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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May 01. 2016

나는 제주에서 일한다.

제주도에 정착해 살고픈 떠돌이 인생

사실 나는 제주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다. 스물여덟 살 때 처음으로 혹독한 겨울의 제주를 맞이했고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에 살짝 진저리 쳤다. 그리고 다음 해 가을, 다시 온 제주는 여기서 살아보고는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만큼 아름답더라. 어딜 찍어도 작품이라고 박박 우길 수 있을 만큼의 색감으로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카메라에 숱한 순간들을 남아 있다. 그제야 사람들이 '이래서 제주, 제주 하는구나'를 알았다. 몇 년 뒤 여름에 찾은 제주. 뜨거운 햇살, 들떠 있는 사람들의 휴양. 그에 비해 아팠던 나는. 동행자에게 민폐였지만 나름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긴다. 왜 여름에 처음 오는 제주였으니까.

비도 왔고, 해가 쨍하니 뜨기도 했고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했지만 뜨거운 제주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몇 번의 출장을 걸쳐 제주에서 일한다. 몇 번의 출장은 중산간도로, 평화로, 한라산 산기슭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수차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운전기사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처음 낯선 땅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2층짜리 쉐어하우스에 들어갔고 주인과 공동으로 쓰는 주방, 거실이 있는 1층 외에 2층은 각 방에 입주자들이 산다. 총 4명. 두 달 정도의 계약을 마치고 이사 온 나만의 방은 썩 마음에 들었다. 매일 아침, 날씨가 좋다면 창문으로 한라산을 볼 수 있어 아침마다 한라산 사진을 찍어두는 것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층 침대, 탁자, 옷걸이, 선반장이 전부인 작은 방이지만 몸을 누이고 책을 보고, 지인 한 명 정도와는 함께 할 수 있는 방이었다.

제주의 3월은 추웠다. 묵고 있는 방이 중산간 아래쪽이다 보니 그 추위는 초겨울 날씨 그대로였다. 봄의 제주는 아직까지도 겨울을 밀어내지 못한 채로 지나가고 있다. 제주에서 생활한지 두 달만에 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독립다운 독립에 불편한 감정들은 잊었고 호시탐탐 일하는 중간중간마다 집을 찾았으며 드디어 한 방에 계약할 만한 집을 만났다.

그렇게 나는 제주로 독립했다.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제주에서 사는 일에 대해 말이다. 노는 것도 아니라 일을 하면서 제주에 있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처음엔 나도 그러한 설렘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출 퇴근길. 그리고 집에서 보이는 바다 정도가 아직 내가 제주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들 중 몇 가지로 추려질 뿐. 어디서든 먹고사는 문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이곳까지 꾸역꾸역 내려와 독립한 내가 이렇게 무심하고 무덤덤하게 살아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곰곰이 아침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저녁 퇴근길. 오늘 내가 먹는 음식, 그리고 오늘 제주의 날씨 등을 보고 생각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몸은 일에 지쳐 있어도 서울과 같이 갑갑하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는 것이 바로 제주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살았던 쉐어 하우스에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전부 벚꽃이었다. 어느 날은 그 벚꽃을 보다가 출근 버스를 놓쳐 결국 지각하고 말았지만 그 덕에 나는 길에서 길 끝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 이것이 제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닐까? 홀로 그렇게 생각하면 뜨거운 햇볕과 눈부신 벚꽃길을 걸었다.


그리고 제주는 그러한 모습들을 갑작스럽게 보여주는 탓인지 몰라도 들어오고 나가기를 어렵게 하기도 했다.

사람 구실을 위해 광주 결혼식에 갔던 날은 비바람으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되기도 했고, 올해 겨울 출장 온 제주는 눈 속에 일행들 전부를 파묻어 버렸다.

그런 도도한 매력있다. 섬이란 자체가 가진.....


잘 살아보고싶다.


지금은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사온 며칠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창 밖으로 보이는 범섬이 슬퍼보였지만 볕이 잘 드는 요즘은 아침마다 그 풍광을 바라보며 기지개 펴는 걸로 시작한다.

일상이 여행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내 일상은 뜻하지 않은 여행의 길로 들어섰다. 하루 종일 바쁜 일정으로 일하지만 나는 제주에 살고 있고 변화무쌍한 날씨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제주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상 안에 여행이 살포시 앉아 있다. 물론 기대했던 것 보다 너무 제주를 가까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일상이 전부 여행 같은 느낌을 내기에 충분한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러워 하는 지인들에게 뭐가 부럽냐 라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은 부러워해줘도 좋겠다 싶다.

특별한 일상을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제주에 있기 때문에(?) 

아쉬운 건 아름다운 제주가 화려한 제주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인데, 그 전에 나는 이 곳에서 열심히, 아름답고 즐겁게 살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래야 생애 두번 없을 내 삶이 여행처럼 느껴지는 어떤 순간을 남길 수 있으리라. 


잘 살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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