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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22. 2020

내가 사랑하는 90년대생들

요즘 젊은 애들은 어떻다던데...

"아... 그리고 요즘 젊은 친구들 정말 왜 그러나요. 카페 알바 힘들다고 마음 먹고 오라고 했는데, 며칠 나오다가 문자 띡 보내고 그만두지를 않나, 그 말 마저도 스스로 못 하고 부모님 뒤에 숨어서 하지를 않나. 열심히 사세요 다들."


인스타그램에서 대략 이런 내용의 넋두리를 읽었다. 디저트가 예뻐서 팔로우 하던 카페였다. 디저트 만드는 일이 고된 육체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플리마켓에서 쿠키를 만들어 팔다가 그 고된 육체노동 때문에 그만둔 상태이다. 예쁜 디저트를 뒤에는 어마어마한 노동이 있다. 이 글과 함께 게시된 이미지도 마침 병원에서 링겔을 맞고 있는 장면이었다.


카페 사장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기는 한데, 나는 왜 이렇게 반감이 들까? 왜 이렇게 딴지를 걸고 싶어질까? 피드를 다시 한 번 쭉 훑어보다가 팔로우를 취소했다. 이 예쁘고 예술적인 디저트는 아쉽지만, 이 카페와는 작별을 해야겠다.


내가 만난 90년대생들을 떠올려 본다. 회사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의 멘토가 되어 만난 신입사원, 옆자리 후배, 독서모임에서 만난 멤버들. 나는 그들을 전부 사랑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책임감마저 들게 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만난 90년대생들은 일 앞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았고, 자율적이었고, 그 누구보다 이 사회와 환경,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눈빛에서, 나는 매 순간 진심으로 책임지는 멋진 어른의 태도를 읽었다.


내가 사랑하는 90년대생들을 비난해서 기분나빴던 것일까.


어떤 세대이던, 어떤 성별이던, 어떤 인종이던 나는 누군가가 겪은 불행과 불쾌함이 특정 집단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이 슬프다. 모두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소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생의 큰 불행으로 느낄만큼 우리는 소속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속된 집단 중에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 집단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여러 집단 중에서 대표되는 집단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대학일 수도 있고, 세대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고, 성별일 수도, 집안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소속된 집단이 우리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것이 너무 외롭고 힘 없게 느껴진다면 차라리 우리 모두가 지구인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카페 사장님이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요즘 젊은 친구들로 지칭되는 그들을 '다른 집단'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고 책임감 있는 80년대 생과 그렇지 않은 90년대생을 구분하고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배려없는 사람들이 있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만약 카페 사장님이 그럼에도, '내가 만난 90년대생들은 모두 그랬어. 모두 무책임하고,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배려가 없었어. 그러니까 그들은 무책임한 집단이야.' 라고 말하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당신에게 나쁜 사람들만 계속 다가온다면,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당신이라는 사람이, 좋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쁜 사람들만 당신에게 간 것은 아닌지.


좋은 사람들은 따뜻하지만 아주 정확하거든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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