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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Aug 22. 2023

스위스 타임에 관하여

얄짤없는 정시 출발

내가 ‘스위스 타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MBA 오리엔테이션이었다.


클래스 메이트들의 이름을 외울 겨를도 없이 임의로 그룹을 짜주고 스파게티면과 마시멜로 이용해서 가장 높이 탑을 쌓는 팀이 이기는 게임을 했다. 특히 이 팀빌딩 게임은 그 당시 굉장히 유행했었는데 그 이유가 MBA 학생들보다 유치원생들이 더 높게 쌓았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유치원생의 창의력이 MBA 학생들을 눌렀다 하는 류의 글이었다.  

얼핏 봤던 기사에서 높이 쌓는 방법을 읽었던 거 같아서 머리를 짜내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데 스위스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딱 20분 시간을 줄게요. 스위스타임이에요.”


“스위스 타임? “


코리안 타임은 들어봤어도 스위스 타임은 못 들어본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클래스메이트 중에 아무도 스위스 사람이 없었으므로 다들 대충 알아듣는 척만 하는 것 같았다.


스위스 타임이란 정확한 스위스 시계처럼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말한다 (Puctuality). 즉, 만나기로 약속한 시에 만나는 것 - 더 일찍, 더 늦게도 아닌 정시에 말이다.  교수님 말처럼 20분을 주기로 했으면 정확히 딱 20분 후에는 게임이 끝인 것이다.




스위스에 살면서 스위스 타임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다. 특히 스위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그렇다.

정말 일분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으며 정시에 딱 출발한다. 정확해서 좋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도 버스가 8시 28분에 오기로 되어있는데 하필 신호등에 걸려서 30초 차이로 마주편에 도착한 버스가 눈앞에서 떠나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심지어 빨간불 신호에 걸려서 출발하지 못하는 버스도 한번 열었다가 닫힌 문은 열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아님 버스 드라이버에게 눈으로 ‘제발 한 번만 열어줘’  애원하는 신호를 보내봐도 소용없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기차도 마찬가지다. 1분의 마진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스위스에서 기차여행을 할 때는 한 기차를 놓치면 연쇄적으로 다음 연결 기차도 놓치기에 최대한 10분 전에는 플랫폼에 도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운다. 기차가 일찍 도착하는 적은 있어도 늦게 출발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다. 프랑스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면 땡큐고 이태리 기차는 그날 제대로 출발하기만 해도 감사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스위스는 오히려 1분이라도 늦게 출발해 주면 땡큐다. 스위스에서는 1분이라도 연착이 되면 스위스 기차앱으로 알림 메시지가 온다. 하지만 정시에 출발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물다. 5년 넘게 여기 살면서 기차가 연착된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다.


제네바 꼬르나방 기차역의 풍경 - 출발시간이 18:47인 프랑스 안씨행 기차


스위스 사람들의 정확한 시간관념 때문에 시계가 유명해진 것인지 아님 시계의 나라이기 때문에 스위스인들의 시간관념이 정확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전자가 더 맞는 거 같다.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스위스인에게 시간을 지키는 것의 의미는 “ 나는 당신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더 나아가서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을 엄수하는 것에 대해서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유연하지 못하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간을 잘 지키는 문화가 스위스라는 나라에  더 신뢰 불러오는 듯하다. 결국 시간이야말로 서로 간의 약속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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