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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은 여전히 우릴 향해 있지 않은가?!

[책]82년생 김지영_조남주

by 진미

그녀는 나와 고작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엄마가 되었다가, 남편의 첫사랑이 되었다가, 또 다른 여자가 되었다가 한다. 어디서든 살고 있을 나의 언니와도 같은 그녀는 나와 고작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 아래 글은 소설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셔도 좋습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김지영 씨는 아들만 귀히 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언니 한 명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지워졌고’, 엄마인 오미숙 여사는 산부인과 할머니의 위로 하나로 버텨왔다. 김지영씨는 초등학교 짝꿍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좋아하는 거라는 이상한 대답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고 바바리맨을 응징한 여고생 다섯 명이 반성문을 쓰는 모습을 보아오며 자란 그녀는 나와 다를 바가 없다.

어느 깜깜한 밤, 버스 정류장에 따라 내린 남학생이 무서워 아빠에게 문자를 남겼지만 정류장에 아빤 없었다. 대신에 고등학생인 김지영 씨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스카프를 휘두르며 내린 여자 덕분에, 그 여자가 ‘세상엔 좋은 남자가 더 많다’는 말 때문에 불안했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으며 위로도 받았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왜 학원을 멀리 다니냐 부터 옷차림까지 크게 혼나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나 보다. 지난 나의 학창 시절, 가족사가 어느 것 하나도 다르지 않은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는 날 나는 증조할머니와 작은 할머니 손에 받아졌고 빠른 년생인 바로 뒤 남동생은 버젓히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엄마를 산후조리받게 해주었다. 내가 태어났던 오래된 시골집에는 눈이 오는 한 겨울임에도 고추가 널렸댄다.

할머니와 삼십 대가 다 되도록 살아온 나는 할머니가 밉고 싫었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엄마가 참 힘들었겠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도 십 대에 들어서였다. 말귀를 알아먹기 시작한 나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결국 엄마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의 연속임을 알았다.

여러 잔소리와 높은 톤의 비난들과 함께 늘 ‘이 섬머슴 같은, 지 엄마랑 똑같은, ‘ 과 같은 것들이었다. 난 일부러 더 섬머슴처럼 굴었다.

할아버지는 남동생은 대통령이 될 거니 각하라 부르고 나는 그냥 공주였다. 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이 손녀를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예뻐해 주셨다고 기억한다. 열한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에겐 할아버지가 예뻐해 주셨던 기억만 있을 수 있고 어쩌면 그리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극적인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져만 갔다. 나는 집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김지영 씨의 언니 김은영 씨가 동생을 돌보는 것들과 김지영 씨가 막내 남동생이 당연히 집안일 한 톨 하지 않고 받기만 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람들이라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하거나 피했으며 아니면 도망칠 수 있었다. 김지영 씨의 산후우울증이 정신의학과 의사에 의해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로 명명되는 순간에도 나는 싱글이고 아이도 없으니 하며 안도했지만...... 과연 언제까지 안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독하게 버텨냈는데 여전히 우리를 향한 칼날.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p. 100~101)

김지영 씨는 어렵게 취업 해 회사 일을 즐겁게 하는 듯싶지만 막내여서, 그것도 여자 막내여서 수저를 깔고 커피 타 내는 일을 마다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해 왔다. 김은실 팀장이 왜 우리는 그렇게 되었을까, 혹 버텨낸 것만으로는 모자란 것 아닐까. 여자로서 아니 한 사람으로서 버텨냈어야 하는데, 결국 독한 여자라는 소리 뿐이다. 뿐만 아니라 노력 끝에 버텨낸 자신의 자리를 따라올 수 있는 ‘여자’ 후배의 길을 만들어 주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의 칼날은 결국 다시 자신의 몫이 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누구도 그녀에게 그러라고 시킨 사람은 없다. 심지어 가족도 그녀에게 여자다워야 한다. 혹은 몸가짐, 때로는 집안일도 다 도맡아 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거나 가르친 적이 없다. 그저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버텨낸 여자 선배 덕에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던 그녀의 자리는 거래처 남자 사람이 건네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 뻗어야 하는 현실이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p. 116)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척들의 간섭에도 ‘아니다. 괜찮다.’ 해야 하는 현실까지 들어선 김지영 씨는 참았다. 예의려니, 잘 넘어서면 되느니, 남편과 둘이 알아서 하겠다느니와 같은 생각을 삼키면서 말이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 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p. 133~134)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싶어 하던 회사 일을 그만두고 정지원 양을 낳고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시는 그녀는, 남들에 의해 ‘맘충’이 되어 속상함을 남편에게 토로해도 그것은 그저 남들 하는 이야기뿐이라는 위로밖에 들을 수 없는 현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으면서도 곧 올지 모를 미래의 모습이라니. 끔찍하다.

아이를 갖자던 김지영 씨의 남편 정대현 씨는 자신이 다 도와줄 거라 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도와준다는 말 하지 말라고 같이 사는 집이고, 당신의 아이이기도 할 거라는 말에 나는 컥 하고 가슴이 막혔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어려운 결정을 잘 마무리해 놓고 갑자기 화를 낸 것 같아 김지영 씨는 조금 미안했다.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리는 남편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고, 정대현 씨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p.144)


동창의 결혼식에서 여럿 동창을 한꺼번에 만났다. 나에게 몇 안 남은 동창 중 한 명의 결혼식이었고꽤 많은 친구들이 서로 얽혀 있어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이 꽤 많았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찬란했던 힘든 것보단 즐겁고 신났던 기억이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한 녀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할 때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왔었으나 그 자리에서 2년 여 만에 만났을 땐, 15년 만에 만난 다른 동창들과 다르지 않게 대하고 말았다. 첫 아이가 7-8개월 정도 분리 불안증이 있을 당시 녀석 집에 찾아갔던 나는 엄마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와 시름하는 낯선 친구를 보았다. 잠깐 아이를 목욕시켜야 했고 짧은 대화 중간중간에 아이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전부고, 엄마 역시 그런 아이가 전부인 세상.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 때문에 우는 아이를 거들떠보지도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냉동식품을 잔뜩 사다 놓고 아이를 안은 채 입에 물고 있는 모습까지. 내 친구라는 말이 어색했다.

한 때 마음을 전부 내어줬던, 어디에 있든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았어도 믿고 응원하며 그리워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사라진 꽤 우울하고 허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결혼식장에 만난 녀석은 둘째 소식을 전했지만 난 대뜸 축하한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김지영 씨의 삶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환경이 너무 달라진 엄마가 된 녀석에게도 ‘언제나’ 아이 뿐이진 않을거라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 이전에 자신의 이름이 있고 자신의 친구들이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그 고충을 헤아릴 길이 없어도 친구는 친구인 것을. 김지영 씨를 만나기 전까지 난 동창의 결혼식 풍경에 대해 여럿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립스틱, 원피스, 난임과 불임, 둘째, 친구, 육아, 낯섦과 같은 단어들로 둘러싸여 있던 그날의 풍경 속에 ‘이해’란 존재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러한 마음을 전할 길 없지만 녀석에게 알고 지내 온 지난 시간을 모두 포함해 가장 미안하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대해 공감하는 척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마지막 항변이나 다름없다. 잘 알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참 쉽게 읽힌다. 신경질나고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거나 ‘맞아. 맞아’ 하며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땐 그래서 더 나아질 수는 있는 건가? 달라질 희망은 있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코가 막혀 ‘흥’하고 세게 풀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빈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김지영 씨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하는 이 소설과 같을지도 다를지도 모를 내 삶의 방향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생각해봐야한다. 라고 주절주절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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