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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y 27. 2018

진정한 사과

호주 멜버른 차일드케어 이야기

웬만해서는 아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일 끝나고까지 지속되지 않는 편인데 이주 전에는 고민의 무게가 산더미처럼 불어난 사건이 있었다.


한 아이가 고의로 나의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때린 게 얼마나 아플까 싶지만 매우 아팠고 전후 상황은 이러했다.




이번 연도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비교적 늦게 킨더가든(유치원)에 들어온 아이 H가 있었다. 포르투갈 언어를 쓰는 아이로 처음 유치원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에는 에듀케이터(교사)들과 영어로 소통하는데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 센터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선생님이 있고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서로 약간 비슷하기에 심오한 대화를 나눠야 할 때에는 그 아이는 그 선생님에게로 다가가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H가 너무 가까이 있는 바람에 그 아이를 칠뻔했다. 그 아이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아이를 밀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그 아이를 떼어놓고 "무슨 일이 있었냐,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건 남을 밀면 안된다"라고 얘기하자 도망가서는 테이블에 있는 물건을 다 엎어놓기 시작했다. 한 선생님이 달려가 그 아이의 팔을 붙잡고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물리적인 힘을 가했더니 그 선생님 얼굴에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좀 진정이 되었나 싶어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풀어주자 다시 저 멀리로 뛰어가더니 다른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상황이 무마되고 나서 그 아이의 부모가 도착했고, 스페인어를 하는 선생님이 부모와 대화를 나눴다. 원장까지 나서서 아주 큰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우리는 그 아이가 "그네에 치일 뻔해서 놀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영어로 자신의 놀란 감정을 설명하지 못해 난폭한 행동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몇 주에 걸쳐 한 번씩 이런 큰 소동이 일어났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언어장벽의 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는 현재 다른 아이들, 교사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만큼 영어가 향상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났다. 


그 가끔 일어난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 날, H 그 아이는 장난감 덤프트럭을 울타리에 던지기 시작했다. 전후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을 말려야만 했다. 울타리에 맞아 나가떨어진 덤프트럭이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떨어져 그 아이들이 나에게 불만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를 잡고 덤프트럭은 던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무언가가 던지고 싶으면 공을 던지라고.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NO!"


약간 당황했다. 무엇에 대한 노우란 말이지? 다시 물었다. 공을 던지기 싫다고? 이건 던지는 게 아니라니까? 너가 이걸 던지니깐 다른 애들이 다치잖니.


"YES"


덤프트럭을 던질 거라는 예스에 나는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덤프트럭을 그 아이에게 뺏으려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필사적으로 나를 저지했고 눈빛이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 이러다가 또 사고 나겠구나' 싶어서 다른 묘책을 생각해냈다.


"그럼 이 덤프트럭이 고장 난 거 같은데 본체를 찾아서 너가 좀 고쳐줄래?"라고 말하며 그 아이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렸다. 그러자 그 아이의 눈은 다시 "정상"으로 바뀌었고, 좋다고 딴 데로 뛰어갔다. 




몇 분 뒤, 나는 그 아이가 장난감 큰 배에 올라가서 다시 덤프트럭을 던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더 이상의 경고나 회유책은 필요치 않았고, 나는 바로 달려가 덤프트럭을 빼앗았다. 그러자 그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손으로 나의 얼굴을 내리쳤다. 


왓더..?


누구에게 얼굴을 맞아본 적이 없는 나인데 네 살 아이에게 맞다니.. 나도 이미 이성의 끈이 풀린지라 그 아이의 팔을 집어 들고 배에서 끌어내렸다. 그 아이는 발버둥 치며 소리 질렀다.


"나 얘 감당 못하겠으니깐 너희가 좀 와서 어떻게 좀 해줄래?" 다른 선생님의 도움을 청했다.


다른 선생님은 그 아이가 더 이상의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고 (이 아이는 힘이 매우 세다...) 결국 완벽하게 진정되지는 못했다. 이럴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을 시전했고 그것은 이 아이는 놔둔 채 다른 아이들을 이 아이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아이의 아빠가 도착했다.


대부분 유치원에서 아이의 하루를 브리핑할 때에는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 행여나 부정적인 일에 대해 다뤄야 할 때에는 "샌드위치 화법(긍정-부정-긍정의 순으로 나열하는 호주식의 대화 방법)"을 써야 하지만 이 날은 이것저것 생각해낼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아빠를 보자 바로 달려가서 안겼고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 H는 방금까지만 해도 좋은 날을 보냈는데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어."


아빠는 아이를 보며 포르투갈어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는 아빠의 질문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얼굴을 아빠의 품에 파묻었다. 


나는 사건의 전후를 설명했고, 아이의 아빠는 영어 반 포르투갈어 반을 섞어가며 아이에게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는 안돼.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너가 이 상황을 고쳐야 해." 


아이는 사과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지금 우리가 애한테 사과를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나중에 얘 자신이 준비가 되었을 때 나한테 와서 대화를 하라고 집에 가서 얘기해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이 날, 아이의 아빠에게서 돌아온 사과는 없었다.)




어떻게 자기 애가 선생을 때렸다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지?


어찌어찌 일단락 지었지만 완벽하게 풀리지 않은 사건에 대해 괜한 쪽으로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그다음 날에 출근해서는 그 자리에 없었던 선생님들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고 킨더반 선생님에게는 그 아이에 대한 Behaviour Management Plan(행동 관리 지도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건의했다.


[킨더반에서 있었던, 전해 들은 일]
아침에 아이가 등원했고, 아이의 아빠는 킨더 선생님에게 전날 밤 심오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를 나에게 데려가 사과를 시키겠다고 했다.
사과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진정한 사과를 건네는 것이 아니며, 안아주고 볼에 뽀뽀까지 하며 진심으로 사과를 건네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뒤에 숨어 "아직 아니야, 나 지금은 창피해."라고 했다. 킨더 선생님은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사과를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며 나중에 나를 밖에서 만나면 그때 기회를 만들어보겠다고 설명했다. 


그 날 오후, 나는 그 아이를 마당에서 만났다. 애프터눈티를 먹고 있던 아이는 날 쳐다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사과를 우물우물 씹으며 어정쩡하게 행동했다.


킨더 선생님은 "입에 있는 거 다 씹고 애나한테 가서 얘기해."라고 했다. 


재빠르게 사과를 삼키고는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Sorry(미안해)"


"왜?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모른척하며 물었다.


"내가 너 아프게 했잖아. 미안해."


그리고선 그 아이는 나를 안으며 볼에 뽀뽀를 했다.




전날 밤 화가 부글부글 치밀어 잠도 제대로 못 잔 게 사르르 풀렸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하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남을 다치게 해서는 안돼."




그 날 오후 퇴근길에 아이의 부모를 마주쳤다. 어떻게 됐냐고 아빠가 물었고, 아이가 정식으로 사과했다고 말하자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며 다행이라며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했다. 


아이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아이가 상황을 풀기 전까지 지켜보고 조언해주고, 상황이 개선되자 부모로서의 사과를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도 그렇게 새로움과 다름, 그리고 진정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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