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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Aug 31. 2015

나의 발, 신발 그리고 연애

유난스러운 내 발, 신발과 어쩌면 닮은 것 같은 연애, 고마운 김피디에게

내 발은 좀 유난스럽다.

다른 사람들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 사실 잘 모르겠지만.......

김피디는 내게 늘 못생기고 유난스러운 발이라고 하니 난 그런 줄 알았고, 사실 그렇다.

발등이 높고 발볼은 넓으며 운동화든 편한 어떤 신발을 신든 발이 까진다. 운동화나 구두, 단화인 경우 뒤꿈치는 피가 철철 날 정도로 까지고 버켄스탁 같은 샌들이나 조리를 신으면 발가락이 만신창이가 된다. 새 신발을 신고 나갈 경우 대일밴드는 필수다. 하지만 그런 단계가 지나고 발의 어떠한 상처들이 딱쟁이가 앉아 아물 때 쯤이면 그 신발을 그제야 자유롭게 신을 수 있다. 아프지 않고.

그래서 나는 신발에 대한 욕심도  없을뿐더러 신발을 자주 사진 않는다. 특히 하이힐은 언제 신어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고 높은 굽의 앵글부츠와 같은 것은 6년이 지난 지금도 밑창 한 번 갈지 않고 신고 있다. 가끔 신긴 신는다. 그래서 난 유행을 잘 타지 않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고른다.


낡고 닳아서 어느새 나의 발에 딱 길들여질 때까지 미련하게 신어서 결국 내 것이 되었을 때 버려야 했던 신발도 있었다. 얼마 전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한 켤레의 단화를 버렸는데 그건 김피디와 일본에서 커플 신발로 샀던 신발이자, 지난 잊지 못할 나의 유럽 여행에 동행되었던 녀석이다. 이미 천이 구멍이 나 있어 절대로 비 오는 날엔 신을 수 없는 신발인데 버리려니 너무 아까웠다. 추억,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신발이었기 때문이다.

아, 유럽의 흙을 다(?) 밟은 신발인데........


그러고 보니 나의 유난스러운 발과 신발에 관한 생각은
오래된 우리와 같은 연인을 닮아 있다.
 낡아서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은
빛바래 져 있고
함께한 시간이 길어 서로에게 길들여져
무척 편한 사이.
그리고 어느  한쪽 굽이 나의 습관적인
걸음걸이로 인해 닳아 있어
가끔 휘청거리는 것과 닮았다.


단 한 번도 나의 유난스러운 발과 신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연애 5년 차가 넘어가니 내 사랑도 내 신발들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 주인따라 가는 거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와 같은 두근거림과 설렘처럼 방방 뛰던 때가 언제였지 하며 기억을  되찾아야하는 것과 같을 만큼 낡을 대로 낡은 내 신발과 같은 현재.

김피디에게 무턱대고 우리의 설렜던 시간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을 때마다 아마 편하고 익숙하며 친구와 같은 현재를 눈감아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새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 바꾸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왔다. 사랑도 때마다 형태를 바꿔야 한다며. 그 리프레시(refresh)와 같은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건 그저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신는 신발처럼 나에게 어쩌면 이렇게 오래되고 편안하며 익숙한 사랑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새로우면 신나겠지. 하지만 오래되면 즐겁다.

어딜 나갈 때마다 어떤 옷을 입든 간에 신발장에서 가장 날 편하게 데리고 다녀 줄 신발을 신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다른 신발을 신으면 된다. 하지만 언제나 난 편하게 내 발에 길들여진 그 신발을 찾기 마련이다. 그게 나에게 가장 맞고 그 녀석이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니까.


여러 관계들에서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을 소개할 때 나와 얼마 간의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인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연인관계에선 연애 초기의 강렬함 때문에 함께하며 흐른 시간에 대해선 가끔 함구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스스로가 설렘 가득했던 처음만을 기억하고 싶어 하기 때문은 아닐까.

'좋을 때다~'와 같은 말을 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금도 좋은  때다.라고 답해주고 싶다. 누구에게도 나에게도!


난 내일도 그 신발을 신을 거다. 아직 조금 덜 길들여져 자꾸 뒤꿈치를 할퀴지만 그래도 그 신발이 이쁘고 편하다. 난 내일 모레에는 제일 편한 그 신발을 신을 거다. 그러면 난 그 녀석을 믿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오래 걸어도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닳은 부분이 있어 가다가 휘청거리거나 삐걱거리면 잠깐 쉬면 된다. 언제라도 나는 다시 그 신발을 신을 테니까. 유난스러운 내 발에 신겨 있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내 연애는 나의 신발들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신고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이미 그만큼 길들여져 딱 좋은 신발을 신은 상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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