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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Oct 21. 2015

시(詩)를 외우다

무엇이라도  남아 있어달라는 발버둥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까먹은 것인지, 이제는 나의 머리 속 기억 저장소의 용량이 과부하에 걸린 것인지.

실로 학창시절보다 외워야 하거나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은 아니다.

나는 입시 시절을 보낸 세대이고 1년에 4차례 치르는 중간, 기말고사를 위한 단기 암기도 필요한 때였다.

지금은 흔한 핸드폰이 나오기 전에 삐삐를 사용했고 그 마저도 없던 때는 모조리 번호를 외워야 했다. 삐삐 번호 역시 외워야 했고 지금은 암호처럼 느껴지는 그때 사용했던 숫자들 역시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기억하고 외우고 있는 것이란 없다.


그리하여 기억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나와 책 판매 10권 안에 들어 놀라게 했던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을 먹었다>에서 리모컨이 없었던 그때 TV 버튼을 꾹꾹 눌러대던 때를 그려놓은 부분이 있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통해 아, 나도 그러했지. 채널을 한 번 바꾸려면 일어나 버튼을 돌려대던 때가 있었지. 어떤 때는 잘 나오지 않는 채널이 있어 TV 머리 맡을 툭툭 쳐 댔던 때도 있었지. 싶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1994, 1998, 1988 시리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도 있겠지만 지금은 쉽게 잘 기억나 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 덮어 쓰워지는 기억들 덕분이기도 하고 굳이  기억할 거리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굳이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의 조합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향수에 젖는다는 것이 처연해 보였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잘 기억나 지지 않고 외워지지 않는 나에 대한 탐색전으로 돌아섰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주는 처짐이 싫었던 것인데 지금은 그 마저도 할 도리가 없다. 무언가 외워두거나 기억해두려는 것이 모두 내 안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무언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1989년 발표된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그래서 나는 시를 외워보기로 했다. 작심삼일이면 어떠리.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면 그 시절 노래는 이상하게도 가사와 박자, 음정을 대략적으로라도 다 기억하고 있다.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인 것도 있고 가사가 아마도 그 당시에 우리에게  각인된  듯하다.

시도 그렇다. 예전엔 시를 가져다 노래를 만드는 경우도 참 많았다. 물론 내 세대의 일을 아니었지만 그렇게서 만들어진 노래들을 부르는 가수는 더는 없다. 

그리고 화자가 누구인지, 이 시의 주제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따위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달달 외우기만 해보기로 한 것이다.  수년 간 시집이 도서 판매 10위 안에 든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렇게 되었다니. 겸사겸사 많은 이유들을 내세워서 말이다. 달달 외우는 게 쉬웠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참 쉽지가 않다. 손으로 쓰고, 운전할 때 읊조려보고, 화장실에 앉아 기억해 내려다 놓쳐버린 한 행.


그렇게 한 편의 시를 외우는 데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나는 또 오늘 어떤 시를 외울까 생각한다. 학창 시절 시 창작대회를 나갔던 기억 삼아, 지금은 엄마가 버리고 없는 나의 천 여편의 습작 노트를 떠올려 보면서........ 새로이 쓸 수 없다면 지금의 나를 잠시라도,  더럽게 복잡하고 심각한 세상과 단절 시켜 줄 수 있는 시를 외우는 것이다. 무언가 자꾸 내 안에 새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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