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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Jun 19. 2016

마음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적응도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돼야 하는 건데.......

지난 3월, 그토록 오고 싶어 하던 제주에 왔다.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공간이 생겼으며, 살 집도 마련하고 정신없이 그렇게 6월이 되었다. 쉴 새 없이 바빴고 제주에 산다기 보다는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여차하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이 바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과 생활을 잘 쪼개서 언제 또 살아볼지 모르는 제주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볼 궁리를 하는 시점이다. 주말도 없이 일했고 야근하면 제공되는 식대를 빠짐없이 다 챙겨 먹었다.


어떤 시기가 지나고 나면, 바쁘고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편안해질 거다. 조금은 여유가 생길 거라는 말을 기운 삼아 지난달들을 보냈다.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쁜 행사가 끝나고도 여전히 야근 식대 일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먹기로 했다. 이건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조금씩 느리게 내 삶의 형태를 바꾸고 습관을 지우고 새로 써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야근이 끝나면 지쳐서 집에 가기 바빴고 아침에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버스를 타면 약 15분가량의 제주도 풍경을 보고 내려 다시 부리나케 뛰어 출근해야 했다. 지쳤던 몸은 조금의 여유를 바로 받아들여 밑도 끝도 없이 늘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제주도를 떠돌 것 같던 영혼은 병들어 있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일하는 덕에 없던 분진 알레르기에, 밀린 빨래, 무거워지는 몸. 


난 이 모든 것들이 몸이 적응한 데에 따르는 부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일하다 보니, 몸은 앉아 있길 원하고 잠이 부족하다 보니 잠을 늘어지게 자고 또 자길 원했다가 넘치도록 자게 했다. 음식은 먹어도 먹어서 헛헛한 기분이 들어 또 먹고 또 먹었다. 이 모든 것이 몸은 제주에서의 일상에 적응한 것과 같으면서도 서울에서의 피폐한 직장인 모습 그대로이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제주다. 살기엔 더없이 많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그 불편함이라는 것이 빠르게 살아오고 편리한 것으로 가득한 서울에서부터 온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불편함이 좋았고 지금도 그 불편함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타지'라는 것에 대한 느낌은 아직 마음에 쏙 들 만큼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 몸이 제주에 적응한 것과는 달리 마음의 적응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기로 한 건 운동이다. 

















해변에서 조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집 뒤에 있는 오름이나 산에 주말마다 올라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3월 제주는 4월, 5월이 되도록 추웠고 나에게 주말과 해변은 없었다. 6월이 되니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은 제주다. 해변에서 비 맞으며 뛰고 산을 우비 입고 등반하기란, 새삼 내가 그렇게 어리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게 할 만큼 힘겨운 일이다. 마땅한 헬스장 한 군데가 없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오픈 한지 얼마 안 되는 헬스장을 등록했지만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헬스장을 가기 위해선 회사에서 버스를 20분 타고 가야 하며 집 근처라고 해도 헬스장에서부터 집까지는 평지라곤 하나도 없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그것도 장장 15분가량.

그래, 뭐 유산소 운동이 따로 필요 없다고 여기자. 그렇게 마음먹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적응' 내가 이 곳에 살고 있고 이 주변엔 뭐가 있고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이건 '적응'이라기보다는 학습효과일 뿐이다. 처음 느꼈던 여행처럼 일상을 지내기엔 어디 가든 빌어 먹고살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게 일상이란 서울에서 하던 짓 제주에서도 하면 되는 거거나 온전히 다른 습관 속에서 사는 것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적응'이란 걸 포기하고 싶진 않다. 지금은 장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대한 적응을 말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새로 시작한 일, 야근, 회의, 요리, 뭐든 새로 배우는 것들...

전부 다 적응이 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으로 만드는 일. 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를 더 도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못 들인 습관만큼 인생을 좀먹는 게 없는 것처럼. 이 놈의 적응도 좀 멋지게 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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