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an), 2016
감독: 알폰소 쿠아론
원작자: P. D. 제임스
원작: 인간의 아이들
촬영: 엠마누엘 루베즈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다시 실패하는 이유,
더 이상의 미래를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풍부하게 꿈꾸는가.
아이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불임, 이민, 굶주림, 전쟁과 같은 미래.
인간들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가득한 우주선에 갇혀 사는 미래.
어느 것 하나 밝고 희망적이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더욱 현재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칠드런 오브 맨>의 경우 생명이 소중하다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 아래 엄혹하고 잔인한 미래이지만 희망의 한 줄기를 그린 명작이다.
2027년의 영국이 배경인 이 영화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점차 파멸로 향해 가며 불법이민자들로부터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던 '아기 디에고'가 사망하자 도시 전체는 희망을 잃고 슬픔에 잠긴다.
주인공 테오는 전 부인인 줄리언에게 납치 당해 그들이 지키려는 한 아이를 위한 부탁을 받는다.
원작인 P.D 제임스의 소설과는 주인공과 묘사하는 세계가 다르지만 작가가 카메오로 출연할 만큼 영화는 원작과 견주어 볼 만큼 멋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의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늘어면서 가까스로 2016년에 개봉했다. 이 작품은 이미 2006년 해외에서 개봉했던 작품이다. 10년 전 작품이 작년에 개봉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현재를 예견하듯한 작품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심각한 저출산의 시대로 가고 있는 요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힘은 집중되는 스토리와 롱테이크로 다루어진 영상, 배우들의 열연에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아이를 임신하고 낳으며 인류는 발전해왔다. 그러나 그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발전이 완전히 멈춘 세상에서 생명의 고귀함, 위대함, 탄생과 성장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룬 스토리는 한 흑인아이의 아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목숨을 내놓는 장면들을 통해 다뤄진다. 또한 영화는 다양한 비유, 암시 등을 통해 2027년의 지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타낸다. 테러,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생명이 존재 하지 않는 지구는 곧 멸망을 앞둔 것과 같이 그려진다. 이 영화를 두고 종교적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우선되는 것은 그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알고는 있지만 아직 피부로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한 불임과 난민 문제를 극대화 시켜 스크린 안에 공포와 불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난민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10여분 가량 롱테이크로 다룬 장면에서 테오는 가까스로 키와 그녀의 아이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오려한다.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건물 안 전체로 퍼지자, 거짓말처럼 날아들던 총알은 멈춘다. 영국군도 저항군도, 난민들도 전부 길을 열어주며 그 아이의 안전을 지켜내려 한다. 테오는 휴먼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움직이는 내일호에 키와 그녀의 아이를 실어보내게 되며 끝이 난다.
대사부터 장면장면마다 꼽씹어 볼만한 것들로 가득한 이 작품이 흥행을 거두지 못한 데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이런 현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과 같은 SF 블록버스터의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이 영화가 정말 현실처럼 느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류는 끊임없이 그보다 더 나은 발걸음을 할거라고 믿으며 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