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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Aug 23. 2015

'인정'받아야 한다.

엄마는 대단, 아니 위대하다.

아마도 나는 친구들의 예상과 달리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동생의 밥과 빨래 정도를 챙겨왔던 나는 작은어머니와 함께 살 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집안일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 가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노는 일이 더욱 즐거웠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대학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여자애가 집안일  하나 하지 않는다고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를 늘 귓가에 울리도록 하셨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집이어서 더 하기 싫었다고. 

할머니께서 사용하기 시작한 주방은 무엇 하나 찾기 힘들었고 날파리가 날아다녔으며 해 둔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푼 두 푼 모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스타일에 딱 맞는 주방이었다. 빨래도 마찬가지였다. 썼던 수건을 또 쓰고 냄새가 나도 무엇 하나 묻은 게 없기 때문에 써야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독립을 하게 되고 내 집을 갖게 되면 깔끔하고 예쁘고 나만을 위해 집을 열심히 꾸밀 거라고. 그러한 갈증을 단 몇 평인 내 방에 펼쳤다.

시기별로 계절별로 방 분위기도 바꿔보고 차를 가지고 나서부터는 프로방스 등을 다니면서 예쁜 소품들을 사기도 했다. 방 구조를 서재형으로 바꿔보기도 하고 필요 없는 가구는 몰래 엄마 방에 갖다 놓기도 했다. 물론 필요한 가구 있으면 살 돈이 없으니 엄마, 동생 방에서 가져다 쓰곤 했다. 

시간이 지나 엄마도 그러한 습성과 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도 집을 한 번 뒤집으면 그냥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바꾸는 가구 배치를 주로 했고 밤이 새도록 하곤 했다. 소품 등을 좋아했던 걸 봐선 자신의 집에 대한 로망이 분명 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하니 말이다.


나이가 먹고 독립 아닌 독립을 하면서 새로운 집에서 살게 되었다. 원룸에서 시작한 생활이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마음대로 할 순 없었지만 물건의 위치며 가구의 위치 같은 건 모두 내 몫이었고 나는 즐거웠다.

매일 같이 쓸고 닦고 할 정도니 말이다. 시기별로 계절별로 어떻게 집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더 자주 하게 되었고 길거리나 샵에서 인테리어 소품 등을 보면 옷보다 더 오래 보고 사고 싶었다. 친구들은 이미 이러한 내 로망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 친구들은 현모양처가 될 거다, 집을 잘 꾸미고 살 거다, 아이를 잘 키울 거다 와 같은 말들을 수도 없이 해왔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생각과 달리 나는 아마도 그렇게 부산스럽고 피곤하게 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백수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무한 반복되는 집안일에 많은 부분 지쳐가고 있다. 왜 바닥은 닦아도 닦아서 서걱거리는 건지, 설거지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언지, 간편하게 때울만한 요리는 없는지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다 보면 집안일을 하던 사람들은 결국 엄마가 참 대단했음을 깨닫게 되나 보다.

이 무한 반복적인 일을 할 때마다 지겨워 죽을 것 같은데 엄마, 할머니는 오죽 했을까 싶다.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일이 집안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느 부분에선 남자들이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나와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꾸미고 맛있는 밥 한 끼를 차리는 행복, 뭐 이런 거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이 역시 엄마를 닮아서 일까. 엄마도 일을 하지 않고 지내던 시간에는 그닥 집안일을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었다. 엄마는 나가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런 팔자인가 보다.


회사, 학교 등 집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인정' 받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사실 그 인정 혹은 칭찬이 하루의 기분을 크게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좌절하던 누군가에게 희망의 한 줄기 빛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집안일은 인정이나 칭찬 같은 것과 거리가 먼 일인 거 같다. 아무도 집안일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다기 보단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사는 사람으로부터겠지만.

일을 해서 상사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면 내가 포기한 꿈보다는 작을지 몰라도 세상 살아가는 맛이 느껴진다. 그래, 내가 열심히  했어하는 자축도 아주 쉽게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리포트를 발표하고 교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학점으로  보상받을 때 그래, 내가 열심히  공부했다.라고 술 한 잔 더 걸칠 수 있었다.

회사나 학교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반면 하루 종일 말할 사람 하나 없이 했던 일을 조금씩 바꿔 빠른 방법으로 해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집안일을 노래 하나 중얼거리며 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있다. 다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기만 상황인 거다. 경중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


결벽증이 있어서 집을 무지하게 깨끗하게 해 놓고 스스로 만족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사람이 살 정도지만 누가 집에 갑작스레 찾아와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면 좋겠다라는 수준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덧 나는 지난 시절 집과 가정에 대해 꿈꿔왔던 로망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일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어리광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상태인 거다. 그래서 난 이제야 친구들의 말에 반기를 든다. 난  집안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집안일을 할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난 아닌 것 같다는 것이지. 사실 이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희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내가 엄마, 할머니의 대단함을 깨닫는 지점이기도 하다. 숱하게 희생해도 큰 인정을 받지 못했던 윗 세대의 여성들에 대한.


아빠는 돈, 엄마는 밥이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적어도 내 안에서 그러한 시기가 부쩍 지나가고 있다. 돈 버는 일과 집안일이 동등하다, 가사 노동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그건 그저 확산되는 추세만 보일 뿐 누군가는 아직도 집안일을 해줄 누군가를 바란다. 그들은 그 일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지겨우며 티도 나지 않는 무한반복적인 노동임과 동시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일 텐데..... 끝내 외면하는 것이겠지 싶다. 아니면 전혀 모르거나,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육아, 가사노동, 밥벌이를 전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걸 하고 있는 여자들에게 대단하는 말을 전하고 싶고 나는 그들을 인정한다고 말할 것이다. 멋지다고 대단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난 집안일로 인정받고 싶어 지지 않아졌다. 때문에 엄마들의 파업도 지지한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으면 헛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그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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