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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똑 똑 똑

물통/텀블러(tumbler) :
불편함을 담아내는 것

사물에 대한 나른한 단상(4)

by 진미

#1


흔히들 요즘은 물통을 텀블러(tumbler)와 술병을 일컫었던 보틀(bottle)이란 단어로 사용한다.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땐 마트에 가서 500ml 물통을 샀다. 스포츠 물통으로 몸통 중간에 살짝 잡을 수 있는 홈이 있고 뚜껑 부분엔 손목걸이가 달려 있으며 뚜껑에 마시는 부분이 따로 되어 있는 형태다.

색도 그냥 투명, 파워 음료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색 정도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왜인지 그건 그저 '물통'인 거 같다.

텀블러라는 걸 써본 게 아마 2010년쯤(?) 내게는 채 5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굴러가다'라는 어원을 가진 영어 텀블(tumble)에서 온 말로 아직까지 어색한 것이 온스라는 개념이다. 6온스 (180ml), 8온스(240ml), 10온스(300ml) 등으로 보통 8온스가 기본인데 지금은 그 뿐만 아니라 컵으로 된 텀블러까지 크기와 다양한 종류가 판매되고 있다. 덕분에 내 수중에도 그 크기와 색, 모양이 각기 다른 텀블러만 열댓 개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선물 받은 것들이긴 한데 지금은 보틀(bottle)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그 숫자는 사실 좀 많다.


2010년 배우 공효진의 <공책>이라는 책이 유행했을 때 텀블러 사용에 대해 어느 정도 체감했었고 그 뒤에 김피디로부터 받은 선물을 시작으로 점점 많아진 텀블러가 사실 주방에서 잠자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공익광고에서 당신이 12잔의 커피를 마시고 버리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면 환경보호에 도움된다는 내용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새삼 다시 집에 수북이 쌓인 텀블러를 쳐다 봤다. 녀석들을 어원과 비슷하게 박박 굴려가며 사용해야겠다는 새초롬한 눈빛으로 말이다.














#2


몇 년 전, 신촌 거리에서 김피디와 만났다.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가 연분홍색인 된 모 브랜드의 텀블러를 선물했다.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여자가 손에 이 텀블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게도 그 텀블러를 선물한 것인데........ 그것을 든 여자가 예뻐서가 아니가 그 텀블러가 예뻐서였겠지 생각한다. 그렇게 그걸 몇 날 며칠 동안 가지고 다녔는데 점점 진화하는 텀블러를 보며 김피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걸까. 기능적으로 더 좋아진 다른 브랜드의 큰 용량 텀블러를 세트로 사오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온 텀블러도 선물해 주었다. 나 역시 처음에 선물 받았던 연분홍색 녀석보다 후에 진화한 텀블러들의 기능이 더 마음에 들었고 냉온을 오래 유지시켜 주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사실 주로 차량으로 움직이는 김피디에게 텀블러는 무거운 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뚜벅이 었던 나에게 가방 한 가운데 들어간 텀블러는 참 불편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받아 들고 가는 거야 좋지만 다른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땐 있는 음료를 버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한번 헹궈달라고 직원에게 말해 지켜보면서 위생 상의 문제가 걱정된 적도 있다. 때로는 어디다 버리고 오고 싶을 만큼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뻤던 게 맞지? 날 들고 있는 그녀가 아니라?














#3


같이 회사에 다니던 녀석이 매장 일이 끝났는데도 퇴근을 하지 않고 회사에서 자고 간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내일 새벽 모 브랜드에서 기프트 박스를 판매하는데 거기엔 한정판 텀블러와 커피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애인이 그것을 꼭 사오라고, 매장별로 종류가 다르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 궁금해진 여직원들을 비롯한 나는 박스를 열어보길 강요해 풀어보니 정말 다양한 텀블러와 탐나는 것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래서 줄들을 서는 구나. 그런데 왜 어딜 가도 일회용 종이컵이 나뒹구는 걸까.

진짜 다들 줄 서서까지 사고 최근에 나온 브랜드 보틀 등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는 데 말이다.

사는 불편함은 감수하고 쓰는 불편함은 감수하지 않는 걸까?












#4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신기했던 모습들 중 하나는 외국 청년들 손에 들린 1.5l 이상의 생수통이었다. 우리나라 처럼 식당에 가면 물 먼저 나오는 곳이 아니고 다 돈 주고 사 마셔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다양한 크기의 물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여행가방이 무거워 작은 물을 사서 다니다가 점점 나의 손에도 그들 처럼 큰 통이 들려 있었다. 가격도 큰 것이 저렴했고 물통도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져 잘 구겨지기 때문에 버리기도 쉬웠으며 주둥이도 마시기 편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에 늦게까지 하는 슈퍼보다 조금이라도 큰 마트가 더 저렴했다. 그래서 도시를 옮겨 갈 때 도착하자마다 근처 가장 큰 마트에 들러 마실 물과 들고 다닐 물을 사서 숙소에 두었다. 불편했지만 어느덧 익숙해졌고 물통도 나와 한 몸인 것처럼 줄곧 함께 다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텀블러, 물통도 없이 다니면서 알았다.

가볍구나. 한국은 물이 싸니까. 하면서 물을 사 먹었다. 버리고 또 사 먹고.

커피를 사서 들고 마시다가 집에까지 가져 오는 일도 허다해지면서 분리수거 할 때 많은 양의 일회용 컵을 버렸다. 불편을 감수한다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편한대로만 굴러간다.



하지만 텀블러 무겁긴 무겁다. 그건 다 아는 사실.



#5


tumb;er(5).png 커피 브랜드별로 텀블러 사용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6


tumbler (4).png 잘 말려주고, 뜨거운 음료를 넣고 흔들지 않으며 물이나 탄산, 주스 등을 오래 담아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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