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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주는 건 간단하다. 그것이 행복이다.

[영화] 비기너스 (Beginners, 2010)

by 진미

브런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책과 영화 이야기를 써왔었습니다.

지금은 제 브런치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책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재편해 이어 올리려고 합니다.

다양한 이야기로 서로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영화를 보면서 친구가 왜 이 영화를 추천했는지, 왜 나는 굳이 그래도 이 영화를 보았는지를 잊어버렸습니다. 이유인 즉, 영화가 보여주는 잔잔하지만 인생에 대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고 언제나 새로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내 인생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 괴로울 때 본다면 좋을 만한 영화이기에 추천합니다.


Beginners, 2010 비기너스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감독 : 마이크 밀스
배우 : 이완 맥그리거(올리버), 크리스토퍼 플러머(할), 멜라니 로랑 Melanie Laurent(애너)


창 밖으로 찬 바람이 불어 들어오지만 따뜻한 커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
내 발은 시렵지만 마음은 갑갑할 만큼 뜨거운 기운이 감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학교를 입학할 때 새로운 공간이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1년 전 연인과 헤어지고 몇 해 뒤 다른 연인과의 눈맞춤에 심장은 터질 듯 뛴다.
시작하지 못할 것이 없다.
영화의 올리버(이완맥그리거)의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처럼.....

부인과 사별한 4년 뒤 그는 게이임을 아들에게 밝히고 75세에 애인광고를 낸다.

"잠자리를 구하기도 하지만.........-(중략)- 나는 75세이며 매력적이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친구든 애인든 상관없습니다. (중략) 늙은 남자라도 괜찮다면 만나 보면 어떻까요.?"

수줍은 듯 하지만 새롭게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한 75세의 남자치곤 너무 귀엽다.
그렇게 애인광고로 찾은 앤디라는 그의 애인을 곁에 두고 그는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직 병중임을 밝히지 않고 파티다 쇼핑이다, 서류 정리다 뭐다 하면서 쉬지 않자 아들 올리버는 아버지가 환자임을 자꾸 각인시키려 한다. 아버지는 암 4기 말기 환자다. 5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다.
그런 아들에게 그가 말한다. "이제 3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암 환자로서의 말기 4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제 3기를 넘겼다는 생각.
그러니 하고 싶은 거라도 실컷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태어난 1955년. 아들 올리버가 태어난 1965년. 몇 장의 스틸컷과 그때의 상황들로 그는 현재와 과거를 이해해 나가면서
아직도 자신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아버지의 죽음은 조용했다. 그리고 고요하게 삶을 마감했다.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아버지가 죽고 올리버는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와도 해후한다.
아버지가 게이 인걸 알면서도 결혼한 엄마.
데이지를 전해주는 손이 그려진 그림에서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말.
"꽃을 주는 것은 간단하지만 행복하지 않니? 내가 네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간단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시작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움을 원하는 것이다.
엄마가 게이인 아버지를 고쳐주겠다고 결혼하자 했던 말과 75세 늙은 남자가 커밍아웃 한 뒤 사랑을 하는 것들.

그러나 올리버는 그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 하다.
사람을 떠나온 이유는 그들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고 하지만 그는 외로웠다.
프랑스 여배우 안나를 만나면서도 그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하지만 망설이고 주저하는 동안 그녀에게로부터 받았던 치유는 그를 성장시켰고
그녀를 만나기 몇 개월 전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남은 삶의 잔상이 그대로다.

그러기에 그는 지속할 수 없다고 믿었던 관계로부터 자신을 만들어 간다.
할과 올리버의 강아지 아서도 말한다. 어떤 관계는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였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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