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 차일드케어 이야기
너무 좋은 옷은 피하는 걸 추천드려요.
이는 내가 일하는 차일드케어(유치원) 오리엔테이션 때 새로운 학부모에게 하는 말 중 하나이다.
나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한 차일드케어의 0-2세 반에서 일하고 있다.
새로 차일드케어에 등록을 한 학부모들과는 처음 한 시간의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때 나는 항상 이 말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센터에 올 때는 좋은 옷보다는.. 좀 후줄근한 걸로 준비해주시는 게 좋아요."
센터 오픈 7시 반부터 클로징 6시까지 아이들은 대략 70퍼센트의 시간을 밖에서 보낸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거나 40도가 넘는 뜨거운 햇살 아래 자외선 수치가 엄청나게 높을 때를 제외하고는)
특히 우리 반(0-2세) 아이들은 나이가 어린 만큼 수면 시간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방 안에서 자는 아이들을 위해 자지 않는 아이들은 가능하면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우리는..
이러고 논다.
아무 데나 철퍼덕 앉는 건 기본,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진흙밭에서 진흙 퍼다 날라서 진흙 케이크를 만들며,
모래사장에서는 모래도 맛보고 삽도 입에 넣어보고,
새로 이가 나는 우리 어린아이들은 잇몸이 간지럽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사방에 깔린 tanbark(나무껍질)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댄다.
밥 먹을 땐 물론 우리 반 아이들은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턱받이나 덧옷(smock)을 입지만 self-feeding(스스로 먹기)을 격려하기 때문에 옷이 더러워지는 건 아주 식은 죽 먹기이다. (또한 배변 훈련을 하는 2세 이상의 아이들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실수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이 후줄근한 옷을 추천한다.)
물론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러 왔을 때 꼬질꼬질 더러워진 얼굴과 옷을 보고 마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꼬질꼬질해진 손과 얼굴은 씻으면 되는 것이고 더러워진 옷은 빨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러워진 만큼 그 날 하루도 재밌게 놀았다는 뜻으로 생각해 흐뭇해하는 부모들도 꽤 많다.
매일매일 자연과 하나 되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주위의 것들을 자유롭게 맘껏 느끼며 놀 수 있는 호주의 아이들이 나는 참 부럽다.
다 커서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나 어릴 적 꼬꼬마 시절에 나는 아주 깔끔을 떠는 아이 었다고 한다. 이 깔끔 순이 아이는 밖에서 아장아장 걷다가 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면 엉엉 울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어디가 다쳐서 아파서가 아니라.. 더러운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다행히도, 아니면 슬프게도, 나도 일터에서만큼은 아이들과 같이 꼬질꼬질해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worm farm(벌레집)의 흙을 파헤쳐서 애벌레를 찾아낸 뒤 아이들과 함께 관찰하거나, 뒷마당에 떨어진 솔방울이나 꽃을 주워 놀이 장난감으로 사용하곤 한다.
이것이 꼬질꼬질하지만 행복한, 나의 호주 유치원 교사로서의 삶이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www.instagram.com/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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