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책을 쓰고 싶을까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은 쓰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글쓰기와 책 쓰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글과 책은 다르다. '책은 하나의 주제 아래에 일정 분량의 글들이 모여 있는' 형태이다. 좋은 책에는 좋은 글이 있지만, 좋은 글을 모아둔다고 모두 좋은 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문장력'이고, 책 쓰기는 '기획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 는 '글쓰기 책'이 아니라 '책 쓰기 책'에 가깝다. 어떻게 한 권의 책을 기획하는지를 배우고, '읽히는 책'을 써보자는 것이다. '단문을 쓰자, 독자의 범위를 좁혀서 생각해보자'와 같은 글쓰기 팁과는 다른 관점에서 '쓰는 일'을 살펴본다.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 보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그 말을 왜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먼저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그 마음의 조각을 꺼내서 살펴보아야 방향이 나오고, 책을 기획할 수 있다.

장강명 작가가 '책 한번 써보자'라고 제안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이유에서다. 책 쓰기의 시작이 '고민과 성찰'이기 때문에, 책으로 의사소통하는 사회는 깊고, 느리고, 건강하다.

내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다. 많은 저자들이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사람들이 그걸 읽고, 그 책에 의견을 보완하거나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다시 책을 쓰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포털 뉴스 댓글창, 국민청원 게시판, 트위터, 나무 위키가 아니라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눈다. 이 사회는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진다.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장 작가가 말하는 '읽히는 책'(특히 에세이)의 특징은 이렇다.

저자의 매력이 돋보이는 책
궁금했던 정보가 명확하게 설명된 책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

반대로 생각해보면 '읽히는 에세이'를 쓰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매력을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중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쓴 책
그 과정에서 '나만의 관점'을 담은 책.

책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고민 또한 이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는지? 책 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잘 훈련된 독자일 가능성이 크다. 글자를 다른 매체보다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예민하게 스스로는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장강명 작가는 책을 쓰자고 말한다.

책 중심 사회를 이루려면 저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믿기에. 아이슬란드에서는 책을 한 권 이상 출간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한 주제에 대해 '200자 원고지 600장 이상'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일단 써보면 그 양이 생각보다 많다. 짧은 호흡의 글로는 경험하지 못한 막막함과 좌절을 겪게 된다. 그것을 겪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책을 쓰고 나면 설령 책이 잘 팔리지 않더라도 남는 게 있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독서가가 된다는 것.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 브런치 북 『매일매일 채소롭게』로 출간 제안을 받아서 6개월째 책을 쓰고 있다. 초고는 2달 전에 마무리했지만, 계속해서 퇴고 중이다. 초고를 마무리하고 잠깐 여유를 부리며 다른 책을 읽는데, '어라?'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작가가 왜 책의 구성을 이렇게 잡았는지, 이 에피소드를 왜 넣었는지 등등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관점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은 책을 읽을 때 꼭 노트필기를 하면서 본다. 전체 책의 구성을 그려가며 각각의 부분들을 읽고 연결한다. 책을 써보기 전에는 '좋은 문장을 수집'하며 읽었다면, 책을 써보고 난 후에는 '좋은 구조와 메시지 파악'하며 읽는다. 첫 책이 잘 되지 않아도 얻은 것이 많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을 쓸 것이다. 나 또한 장강명 작가처럼 책으로 의사소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책의 뒤쪽에는 부록으로 글쓰기에 대한 짧은 칼럼 여섯 편이 실렸다. 그 칼럼을 읽으며 내가 왜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장강명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좋아한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독선가들을 신뢰한다. 시선의 중심이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람의 단단함과 책임감을 안다. 『당선, 합격, 계급』, 『5년 만의 신혼여행』을 읽었을 때 갖게 된 호감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마침내 내 글쓰기의 스승을 고백할 단계가 되었다. 고립? 불화? 아니, 독선이다. 사회적 동물들이 거의 악덕으로 간주하는 그것. 그 스승 탓에 나는 교만과 아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종종 무지막지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독선이 없었더라면 글을 쓰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더라도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금세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쉽게 세상과 화해했을 것이다. 세상과 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글 따위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글을 한동안 기억해두기로 했다. 저자란 누구인가에 대해 그는 바닷가 사람 비유로 답을 대신한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먼바다를 동경하게 된 사람.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를 구해 몰고 나가 바다의 적막함, 고요함, 지루함을 버티는 사람. 이 바다의 끝이 어딘지 더 멀리 가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브런치 독자라면, '읽고 쓰는 사회',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의 일원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다른 회원들에게도 애정이 많은 '운영부'쯤 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같이 계속 읽고, 쓰고,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어디가 끝일지는 몰라도 우리는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태어나 그런 욕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니까. 언제나, 내가 옆에 있겠다고, 응원한다는 말도 함께 보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