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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Jul 03. 2016

자신이 없어 자신도 없어질지 모를 ...

주말, 서울 조의와 만남. 그리고 나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이유 없는 가슴 두근거림과 시큰거리는 콧등 때문에 속이 아프다.

특별히 상처를 준 적도 없는 부모 아래 곱게는 아니어도 모자랄 것 없이 자란 나다. 내 안의 어떤 상처는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부모로 인한, 가족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보단 낯선 이, 내 스스로의 열등감, 자격지심으로 비롯된 것들이다. 그래, 그랬던 거 같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이 모든 상처 혹은 투정을 전부 부모의 탓으로 돌렸었다. 더 사랑받지 못해서라고, 따뜻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 못 들어서라고, 다른 부모들처럼 해주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끝끝내 자신들이 자신들의 자식에게 상처만을 준 부모처럼 만들어 버린 시간들.


1년 6개월 만에 장례식장에 서 있는 그를 만났다.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의 부고였다. 

폭우가 내리고 있었고, 버스, 비행기, 지하철, 자가용으로 장장 6시간가량의 이동 후의 만남이었다.

아프셨던 아버지 때문에 철렁했던 가슴이 여러 번이어서인지 그와 그의 가족들은 고생만 하다 가신 아버지를 눈물 대신 미소로, 죄책감보단 감사함으로 그렇게 보내드리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만남과 조의, 미루어 짐작하는 복잡한 생각으로 밤을 보내고 뒤척이고, 그리고 엄마를 만났다.


동행했던 동생은 엄마와 함께 술 한 잔 하느라 퉁퉁 부은 얼굴로 나타났었는데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아 맥주 한 잔 한 적이 없다. 나의 무뚝뚝함과 이유 없는 불편함으로 성인 되어 지금까지 술 퍼마실 동안 부모와 마신 적은 없어 그 동생에게 부럽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인 듯하다.

해본 적이 없던 짓이고 지금도 그럴 마음이 없으며 생각만 해도 낯 뜨겁다. 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은 사람도 아니라고 이제야 생각하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날 사랑해 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도 나는 아직도 숨기는 게 많고 사춘기 마냥 부모를 불편해하는 딱 그 수준이다.


타지 생활한다고 필요한 건 없는지 묻고 필요하단 건 다 주고, 월세가 비싸다고 투정해주며 돈이 없을까 봐 5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더 주는 엄마 앞에서 나는 그저 어른 인 척 이야기하고 하릴없이 웃으며 일찍 자리를 뜨고 돌아설 뿐이다. 시간이 지나 이때를 돌아봤을 때 아마도 나는 후회하겠지. 그런데 이 모든 생각을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라도 알았다면 그게 늦은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꼭 후회하지 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젊은 부모의 시간이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짧아져 가는 것을 알아도 속수무책인 나를 탓하기만 하고 그래도 건강히 오래 계셨으면 하는 나는 그 마저도 나를 위함이 아닐까

그 염치없음에 속이 아프다.

혼자서도 어디 가서도 잘 살고 잘 할 딸이라는 인식이 주는 외로움이나 괴로움, 그래서 오는 표현들이 무심하다고 여겼던 시절, 아직도 그리 여기고 있는 시간.  마주 앉아 아픔을 꺼내 놓기엔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들었을 부모의 마음이 아른거려서 라는 핑계를 댄다. 실제론 그들의 아픔을 마주 할 자신이 없을 뿐이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어리광과 투정이 보잘 것 없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장례식장의 그의 심정을, 오래전부터 부모도 형제도 없이 지낸 내 친구의 마음을, 나는 경험해보지 못해서 잘 알 수가 없어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그런 마음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기에 나의 부모가 아직은 더 건강히 오래 잘 지내 주기를 바라는 이기심이란. 

나의 엄마, 아빠에게도 우정, 의지 그리고 인생의 유연한 지혜로 서로를 더 할나위 없이 아껴주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나의 위로보다 더 큰 위로가 되며 세월을 함께 한 '남'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강아지를 향해 다정히 이름 부르며 웃는 아빠를 기가 차 했던 시간보다 나에게는 왜 그래 주지 않았냐는 원망보다 바꾼 핸드폰이 너무 최신형이라 잘 다룰 줄 몰라 슬쩍 내미는 아빠가, 언제 올라왔냐며 웃어 보이고 그래 본 적 없던 장난에 피식하는 아빠가, 그리고 돌아서며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말을 걸었다고 자위하는 내가.

이제부터 수도 없이 그 상황들을 반복하겠지.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때로는 많이 늙어가고 아픈 데가 늘어나고 지난 상처와 고생을 꺼내는 그들 앞에 서 있겠지. 아, 안 그랬으면 좋겠다. 참 자신이 없다.


자신감으로 가족을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꾸 엄마, 아빠 앞에선 점점 먹어가는 나이 만큼이나 고꾸라지게 자식 도리를 못하는 못난이로 비춰질까 겁난다. 그래서 한 걸음 두 걸음 그 걸음을 더 멀리 내딛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몇 안 되는 글자의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 전부일 수 밖에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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