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는 "조심해"
글쓴이는 현재 호주의 멜버른에 위치한 한 차일드케어(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차일드케어(유치원) 교사가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일까?
하루 근무시간, 여덟 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계속해서 떠들어야 하는 직업.
아이들에게는 교사로서의 칭찬과 격려, 경고와 회유, 그리고 친구로서의 장난과 유머를 공유하며,
동료들과는 정보 교환과 하루 일과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학부모들과는 등원/하원 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루에도 너무나도 많은 말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무의식 중으로 많이 쓰는 말이 "Be careful!(조심해)" 임을 몇 달 전에 깨닫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스텝미팅.
원장에게서부터 각 반에 한 장씩 배부된 종이가 있었다.
"조심해" 대신 어떤 말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의 포스터였다.
속으로 뜨끔했다. 그리곤 회의 때 실토했다.
'이거 나 때문에 준비한 거 아니지? 조심해라는 말은 내가 진짜 많이 쓰는 말인데..'
다행히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많이 쓰는 말이 "조심해"였고 원장은 우리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이 포스터를 공유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심하라는 말이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길래? 왜 원장은 우리에게 간결하고 명료한 두 마디의 단어 "Be careful(조심해)" 대신 구구절절 설명해볼까요~ 하는 말이 잔뜩 적힌 저 포스터를 가지고 온 것일까?
대답은 이러했다.
아이들은 조심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
어른의 입장,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위험해 보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 말 자체로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논지였다.
그리고 덧붙여 조심해!라는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은
1. 혼란스러운 눈으로 어른을 쳐다보거나(거기 무서워할 것이 뭐가 있었는데요?)
2. 그 말을 무시해 버리거나(무섭지 않거든요?)
3. 울기 시작할 것(안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하나 봐!!!)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일하는 센터의 에듀케이터(교사)들은 어른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운 "조심해"라는 말 대신 아이들에게 상황을 풀어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바로 앞에 어린 아기가 있는데 가로질러 뛰어가려는 킨더반 아이에게
"너 밑에 애기 보이니? 네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잘 살펴보고 가렴."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뛰는 아이에게
"네 앞에 있는 장애물이 보이니? 천천히 가도록 해봐"
미끄럼틀을 타려고 올라가는 도중에 미끄러질 뻔 한 아이에게
"봉을 꼭 잡아!!!"
물론 마음대로 쉽게 되지는 않는다.
습관이라는 게 한 번에 고쳐질 수 없는 고질병 같은 것이라 나도 모르게 위급한 상황을 목격하면 "조심해!!!!"하고 소리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 잘못된 말이 아니라 그 말로만은 의미가 없는, 불충분한 말이기 때문에 그 후에 부연설명을 하면 된다.
"조심해 라는 말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 말 자체만을 쓰는 것을 조심해!"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http://www.instagram.com/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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