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민 음식 - 치즈계의 쌍두마차 퐁듀와 라클렛
스위스에서 흔히 친구들끼리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너는 퐁듀가 좋아? 아님 라클렛이 좋아?”이다. 신기하게도 거의 50/50으로 퐁듀파와 라클렛파로 갈린다.
라클렛 (Raclette)은 라클렛기계에 치즈를 녹여서 감자와 같이 먹는 음식이다. 눈앞에서 치즈를 녹여 바로 먹기에 치즈 본연에 맛을 느낄 수있다. 집에서 라클렛을 준비하면 본인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치즈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재미가 있고 또 치즈, 감자, 샤큐테리, 코니숑(절인오이랑 양파) 정도만 준비하면 되기에 가족이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먹기 좋다. 라클렛치즈는 트러플 들어간 치즈부터 스모키한 맛이 나는 치즈, 레귤러 라클렛치즈, 페퍼가 들어간 치즈 등등 동네 치즈가게 (fromagerie)에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그중 스위스 발레 (Valais) 지방에서 만든 라클렛 치즈들이 가장 유명하다.
라클렛 기계는 아래로는 치즈를 넣어 녹이고 위로는 야채나 고기를 미니 바베큐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물건이다. 가끔 한국식으로 고기 구워 먹을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스위스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집에 라클렛 기계를 갖고있다고 보면 된다.
라클렛이 각자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면 퐁듀는 대신 큰 치즈냄비 하나에 같이 찍어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퐁듀는 먹으면 먹을수록 생각나는 음식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처음 치즈퐁듀를 시도한 곳은 제네바에서 퐁듀로 가장 유명하고 로컬들이 자주 간다는 Bain des Paquis에서이다.
주문을 한지 얼마 안 되니 멀찌감치 서있던 서버가 한 손에는 빵조각들이 가득 찬 바구니와 다른 한 손에는 치즈 퐁듀 냄비를 들고 와서 툭하니 내 앞에 놓았다.
나의 첫 반응은 “엥 이게 다야?”
나는 서버를 멀뚱히 쳐다보면서 “Thank you, is that all?” 하며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Yes”.
내가 치즈퐁듀 (Fondue), 말 그대로 녹인 치즈라는 이름의 음식을 시키면서 7첩 반상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마구잡이로 잘라놓은 듯한 빵조각과 보글보글 끓는 커다란 치즈냄비 앞에서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먹는 법도 아주 간단하다. 빵을 꼬치에 찍은 후 퐁듀에 집어넣었다 빼면 끝. 빵을 치즈퐁듀에 담갔다 뺄 때 빵을 냄비 안에서 잃어버리면 그 사람이 같이 간 일행들한테 술을 사야 된다는 얘기도 있다.
빵을 꼬치에 찍어 치즈퐁듀에 담갔다 꺼내서 먹는 것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심심하기도 하고 느끼하기도 해서 찬물을 마시려는 찰나,
옆에 앉은 친절한 스위스 분께서 갑자기 나를 툭툭 치면서
“저기, 퐁듀는 찬음료와 먹으면 안 돼. 치즈가 배 안에서 뭉쳐서 아플 수 있어. “ 하시는 게 아닌가.
치즈를 냄비채 먹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 많은 치즈가 배안에서 굳는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러면서 그분은 화이트 와인, 특히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소화를 돕는다며 추천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스위스 퐁듀를 먹을 때 스위스에서만 나는 샤슬라 (Chasselas)라는 화이트 와인을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이태리라는 와인 강대국 안에 낀 스위스 와인은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샤슬라 와인은 이 지역에서만 나기에 특별하고 맛도 좋다.
치즈를 녹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치즈퐁듀는 사실 생각보다 간단한 음식이 아니었다. 맥주를 베이스로 만드는 퐁듀가 있고, 화이트와인을 베이스로 만드는 퐁듀가 있으며 들어가는 치즈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마늘향이 강한 것도 있으며 심지어 색깔이 빨간 토마토 퐁듀라는 것도 있다. 스위스 치즈 퐁듀는 대부분 Le Gruyère 반 Vacherin Fribourgeois 반 두 개의 치즈를 섞어서 만든다. 예전에 프랑스 꽁테치즈로 만든 퐁듀를 먹어봤는데 역시 스위스 치즈로 만든 퐁듀를 따라오지는 못했다. 꽁떼지방에서 생산되는 꽁테치즈는 프랑스 치즈 중에서 항상 탑으로 꼽힌다고 하지만 퐁듀로는 역부족이었다.
스위스 퐁듀문화 중 특별한 점은 퐁듀를 다 먹고 나서 서버한테 냄비에 붙은 치즈를 긁어달라고 부탁해 과자처럼 먹을수 있다는것이다. 한국의 누룽지처럼 말이다. 생각보다 고소하고 바스락 씹는 맛이 괜찮다.
처음은 퐁듀의 진한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 꼬릿꼬릿한 맛에 중독이 됐는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게 된다. 라클렛파에서 점점 퐁듀파로 옮겨 가면서 몸무게도 같이 올라가는 듯하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국민음식, 치즈계의 쌍두마차인 라클렛과 퐁듀! 스위스에 오게 되면 둘 다 트라이해 보고 어느 것이 더 입맛에 맞는지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