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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사물에 대한 나른한 단상(3)

by 진미


#1


최근 개봉한 <뷰티인사이드>에서 주인공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장면이 의자와 관련된 일이다. 여자는 의자를 고르는 손님에게 신장과 버릇, 일을 물어보곤 맞는 의자를 골라주려 한다. 남자는 1인 맞춤형 의자를 만들려는 가구 디자이너다. 영화에선 내내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이 나오지만 주되게 의자가 나온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 두 남녀. 남자는 그녀만을 위한 의자를 만들어 주려 한다. 깊게 앉는 사람인지 걸터앉는 사람인지. 앉았을 때 발바닥이 편히 바닥에 놓이는지. 영화 속에선 몇 가지 행동과 대사로 처리되지만 내겐 참 인상적인 장면들이었다.

의자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집에 쓰는 의자들 중 형태는 깊게 앉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앉으면 짧은 나의 다리는 공중부양하게 된다. 덕분에 나름 이 층짜리 발판을 구입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더없이 좋은 구조이지만 청소를 할 때나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전선을 정리하려면 그 발판은 성가신 물건이 된다. 나에게 딱 맞는 의자란 그래서 어려운 거였다.




#2


초중고 시절에 학교의자는 한때 서로 남모르게 쟁탈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엔 방석과 담요는 필수였고. 기성품이지만 각각의 크기를 갖고 있는 교실 의자 중 맞는 걸 찾느라 애쓴 적도 여러 번이다. 이동수업이 있는 날엔 서둘러 교실에 가는 이유도 수업을 잘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좀 더 편한 의자에 앉기 위함이었다.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을 땐 행여 의자라도 바뀌어 있을까 봐 자신의 방석이 꽁꽁 매어져 풀 세팅된 자신의 의자를 꼭 끌고 와 앉는 녀석도 있었다.

맨들 맨들하고 길이도 맞지 않는 딱딱한 그 나무의자가 나이 들어선 한번 나도 모르게 앉아보게 되는 의자가 되었다. 자습실에 있던 딱 엉덩이 하나 외엔 아무것도 올릴 수 없던 나무의자에 어떻게 몇 시간씩이나 앉아서 공부하고 쪽잠을 잤는지 지금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그렇게 불편한 의자에서 불편한 현재를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교실, 책상 의자는 대학교 때까지만 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좀 쉰다고 해서 너의 인생이 심하게 뒤틀리진 않을거야. 괜찮아.















#3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어느 자리에 앉으세요?

1,2인 식당 혹은 1인용 식탁을 구비한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지난 시절보다 혼자 음식을 먹는 일이 아주 많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나에게도 그렇고, 최근 추세를 보아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혼자 음식점을 들어갈 땐 그 안의 상황을 한번 훑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자리를 찾는 일인데..... 좀 더 혼자 천천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 주변이 시끄럽지 않은 자리 말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그 식당의 가장 구석진 자리를 찾기 마련인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을 자리를 선택하게 된다.

카페에 들어갈 땐 잠시 커피만 한잔 하러 가는 것이냐 혹은 노트북을 들고 왔으냐, 책을 가지고 갔느냐에 따라 사실 자리 선택이 조금씩 달라진다. 유별나게 그것을 꼭 구분하는 건 아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다. 커피 한잔 하러 왔을 땐 사실 아무 자리나 상관없지만 창가 자리를 선호하고 넓지 않아도 되며 의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가지고 왔을 땐 사실 소파와 같이 푹신한 의자를 선택한다. 집중이 잘 된다면 편하게 오래 책을 볼 수 있는 의자가 필요하니 말이다. 노트북을 들고 와서 무언가 하려 하는데 제일 중요했던 건 아마도 발바닥이 땅에 닿는냐 혹은 의자에 발받침이 있느냐 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가? 카페의 여러 의자들은 사실 일반적으로 좀 낮은 편이고 혹여 높은 의자일 경우엔 반드시 발받침이 있다. 누구에게도 맞출 수 없고 누구를 위한 의자일 수도 없으면 가장 보편적이고 편한 의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파식의 쿠션이 좋은 의자를 카페 전체에 까는 경우는 없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면 쿠션이 없는 나무 의자들이 많은 데 그 이유는 커피 한잔으로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엉덩이가 상당히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선호도가 높은 소파식 쿠션 의자로 종종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예민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사실 의자를 크게 신경 써지지 않는 것들 중 하나 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특별히 선호하는 자리, 선호하는 의자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습관처럼.














#4


감각적인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예전에 갔던 홍대 쪽 골목 사이에 있던 술집은 흡사 폐품 같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조명과 공간의 힘이었다.

하지만 유달리 사랑 받지 못하는 자리도 있다. 늘 가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비어 있는 자리 말이다.

봄과 초가을엔 테라스 자리에 못 앉아서 난리가 나고 여름과 겨울엔 가장 실내의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시원한 자리가 인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비어 있는 자리는 왜 그런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계속 비어 있는 걸까.

내 자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지?












#5


편하게 함께 앉을 수 있고 나에게 딱 맞는 의자를 구하려면 결국 스스로 만들어야겠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건 결국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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