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노트 2021, 정유라 외
누군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슈톨렌을 먹을 테고, 다이어리를 산다거나, SNS로 올해의 인기 게시물을 선정할 것이다. 그리고 트렌드 책을 읽는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를 매년 읽었고, 김용섭 작가의 『라이프 트렌드』를 읽기도 했다. 올해는 생활변화관측소의 『2021 트렌드 노트』를 읽었다. (퍼블리의 책 요약 콘텐츠를 읽다가 더 읽고 싶어 져서 전자책으로 주문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가 한해 내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비대면 사회의 전망에 대해서 출판 시장은 언론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2021년의 트렌드 책을 읽어도 새로울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여러 이야기들은 한데 모아 정리해놓으니 역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트렌드 노트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시리즈보다 '생활 데이터 밀착형' 분석이 많다. 사람들이 언급하는 단어의 빈도와 변화를 중심으로 트렌드를 읽는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아 이 말이 이런 뜻이고,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코로나 시대에 그나마 안전한 대기업 직장인이지만 그들에게도 앞으로의 세계는 불안하다. 8년 차 직장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생각했다. 그 시각으로 책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 내용들을 정리해보았다.
단순히 코로나의 영향만은 아니다. 주 52시간으로 '칼퇴'가 보장되었고, 전보다 휴가나 연차, 반차를 내기 쉬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유연근무제,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하는 회사들도 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아주 단순하게는 출퇴근 시간이 내 것이 되었다. 왕복 2시간에 출퇴근 준비시간까지 고려하면 최대 3시간 정도를 아끼게 되었다. 일하는 부모들의 상황은 아이들의 휴원과 휴원으로 악화되었지만 직장인의 시간이라는 단편적인 관점에서는 시간의 자율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직장인들은 남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한다. 코로나 전에도 화두였던 '사이드 프로젝트'와 'N잡'이 직장인 사이에서 일반화될 것이다.
회식이 없어졌다. 올해 여름, 다니던 회사를 옮겼다. 송별 회식, 환영 회식을 비롯해 단 한 번의 팀 회식도 없었다. 일로 만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을 싫어하기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회사 전체적으로 회의도 점점 줄여가는 상황이다. 회사 밖에서는 시댁 방문, 애매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겼다. 리더들은 이전과 달리 회식이나 회의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계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좋기만 한 걸까?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에야 리더의 자리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 권위가 없어진 이상, 실력과 매력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한다. 더 이상 선배라는 이유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일반화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모두가 자신을 브랜딩 해야만 하는 것이다.
"트렌드 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 20대들 생각까지 알아야 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관이 존재하기도 한다. 새로운 세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점점 오래 살고, 일도 더 오래 하는 시대가 되어간다. 예전에는 10살 차이라면 '까마득한 선후배' 관계였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다르다. 팀장과 팀원을 제외하고는 직급도 없어진 경우가 많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기보다는 이직도 잦다. 10살, 아니 15살 이상 차이나는 동료와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원만하게 업무를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트렌트 시리즈를 읽으면서, '요즘 20대'의 주인공이었다가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격한 공감' 보다는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문화를 '같이 즐길' 필요까지는 없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알면 좀 더 쉽게 관계 맺을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 정도는 필요하다.
Z세대에 대해 "윤리적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절차적 공정성에 대해서는 비정할 만큼 엄격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동물권,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일상의 불편함까지 감수하면서 가치관을 지켜나간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차피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덜 소비하고 불편한 건 괜찮다. 어차피 지금도 마음껏 누리고 살지 못하니까. 하지만 내 자리가 될 수도 있는 기회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그 기회가 아니라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도 자기만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자기 계발 시대 때는 콘텐츠 있는 사람이 기회를 얻었다. 누군가 영리하게 노력해서 더 잘 되었다는 이야기는 좋은 자극제이지만 불안감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자기 관리 시대에서는 콘텐츠가 없다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이제 콘텐츠가 없다면 불안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개인으로서 어떤 콘텐츠를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소비할 MZ세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 걷기 챌린지, 한 달 실천 커뮤니티 <한달어스> 등등. 각종 챌린지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고 있다. 인류는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했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인증과 기록이다. 매일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 챌린지는 아침에 일어나 시간이 찍힌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것으로 기록된다. 꾸준히 쌓인 인증의 기록은 중요하다. Being이 아니라 Doing이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진 틈으로 리추얼이 들어왔다. 주말 아침 루틴, 퇴근 후 루틴, 재택근무 전 리추얼 등, 이전에는 공간으로 일상을 분절하고 마디마디 의미를 달리했다면 '집 안'으로 제한된 공간에서는 리추얼을 통해 일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리추얼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일상을 더 잘 유지하게 해 준다.
2주 전부터 새벽 찻자리 챌린지를 시작했다. 6시 전에 일어나기 어려워서 6시에 일어나 차를 마신다. 인증을 하니, 다수의 사람들과 약속을 한 기분이 들어서 어기지 않고 지속하게 된다.
겨울이 되고 코로나 확산이 다시 심각해졌다. 비대면, 온라인 문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백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된다고 해도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직장인으로서의 마인드셋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트렌드 코리아』, 『라이프 트렌드』, 『트렌드 노트』 를 복습하는 기분으로 모두 읽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