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 차일드케어 이야기
글쓴이는 현재 호주의 멜버른에 위치한 한 차일드케어(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새로운 아이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아이의 엄마는 매우 밝은 성격의 여성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 궁금한 점을 나에게 말해줬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이 말이었다.
"내 딸은 장난감 같이 생기지 않은 건 다 좋아해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고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 센터에는 장난감 같이 생기지 않은 장난감이 수두룩하니까요."
이렇게 말함과 동시에 우리는 인생 처음 차일드케어/어린이집에 입성한, 호기심에 가득해 신나 하는 18개월짜리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전 글 중 호주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교육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밑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melbeducatorb/10
아이들의 놀이에도 당연히 지속가능성은 적용되는데, "가장 장난감 같지 않은 장난감"은 지속가능성의 교육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지름길이 된다. 집에 아이가 있는 가정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그 많은 장난감을 제쳐두고 주방으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헤집으며 장난감이 아닌 것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놀곤 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들은 부모들, 혹은 자신보다 큰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이런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라고 이름 주어진 그 장난감이 흥미로울까?
물론 아이들은 장난감 같이 생긴 장난감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침에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울고불고 슬퍼하는 아이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쥐어지면 마법처럼 조용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장난감 같이 생기지 않은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줬을 때 생겨나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이 사진은 앞의 글에서 소개된 리버스 아트 트럭(Reverse Art Truck)이라는 곳에서 동료 선생님이 가져온 종이 판지 실린더 놀이 섹션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엔 '이걸 도대체 뭐 하라고 갖다 놓은 것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놀이 코너는 이 달 놀이 코너 중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놀면 된다고 설명해주기도 전에 알아서 실린더를 쌓고, 실린더 위에 링을 꽂았으며. 실린더 한쪽에 입을 대고 "아-" 소리를 내며 반대쪽의 구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재미있어했다.
뒷마당에는 실제로 주방에서 쓰다가 이제는 장난감이 된 수많은 프라이팬, 냄비, 컵케익 틀 등등이 즐비하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모래 요리, 나무껍질 요리, 진흙 요리를 즐겨하며 이 주방 용품들은 악기가 되기도 한다.
사진과 같은 식으로(이렇게 멋들어지게 준비하게 된다면 완벽하겠지만 그냥 끈으로 걸어만 둬도 충분하다.) 뒷마당 벽에 주방 용품을 걸어두면 이는 훌륭한 악기로 둔갑한다. 아이들은 뒷마당에서 나무 가지(혹은 모래 삽)를 주워와 신나게 냄비를 쳐대며 즐거워한다.
조금 더 성숙한 세 살에서 다섯 살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열린 결말의 장난감이 제공된다면 그들의 놀이는 더욱 풍요롭게 발전될 수 있다. 열린 결말의 놀이(open-ended play)가 창의적인 놀이(creative play)가 되고 또 그것이 역할놀이(dramatic play)로 까지 번진다.
설사 아이들이 어른들의 기준으로 정해진 장난감의 용도를 잘못 파악하고 놀고 있을지라도 전혀 제지가 필요하지 않다. 이러면 어떠하리오 저러면 어떠하리! 맘껏 풀어주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가이드만 해주는 것이 교사의 일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www.instagram.com/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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