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케인, 콰이어트
어릴 때 서양인, 특히 미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활발함'이었다. 10대였던 20년 전, 미국 하이틴 영화에는 다수의 파티를 즐기는 학생들과 소수의 괴짜 천재들이 등장했다. 외모가 못생기고 조용한 아이가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친구 무리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스토리가 많았다. 외향성은 리더의 자질이고, 내향성은 부적응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성격에 대한 문화적인 '판단'은 우리나라에까지 왔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도서관 대출 빈도 2위였던 나는, '독서 캠프' 대상자가 되었다. 독서 캠프라는 이름과 달리 레크리에이션 위주의 그룹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가기가 싫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 틈에 끼어서 놀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독서캠프에는 '독서 애호가'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학생 대표와 학급 임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학생 임원은 인기투표로 선출되었고, 나와는 성향이 다른 친구들이었다.
캠프에 가지 않겠다고 소파에 누워 시위를 벌이던 나를 보고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어울려 놀 줄도 알아야지." 나는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캠프 때 입을 옷 새로 사줄까? 가방이라던가 필요한 거 있으면 사줄게." 캠프에 안 가는 옵션은 나에게 없었다. 캠프는 걱정보다는 재미있었지만 마음의 반쪽은 고요한 내 책상에 가 있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외향적이기를 바란다. 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 없이 말하고, 친구들을 이끌기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부모 자신도 포함해서 인류의 적어도 3분의 1은 '내향인'이다. 내가 캠프에 가길 바랐던 엄마도 내향인이다. 엄마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마음이 편해 보인다.
나의 학창 시절은 항상 독서 캠프와도 같았다. 어떤 이들은 그 시절을 즐거운 기억으로 추억하고 또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한다. 나는 아니다. 4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불편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 존재감이 신경 쓰였다. 학교가 끝나고 칸막이가 쳐진 독서실에 들어가면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시험이 끝나면 보통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모여 영화를 보거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독서실로 돌아와 시험 기간 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마음껏 읽었다. (어른들은 교과서가 아닌 책들은 읽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휴식이었다.
공부는 도피처였다. 공부할 때는 마음껏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집에 친척들이 놀러 오면 책을 집어 들었다. 어른들은 성실하다고 나를 칭찬했다. 공부가 아니었다면 나의 내향성은 어른들의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내향성을 걱정했다. 언젠가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나는 연기자였다. 즐거운 척, 활발한 척, 당당한 척, 분위기를 주도하고 싶은 척.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연기가 꽤 늘었다고 자부했다. 자연스럽다고, 외향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몸이 마비될 때까지 망가지고 알았다. 나는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부정해왔던 내향성을 언제까지 이렇게 외면하며 살 수는 없었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은 이런 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 케인은 7년 넘게 내향성을 연구했다. 문화적으로 뿌리 깊게 박힌 '외향성 이상'을 연구하고, 내향인과 외향인을 인터뷰하고, 관련된 교육과 워크숍에 참가하여 내향성을 파고들었다. 이 책의 부제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그녀가 이 연구를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이 책은,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조용한 본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7년간 본성을 숨기며 살아온 대가로 '무너진 건강'을 얻게 된 나는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5년쯤 지속하다 보니 조용한 내면 안에서 여러 갈래의 목소리들이 요동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답하면서 마음의 중심을 되찾았다. 취미로 시작한 '차 시음'에서 겹겹이 둘러싸인 멋진 우주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주변에 알렸다. 친구들에게 요가를 권하고, 차 시음 워크숍을 열었다. 모두가 요가와 명상, 찻자리를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또 틀렸다. 이 방식은 '나에게 맞는' 것뿐이었다.
궁금해졌다. 내향인과 외향인을 어떻게 다른가. 외향인이 인정받는 시대에 내향인으로서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향인들의 필독서라는 『콰이어트』를 읽게 된 것이다. 케인은 특히 서양의 '외향성 이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향인들이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하는지, 내향인들이 흔히 하는 모순적인 행동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내향성을 빛나는 재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증들에 대한 답을 간략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사업은 사업'이란 문구에 어울리는 발전소로 바뀌었다. 개국 초기에 미국인들은 대부분 데일 카네기의 가족처럼 농장이나 작은 마을에 거주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교류했다. 하지만 20세기가 되자 거대 사업, 도시화, 대규모 이민이 겹치면서 도시로 인구가 밀려들었다. 1790년에 미국인 중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고작 3퍼센트였고, 1840년에는 8퍼센트뿐이었다. 1920년이 되자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도시 거주민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이제 이웃이 아니라 낯선 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주민'은 '직원'으로 바뀌었고, 같은 주민으로서 혹은 가족으로서 인연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미국은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 '성격의 문화'를 수용한 뒤로, 미국인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담하고 재미있는 이들에게 매혹되었다. 서스먼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다. "새로운 성격의 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사람은 연기자였다. 미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자유 특성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이를테면 내향성)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 리틀 교수에 따르면, 의미도 있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자기만의 핵심 프로젝트'에 몰두할 때 우리의 삶은 극적으로 향상된다.
"전 정치가 좋아요. 정책도 좋고, 뭔가 일을 벌이는 것도 좋고, 제 방식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그래서 인위적인 일을 하죠. 다른 사람 파티의 손님이 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제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 집에서 파티를 하는 건 괜찮죠. 그러면 실제로 사교적인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중심에 서게 되니까요."
인내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다른 사람들이 걸려드는 덫에 걸리지 않는 밝은 눈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에너지가 무한대
보상(돈, 명예 등)에 비교적 자유롭고 독립적
공감을 잘하고, 사회적 정의를 중시
창착이나 영적인 분야에 재능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 지능지수 결과를 보면 두 유형은 지능이 비슷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임무에서, 특히 시간에 쫓기거나 사회적 압박을 받거나 멀티태스킹을 해야 할 경우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뛰어나다.
어떤 임무에서든 "우리에게 인지능력이 100퍼센트 있다고 할 때 내향적인 사람은 약 75퍼센트 만을 임무에 쓰고 나머지 25퍼센트를 다른 데 쓰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임무에 90퍼센트를 쓸 수 있죠." 이것은 임무란 것이 대체로 목표 지향적인 까닭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인지능력의 대부분을 눈앞의 목표에 할당하는 듯한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는 데 인지능력을 사용한다.
'의도적 연습'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강한 집중력이 필요한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산만해질 소지가 있다. 강력한 동기도 필요하다(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그 사람 자신'에게 가장 힘겨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 에릭슨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자신에게 힘겨운 일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하려면, 상황을 '자기가' 주도해야 하죠. 그룹 수업을 상상해보세요. 그때는 전체 중에서 아주 작은 시간만을 주도하게 됩니다."
"과학적 근거를 보면 기업 사람들이 집단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재능 있고 의욕적인 사람들이 있다면, 창의성이나 효율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는 혼자서 일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핵심 프로젝트를 찾아서 몰두해라. 핵심 프로젝트를 찾지 못하겠다면 3가지 질문에 답해보라.
① 어릴 적 무엇을 좋아했는지?
② 끌리는 일이 무엇인지?
③ 부러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ex. 돈 많이 번 친구보다 작가가 된 친구가 부럽다거나)
회복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시간 확보가 삶의 질을 높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내향적이어도 괜찮아.'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외향성 이상이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성격의 신화'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성격이나 기질은 장점이나 단점이 아니라, 활용해야 하는 각자의 도구인 것이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청개구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쩌면 반항아, 청개구리라고 평가되는 나의 성격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편한 그 시선들에서 벗어나고자 의도적으로 취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된 후 비로소 나는 나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나에게는 회복 환경이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TED 강의를 보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