낼 수 있는 것과 책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다.
책 한권을 팔면 작가는 대략 1,500원을 번다. 책이 1만 권 넘게 팔리면 잘 나가는 작가로 불린다. 1만 부를 판매한 잘 나가는 작가의 인세는 1천 5백 만원. 책을 아무리 빨리 써도 계약시점으로부터 꼬박 1년이 걸린다. 즉, 잘 나가는 작가의 연수입은 1천 5백 만원 정도 된다는 얘기다. 오로지 책으로만 돈을 벌겠다는 건, 가수 지망생이 시작부터 아이유를 꿈꾸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결국, 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글쓰는 OOO이 되어야 한다. 글쓰는 마케터, 글쓰는 번역가, 글쓰는 요리사, 글쓰는 변호사. 그렇다면 이미 회사를 나와서 글쓰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강의를 하거나
책이 아닌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려면 누군가에게 알려줄 ‘뭔가’가 있어야 한다. 글쓰기 외에 다른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것 역시 ‘글쓰는 OOO’이다. 책이 아닌 글을 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전자책을 쓰거나, 에디터가 되거나, SNS에 글을 써서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뜻이다.
결국, 회사 밖에서 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글쓰는 자아 말고 다른 자아가 있어야 한다. 정지우 작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정지우 작가는 글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직업을 찾다가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글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글도 쓰는 OOO’이 아니라, ‘글만 쓰는 사람’으로 사는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후, 나는 내가 하던 일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기록을 쌓아 내 이야기로 독립하자는 나의 메시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록만 쌓아서는, 내 이야기만 해서는, 독립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말과 글이란 인간의 생각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던가? 도구를 삶의 목적으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방향을 바꾼 내가 할 수 일은 두 가지다.
글쓰는 OOO이 자신의 전문성을 글로 잘 전달하도록 돕거나
글쓰는 OOO, 이 빈칸에 들어갈 키워드를 같이 찾아주거나
“나는 커리어를 전환하면서 몸값을 올렸는데?”라고 따져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는 기존의 일을 딛고 그 위로 새로운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커리어 전환이라기보다는 커리어 피봇팅에 해당하는 사례다. 또는 한 분야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후 그 신뢰를 자본삼아 새로운 분야로 옮겨간 경우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일을 살리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한다면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새 직장을 찾으러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는 김부장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다. “2백 이상은 못 줘요.”
유튜브 영상에서 본 송길영 작가의 말.
“기존의 일을 딛고 가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한다면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죠. 연차라는 것은 경험을 쓰는 건데, 경험이 하나로 몰입돼 있을 때 그게 환금되는 거지, 그렇지 않고 흩어져 있으면 환금될 수 없어요.”
그렇다면 회사를 나와 새로운 일을 하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방법이 있긴 하다.
첫째, 이전의 일을 버리지 않는다. 마케팅 외주라도 하자는 건가? 아니다. 이전의 정체성과 신뢰 자본을 끌고 가자는 것이다. 카카오스타일 출신, 연세대 출신, 대기업 마케터, 내가 쓸 수 있는 수식어는 전부 갖다 써야 한다. 지겨울 때까지 우려먹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했던 일과 앞으로 할 일을 연결할 수 있는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 기획 담당자, 프로모션 마케터, CRM 마케터, 이런 명시적인 직무 명칭이 아니라 내 일의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분기마다 ‘내 키워드 찾기’ 워크숍을 진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일을 각자의 언어로 개념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새로운 시대의 생존법이다. AI와 경기 침체가 일자리를 앗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 대부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커리어를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렇다고 월 2백으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소름돋게도 내가 회사를 나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하며 번 돈이 월 2백이었다. 그 이상 버는 달도 있었지만 몸이 망가질 정도로 무리를 해서 번 돈이었다.)
내 일을 언어화할 때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처음부터 딱 들어맞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만들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수정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송길영 작가 역시 ‘마인드 마이너’라는 언어를 찾기까지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계속해서 일의 범주와 방식이 바뀌는 시대다. 한 번 정한 언어로 쭉 갈 수 없다.
나 역시 바뀔 것을 예상하고 일단 지금의 언어를 재정비했다.
(이전)
내 일을 위한 기록
내 이야기로 독립하기
(변경)
혼자 일하는 사람은 루틴이 시스템입니다
콘텐츠 발행 ・ 노션 정리 ・ 기록 루틴을 함께해요
나처럼 회사 밖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일과 삶의 루틴을 재정비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 나의 일을 재정의했다.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챌린지 프로그램’. 소수 정예 멤버들을 모아, 한달 딱 집중해서 자신만의 루틴을 구축하도록 돕는 체인지 메이커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것이 글쓰는 OOO, 빈칸에 들어갈 나의 정체성이다. 챌린지를 하며 얻은 경험을 글로 쓰고,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도 내보려고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수없이 흔들리고 부딪히며 내린 중간 결론이기도 하다.
“명님,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이 있어야 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거, 거기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몸도 마음도 편해요. 그래야 오래 하죠.”
늘 나의 응원군이 되어주는 벨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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