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번에서 차일드케어 교사로 일을 한지 오 년 차가되던 이번 년도. 결국 번아웃을 직방으로 맞고 유치원과의 작별을 고했다.
이직이 아닌 사직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말 그대로 다음 직장을 구하지 않은 채 그냥 그만뒀다.
짧으면 이주, 길면 두 달로 생각한 휴식 시간. 첫 1-2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신나게 퍼 자고 놀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진작 알았지만 실제로 행하니 더 행복했다.
전 직장이었던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함을 자주 느끼고 삶의 원동력이 없는 느낌이 가끔 들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게 아닌가 살짝 불안해 일을 그만두자마자 바로 피검사를 해봤다. 결과는 정상.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슬펐다.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 몸이 서서히 망가져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았던 오 년이라는 시간은 가치 있었고 보람됐으며 많이 배웠지만 다시는 못하겠다 싶었다. 육체적인 스트레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일 곳곳에서 불쑥불쑥 찾아왔고 사직하기 바로 전에는 너무나도 부정적으로 변해버린 나를 발견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다른 직장들과는 다르게 타인의 감정들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 사이에서 항상 긍정적임과 밝음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감정 소모가 심했다. 매니지먼트는 선생들을 다독이며 같이 이끌어가는 리더가 아닌 "이거 해, 내가 하랬으니까"라는 식의 독재자였다. 일 년만 버티고 그만 두자 하고 하루하루 카운트다운을 하며 집에 와서는 불평불만 볼멘소리만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하루는 이렇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일한다고 상상해봐. 할 수 있겠어?" 그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진절머리가 나고 짜증이 나고 빠른 시일 내로 작별을 고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을 할애했던 차일드케어와의 작별을 고하고 나는
다음 직장은 돈이 적어도 스트레스가 적은 곳으로 택해야지 마음먹었다.
다음 직장은 아이들이랑은 관련되지 않은 곳에서 일해야지 마음먹었다.
다음 직장은 나의 지식과 전문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곳에서 일해야지 마음먹었다.
일을 쉰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나는 짧게나마 재충전을 했고 마음먹은 세 가지 다짐 중에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직장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