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목도리
어떤 날은,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한 기억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추워진 날씨 때문에 목도리를 두르며 급하게 버스를 탔다. 이동하는 동안 누가봐도 절대 추울 것 같지 않은 파란 하늘을 보다말고 생각은 어느새 샛길로 빠져 있다.
어디쯤이었을까, 홍대? 연남동? 연희동 쪽이었나, 다 비슷한 곳이니 어느 골목 안, 술집에서 술 한 잔 하고 나온 겨울이었나보다. 문을 열고 나오려니 겨울 시린 바람에 술이 깰까 아까웠다. 코트 깃을 여미고 그 위로 목도리를 칭칭 감고 나갔지만 이미 코 끝으로 지나간 찬 바람은 잽싸게 술기운을 가져갔다. 뒤따라 나온 그는, 아직 온기가 남은 손으로 내 뒤에서 목덜미 쪽으로 손을 뻗어 목도리와 코트 사이에 들어 찬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밖으로 빼주었다.
어깨 정도까진 왔던 단발이었던 거 같은데, 머리길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옷깃이나 목도리 사이에 묶여 살짝 구겨진 듯한 머리를 좋아하는데 그는 아니였나보다. 그는 아마 몰랐던 거 같다.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가던 온기 남은 손길에 취기가 다시 올랐던 어느 겨울 저녁. 돌아서서 그를 향해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단발쯤 머리가 자라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나서 목도리 안에 갇힌 머리카락을 보고만 있었다. 생각은 그 날에 있고, 결코 머리카락을 밖으로 빼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