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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Jun 26. 2016

그때가 지금이다.

가장 젊은 순간인 지금, 과거를 들추는 일을 청승이라 하지 말자.

우리는 매번 과거를 들추고 좋았던 시절이라며 곱씹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때가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걸

몰랐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이쁘고 멋진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매번 잊어버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제주에 있고 협재 해변 앞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주말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바다 가까이 살고 있다. 다음 생에서 이런 날이 있을 거란 생각과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좋은 날들이다. 그러나 늘 잊어버린다.


늘 잊어버리는 이유가 사실 간단하진 않다. 살던 곳을 떠나올 때 마음이 그러했듯이 살고 있는 동안도 밥 빌어 먹고살기 힘든 현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고 통장의 잔고가 0을 향해 갈 때마다 마음속에서 요동친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건가.


대본을 쓰겠다고 드라마다운 드라마 한 편 써보겠다고. 목 빠지게 기다리는 엄마에게는 건강검진 잘 받고 운동도 하면서 내가 글로 대박 나 호강시켜 줄 날만을 기다리라고 호언장담해놓고 하루에 브런치 하나 쓰는 걸 버거워하는 이 현실에서 나는 언제 예쁘고 언제 멋지단 말인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좀 더 부지런하게 살기 위해서고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나트륨이 적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이면서 동시에 밥값을 아끼기 위함인데 마트에선 유기농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 집에 와 치맥의 유혹에서 못 벗어날 거 같으면 예전에 예뻤던 시절 사진을 들춰보며 그래 이 때로 다시 돌아가야지. 하면서 꾸욱 참는다. 사실 그때만 예뻤니? 

아닐 거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지금도 난 충분히 예쁘고 멋지다.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나는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지 않은가.  그 성장이 무엇이냐고 되물어볼 테지? 사실 그럼 구체적으로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예쁘지 않고 멋지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아, 넋두리가 늘어가는 날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가끔은 골머리 썩을 만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넋두리의 밑에는 아마도 나에 대한 불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투정이 섞여 있을 터.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 때문에 투정을 부리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화를 내는 대상도 예뻐할 대상도 결국 다 나인데. 내가 나에게 상처도 주고 다독여가기도 하면서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난 어제도 지난 추억을 꺼내봤다. 그리고 그땐 좋았지 싶었다. 그땐 이뻤지 싶었다.

난 엊그제는 지난 나의 글과 시, 그림을 꺼내보았다. 그땐 어쩜 저랬지. 싶었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지난 나의 글들을 보고 어쩜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감탄하는 거라면 그때 이후 성장하지 않은 걸 거라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적은 걸까. 성장하지 않은 거라니.

들출 과거가 전부 아픔뿐인 인생도 있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그때대로, 지금의 나는 지금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걸 담아내는 내 글이 위트 있었던 그때보다 지금 고민이 더 깊어 재치 있게 쓰지 못하는 것이 성장하지 않은 거라고 대체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난 과거를 들추고 곱씹는 그때가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걸 예시 삼아 늘 과거를 들추고 곱씹을 거다.

그렇게 매일 들추고 곱씹는 그 순간이 가장 젊고 이쁜 순간이 되게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때가 시간이 흘러 곱씹으면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순간이겠지. 난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거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옥죄고 지금의 나를 하릴없이 낮게만 보지 않으련다.


말장난 같지만 잘 알고 있다. 지금 가장 젊고 이쁜 순간이니 아름답게 살라는 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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