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유무의 차이 - 북미 vs 유럽
2023년도의 여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냥 집에서 선풍기 앞에서만 널브러져야만 살 수 있는 37도를 육박하는 더위가 우선 한번 지나갔다. 4월부터 비가 이례적으로 많이 온 이번 제네바의 여름은 작년보다는 왠지 안 더울 거 같다고 혼자만의 예측을 했는데 7월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37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쉴 새 없이 틀어대는 캐나다에서 생활한 나로서는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6년째 제네바 살이로 접어드니 집에 에어컨 없는 건 이미 체념하고 최대한 무더위를 견뎌내자는 서바이벌 모드로 바뀐다. 내가 살던 토론토의 여름은 지금은 온도가 많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5-6년 전만 해도 많이 올라가도 33도 그리고 한국처럼 습한 여름이 아니고 건조한 더위라서 나무밑에만 들어가도 시원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서 여름에는 항상 카디건을 가지고 다녔고 여름감기에 안 걸린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밖의 온도와 실내 온도의 차이가 너무 나서 몸이 빨리 적응 못하고 항상 콧물 흘리고 회사 안에서 스카프를 둘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에어컨 문화가 북미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스위스에서 생활하면서 굳이 장점을 하나 찾자면 여기온 후 한 번도 에어컨 때문에 여름 감기를 걸린 적은 없없다는 점이다. 대신 에어컨이 없는 건물에서 일하다가 너무 덥고 지쳐서 나도 모르게 졸은 적은 몇 번 있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건물 중에 오래전에 지어진 몇몇 건물들은 에어컨이 없는데 내가 처음 입사해서 일했던 곳도 역시나 그곳 중 한 곳이었다. 상상이 갈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건물에서는 여름에 블라인드를 다 내려서 햇볕이 최대한 안 들어오게 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전등을 켜고 작은 선풍기 하나를 옆에 두고 일한다. 첫해 여름은 정말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일하는 유엔건물에는 에어컨이 있다. 물론 아주 더울 때 아니면 에어컨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6월 말에 친구들과 라벤더를 구경하러 프로방스에 놀러 갔는데 거기서 묵었던 숙소주인아주머니께서 흥미로운 얘기를 해주셨다. 프랑스 남부는 워낙 날씨가 더우니 집집마다 에어컨이 대부분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방마다 에어컨이 있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잠을 잘 잤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미국에서 온 커플 얘기를 해주셨다. 자신들이 묵고 있는 방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춥다면서 주인아주머니께 담요를 더 달라고 했다는 그런 웃지 못할 얘기였다. 너무 어려서부터 에어컨 문화에 너무 익숙해 있었던 까닭인지 안타깝게도 에어컨을 끄던지 온도를 올리던지 하는 옵션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제네바에 살면서 에어컨 없이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를 아이러니하게 배웠고, 여름 폭염 때문에 하이킹하는 게 어려워지고, 급격히 늘어난 화재와 가뭄으로 인해서 물부족을 겪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겨울에는 눈이 안 와서 스키시즌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기후변화에 더욱더 민감하게 되는 거 같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에서의 나의 행동도 하나씩 더 생각해 보게 된다. 클린에너지,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뒤에서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러면 유러피안들은 어떻게 더운 여름을 보낼까?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우선 뜨거운 햇볕으로 집안 온도 올라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블라인드 혹은 커튼으로 창문을 다 가린다. 그리고 온도가 떨어진 밤에는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서 집안의 온도를 내린다.
한낮에는 강가나 호숫가 옆에 가서 수영을 하고 나무 밑에서 쉬면서 더위를 피한다.
집에 수영장이 있는 사람들은 낮에 짧게 수영을 하면서 열기를 식힌다.
다른 방법은 쇼핑몰은 에어컨이 나오니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또는 고도가 높은 산이나 숲 속에 가서 햇볕을 피한다.
아니면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서 수영하고 해변 파라솔밑에서 쉬면서 더위를 식힌다. 최근에는 아예 동네 공원에 하루종일 나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그냥 나무밑에서 쉬는 가족들을 더 자주 본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프랑스 프로방스에 사시는데 이곳은 여름에는 거의 38-39도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프로방스에 있는 대부분 집은 에어컨과 수영장이 있다. 여기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보면 한낮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영장풀에서 수영을 하고 수영장 옆에서 낮잠을 자던지 그냥 누워서 쉰다. 집안의 에어컨은 정말 필요할 때 아니면 켜지 않는다. 그리고 수영장 물은 만약 산불 화재가 날 경우 이용되기도 하는데 소방관들이 헬리콥터로 수영장있는 집들의 물을 옮겨 진압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프로방스의 물부족 현상과 화재, 그로 이한 변화는 따로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미국에서 사는 여동생이 제네바에 한번 6월에 놀러 왔는데 선풍기도 없는 (올해는 결국 하나 장만했다)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엄청 괴로워한 기억이 있다. 나보고 계속 언니는 어떻게 이렇게 살아? 하는데 나의 답은 어쩔 수 없지 찬물 계속 마시면서 그냥 내가 적응해서 사는 거지였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에는 딱히 뾰족한 수라고 할 건 없는 거 같다. 최대한 무더위를 피하고 이 더위를 즐기는 방법을 찾고 체력 유지를 하면서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말이다. 다른 모든 것처럼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이 더위 또한 지나가기 마련이다.
2023년 여름 벌써 7월 초 한 번의 폭염이 왔는데 앞으로 몇 번 더 올지 모르는 더위 그리고 매년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거 같지 않는 여름,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더 있나 싶다. 그리고 슬기롭게 이 무더위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도 말이다.
**윗사진은 남자친구 부모님 댁 수영장에서 로제를 마시면서 휴식을 만끽하던 사진 - 수영 못하는 나에게는 시원한 로제와인과 책 그리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