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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밖에 없는 슬픈 찬가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2016

by 진미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2016)

감독 데이빗 맥킨지

출연 크리스 파인, 벤 포스터, 제프 브리지스, 케이티 믹슨

개봉 2016 미국




개인적으로 서부극을 좋아하진 않는다. 많이 접해보지 못함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축축한 듯한 액션보다 아무래도 빠르고 명확한 현대적 액션에 눈, 귀가 익숙해져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흥미를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서부극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영문 제목 <Hell or High water>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지옥이든 높은 파도든, 높은 수위이든,? 대체 저 영어는 무슨 뜻일까?


무슨 어려움이 닥쳐도.


무슨 어려움이 닥쳐도,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고 나서 다시 본 국내 개봉 제목 로스트 인 더스트 <lost in dust>

영화 중반 이상부터는 어쩜 영문 제복보다 국내 개봉 제목이 훨씬 설득력 있게 보이게 된다.


먼지 속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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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는 배경적으로는 텍사스 서부를 다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카우보이, 혹은 어떠한 마을 지켜내는 그 무엇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은 가난한 두 형제의 은행강도 범죄와 그 둘을 쫒은 형사 2명.

남자 넷이 서부를 달리고 또 달려대면서 서로의 위치와 입장에 맞는 대사와 그들을 받아주기도 하고 쳐내기도 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꾸들이 장면 장면을 놓치고 가기 어렵게 만드는 영화다.


줄거리를 찾아보고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나는 왜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이는 남자 둘이 강도질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목소리 톤도 높고 사람을 때리기까지 하고 멍청하다는 말에 욱하는 성질을 지녔고

그 와중에 차분하게 총만 들고 서 있는 남자.

은행을 털고 나와 가만히 서 있던 남자(토비)는 말한다. 사람을 때릴 거 까진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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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른 두 사람이 은행을 털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황들에 시선이 꽂힌다.

텍사스 레인저스인 헤밀턴(제프 브리지스)과 파트너이자 인디언인 알베르토(길 버밍햄)가 두 형제를 쫓으면서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행동이다.

서로 앙숙인 듯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듯 한 툭툭 거리는 대사에서 인디언과 백인의 이야기는

아직도 이 시대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태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떤 부분에선 형제처럼 우애 깊게 녹아들어 있는 농담처럼 들리는 듯하다.

그 둘과 형제인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헤밀턴의 차 속 풍경과 복면 벗고, 장갑 벗고, 돈 챙기고 운전하며 긴장감을 녹여내며 땀을 뻘뻘 흘리는 토비의 차 속 풍경.


넷을 놓고 대비시켜 보는 가 하면서 또는 정반대를 주는 스토리와 촬영 기법, 연기는 가히 탁월하다.

단순히 의상, 대사 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서적인 부분이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이 곳이 서부 텍사스 임과 동시에 두 형제가 가난하게 살았고 무언가를 되찾아야 할 만큼의 돈이 필요하며 그렇지만 딱 그만큼의 돈만 필요한 것이므로 더 욕심내지 않으려는 강도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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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중반까지 가져가게 하는 이 영화의 플롯이 참 마음에 들었다.

태너가 혼자 단독행동을 하던 그 찰나, 음식점에 있던 토비는 한 종업원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때 토비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먼지가 자욱한 텍사스 서부가 담겨 있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앞서 은행을 터는 과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눈빛. 그는 자신이 실업자 된 사연을 아주 간략하게 말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데, 그때 맞은편 은해에서 태너는 돈뭉치를 들고 뛰어와 차에 탄다.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나중에 해밀턴에게 '30년 만에 은행이 털리는 것을 처음 봤다' 라 증언하고 종업원 여성은 자신에게 준 200달러의 팁을 빼앗아 가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표할 뿐 그들의 범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나는 그런 것들이 모두 아이러니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텍사스라는 도시라 그럴 법한 것이라는 것은 곳곳에 감독의 의도에 맞게 깔려 있다.
한 은행에선 1953년짜리 동전을 잔뜩 발견했다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동전을 바꾸고 있는가 하면
"흑인이냐 백인이야"라는 해밀턴의 질문에 "얼굴색이요? 영혼이요?"라는 대답들까지.


그들은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이런 곳이야.라는 것을 대사와 표정으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측은해지길 시작했고 은행에서 절대로 돈다발을 털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돈을 바꾸러 간 카지노에서 의심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보는 내내 선과 악이라는 단어보다는 악이지만.... 범죄이지만.....이라고 속삭일 만큼 먼지 투성이다.


텍사스는 인구당 면적이 넓고 싼 값에 넓은 집을 살 수 있는 동네이지만 그건 상위 몇 프로, 영화에선 석유가 나오는 땅을 가진 사람들에 한해서 일거다.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한 그 땅에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는 방법은 은행을 터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실직과 엄마의 병환으로 인해 저당 잡힌 엄마의 농장을 되찾기 위해. 그 농장에서 나는 석유를 가지고 나의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이 길 밖에 없어서요.


사실 나는 이 장면에서 어떤 서스펜스 영화보다도 더 큰 긴장감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걸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그렇다 할 웅장한 음악이 깔린 것도 아니고 볕이 뜨겁고 경찰과 토비의 대화가 딱딱 한 두 마디인데,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헀다. 난 아무래도 이 장면이 최고 장면인 듯하다. 이야기와 화면이 전부 집중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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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에서 바꿔 든 칩을 끌어안고 뉴스를 통해 형의 죽음을 알게 된 토비의 처량함이란... 화려한 카지노 안에서의 모습이라곤, 칩을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표정과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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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서부를 내달리며 롱 테이크로 파란색 자동차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으로 다시 롱 테이크로 긴 도로를 달려 나가는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사람 한 명 없고, 황량하고, 먼지를 휘날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아무래도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서부 텍사스의 모습일 거다.


다시 대사 하나하나와 주인공의 표정을 따라 읽어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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