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팬심을 담아.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어제처럼 비가 몰아쳐 내리는 날이거나 비가 올 듯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날이면 이소라 노래를 들었다. 우연히 간 술집에서 이소라 노래가 나오면 더더욱 취했었다. 나의 십대, 이십대는 그녀의 노래들로 꽉 차 있었고 시간을 되돌려 듣고, 또 보게 된다.
비긴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킹에 도전하는 윤도현, 유희열, 이소라는 전적으로 나의 십대와 이십대를 책임져 온 가수다. 아무리 팝을 듣고 좋아하는 외국 가수가 생겨도 결국은 그들 노래로 마무리 되는 것은 가사에 심취해 매일 같이 들었던 노래가 그들이었기 떄문이다.
그렇게 나는 삼십대가 되어서 더이상 나오지 않는 그들의 앨범을 기다리다 지쳐 다른 곳을 방황하다 화면을 통해 그들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화면에 비춰진 이소라는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주변 무던한 사람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드는 듯 하면서도 배려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그런 그녀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제발>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바람이분다>는 노래가 나왔을 때 철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릴 줄 몰랐단 듯이 민트색 찍찍이 운동화에 베이지색 반바지, 긴 팔 셔츠를 입고 길을 나섰다. 학교를 갔다 돌아오던 길, 아무렇지 않게 나는 이별했다.
우산도 없이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길, 반짝이던 민트색 운동화는 축축히 젖고 흙탕물 투성이로 변했고 차가운 빗물이 반바지 사이로 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단 절대 눈물만은 흘리지 않기로 한 채 걷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잠시 숨을 돌리고 술도 한잔 마신 채로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노래방에 갔고 도저히 축축해서 더 신을 수 없는 운동화를 벗어 둔 채 길거리에서 몇 천원짜리 운동화를 사 신었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이소라의 <제발>을 부르다 4분이 넘도록 친구들은 꼼짝하지 못하고 나는 결국 소리내어 울고 말았었다. 지금도 <제발>은 속을 뜨겁게 만든다. 정확한 날짜도 시간도 장소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땐 언제고 나는 민트색 운동화를 벗어둔 채 소리내어 울던 때로 돌아가게 된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 오길 부탁해
처음으로 다시 돌아 가길 바랄께
기다릴께 너를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은 안 돼
멀어지지 마 더 가까이
[이소라 4집 꽃 / 제발_중에]
아일랜드의 슬래인 캐슬에서 <바람이 분다>를 부르자는 유희열에게 이소라는 에둘러 거절한다. 하지만 유희열은 그 노래가 너무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를 설득하기에 나서는데, 모든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기 때문에 힘들거라는 말을 하자 이소라는 말한다. 자신에게 있어 음악은 곧 '생각'이다. 내가 생각한 가사를 부르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함부로 노래를 불러 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녀는 준비된 다른 노래들을 하고 싶어했다.
"사는 이유나 존재 가치가 노래 말고는 없기 때문에 내가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한 곡 한 곡 부르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 마음은 결국 노래를 통해 전달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슬래인 캐슬에서 <바람이 분다>를 부른다.
유희열로부터 여행을 다니는 지금은 동료 뿐이라는 말이 그녀를 움직인 걸로 추측할 뿐이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바람이 분다_중에]
# 초등학교 동창이었댄다. 엄밀히 따지면 국민학교일 때 동창이다. 아직 연합고사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봐야했던 때 가까스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1학년 한 교실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호기롭게 반장으로 뽑으라고 툭 던진 말 뒤로 그 친구와 나는 소리없이 가까워 졌고 알고보니 국민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것이다. 또렷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반 사진을 갖고 왔던 녀석. 그 녀석은 토이 유희열과 이소라의 열렬한 팬이다. 줄창 노래를 듣거나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면 녀석은 그냥 지나쳤던 트랙을 불러 세워 노래 하곤 했다.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그 두 가수의 노래였다.
이십대가 되어서 TV에 이소라 혹은 유희열이 노래를 부르거나 라이브를 하거나 하면 언제나처럼 난 녀석에서 문자를 보냈었다. 봤어? 라고. 들었어? 라고. 새 앨범이 나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그다지 음악을 듣는 폭이 넓지 않았던 나는 대학에서 어울리던 사람들을 통해 팝, 힙합, 알앤비에 빠지면서 자연스레 가요가 멀어진 때에도 녀석은 그들을 기다려왔다. 묘하게도 이소라, 유희열은 나에게 있어 이별, 사랑이라는 감정을 들춰내는 가수이면서도 그 녀석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기도 하다.
이소라의 라디오 애청자였고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빠짐없이 봤으며 그녀의 노래를 사랑했던 그래서 위로받았고 치유되었던 상처들이 고스란히 힘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지금.
반갑다. 노래해주어서 반갑고 좋다.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조심히 읊조리는 대사 같은 ... 그녀의 이야기들
그대가 누굴 만나고 있던 나를 잊게 하기 싫었어
그래 오늘도 나는 나를 두르네
핑크빛 스카프
[이소라 6집 눈썹달 / 아로새기다_중에]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꼭 떠나야 할 일이었을까
먼저 사라진 그대
또 올 수가 없네
볼 수도 없어
죽음보다
네가 남긴 전부를
기억할께
[이소라 7집 / Track8_ 중에]
서로 아닌 척하지만
우리 이제 그만이다 어쨌거나 즐거웠다
차마 이런 말 못하는 것뿐이야
'다들 이러진 않아. 시간 탓하지 마라.
이젠 사랑이 안 된다니 이별이야.'
'다들 이러진 않아. 사랑 탓하지 마라.
매일매일이 이렇다니 우린 남남이야.'
[이소라 7집 / Track2_중에]
난 새롭거나 모나지 않은 말 주워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
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음 차가운 말
음 살가운 말
음 따가운 말
음 반가운 말
[이소라 7집 / Track5_중에]
나 미처 몰랐던 널 알게 된 거라
생각하면서 너에게 다가가도
너를 닮아가는 건 나를 잃을 뿐인데
그냥 여기서 널 기다릴게
[이소라 2집 영화에서처럼 / 너무 다른 널 보면서_ 중에, 작사 : 김동률]
달이 한숨 쉬는 이상야릇한 밤
살을 포옹하는 병든 영혼의 밤
희고 가녀린 어깨 위 붉게 오른 혈흔
타는 입술의 무례함 잠을 훑어 간 꿈
*tell me why
우리 용서 할 수 없는 죄만 남기고 버려진 밤
tell me why
잠시 내게 머문 흔적만 남기고
멀어진 너 사라진 밤
[이소라 4집 꽃 / tatoo_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