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똑디 차려야 하는 호주의 산전 진료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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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초음파와 피검사를 한 뒤 임신 사실을 확실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이주 동안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왔다. 12월에 잡아놓았던 1월 예약, 인공수정을 상담하기 위한 예약이었지만 임신에 성공했으니 호주에서의 첫 초음파 예약으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신이 날 수가! 호주는 한국처럼 내가 원할 때마다 초음파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부터 할 수 있다고 해서 임신 6주 차에 예약되어 있던 것을 7주 차로 미뤄야 했다. 7주 차 초음파를 하러 가기 전에는 GP(일반의)와의 예약을 잡았고 산모에게 이상이 없는지 피검사,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호주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1st trimester(임신 초기)까지는 아기를 낳을 병원에 바로 진료를 하러 가지 않고 일반의와만 진료를 본다. 일반의의 referral(소견서)를 토대로 내가 알아서 초음파를 예약해야 했다. 초음파는 의료보험이 살짝 적용되긴 하지만 그래도 공공병원에서 하는 초음파가 아닌 이상 한 번에 200불 정도가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것도 아기와 산모에게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하고 싶을 때마다 가서 아기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12주와 20주 딱 두 번만 가능하다.(뭐 이만한 돈을 계속 내고도 주수마다 초음파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하긴 해주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겠지) 초음파 이외에도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NIPT(기형아 산전 검사)도 일반의의 소견서를 통해 진행했고(이것도 한 300불 넘었던 것으로 기억) 일반의가 준 출산 병원 선택지 안에서 한 군데를 선택했다. 일반의가 나의 기본 정보를 그 병원으로 보냈고 집으로 병원에서 축하 메시지가 담긴 편지 한 통이 날아왔고 거기엔 임신 중기부터 말기까지의 대략적인 스케줄이 적혀있었다.
호주에서의 첫 초음파는 나의 나팔관을 제거해 준 부인과 전문의에게서 진행됐다. 중년의 아저씨 선생님인데 돌려 말하기 없이 직설적으로 속 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이 우리 스타일이라 믿고 수술을 했던 건데 임신까지 성공했으니 여기서 더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전에 갔던 예약들은 항상 걱정과 불안에 덜덜 떨며 대기했었는데 이번 예약은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겼던 대기 시간이었달까. 잠깐의 기다림 끝에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의사 선생님이 건넨 첫 한마디, Congratulations!(축하해!) 우리 부부와 의사 선생님 셋 모두의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질 초음파를 진행했다. 아무리 임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또 걱정이 되는 부분이 조기유산이었는데 아기 심장소리를 들려주고 얼마큼 컸는지 초음파로 보여주신 뒤 의사 선생님이 건넨 말, "지금까지 이 정도로 잘 자랐으면 유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실력과 권위를 겸비한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니 그때까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불안감이 삭 사그라들었다.
감사하게도 7주 차 초음파, 피검사, 소변검사, 기형아 검사, 12주 차 초음파 모두 정상이었다.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임신 초기의 검사 모든 것들이 정상이어서 한숨 돌렸고 입덧도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나의 임신 항해 여정이 뿌듯하게 여겨졌다. 20주 차 초음파를 하러 가기 전까지는.
12주 차 초음파를 하러 갔던 곳과 똑같은 곳으로 잡은 20주 차 초음파 예약, 초음파 실에 들어가자마자 2달 전에 봤던 초음파 검사자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스피린 잘 복용하고 있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잘 못 알아들은 건가 감도 안 잡혔기에 당황한 얼굴로 대답도 못한 채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남편도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내가 초음파 검사자에게 다시 무슨 아스피린이냐고 묻자, "너 임신중독증 의심된다고 내가 12주 차 검사결과지에 썼는데 병원에서 암말 안 했어?"라고 되묻는 그녀. 나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지금 내 정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맞냐며 차트에 신상정보를 다시 체크해 보라고 했다. 내 차트가 맞았다. 너무 뜬금없는 임신중독증, 아스피린 복용 여부, 나에게 하는 말이 맞았다. 일단 초음파를 진행했고 초음파 검사자는 "아스피린 안 먹었어도 됐었네, 아기 잘 크고 있어."라고 말했다. 아무리 매일 기계적으로 하는 일이라도 한 산모에게는 엄청난 걱정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그녀의 말 때문에 나는 초음파를 하는 내내 집중을 하지 못했고 당연하게도 혼란과 걱정의 쓰나미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초음파를 끝내고 접수처에 가서 12주 차에 받았던 결과지 복사본을 요청했다. 초음파 검사자는 무슨 근거로 내가 임신중독증이 의심된다고 한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지만 가족력, 피검사를 토대로(가족력이 있지도 않으며 이 사람은 내 피검사 결과를 받은 적도 없다.) 12주 검사 결과지에 임신중독증이라 적어놨고 20주 검사 결과지에도 좀 더 자세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적어놨다. 임신중독증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병인데 왜 병원은 12주 차 결과지를 보고도 나에게 아무 문제없는 저위험군이라 했는가, 너무 화가 나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으나 그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 빼고 다 너무 바쁜지 계속 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만 하고 내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병원 진료는 몇 주 후에 잡아있던 터에 불안하고 화나는 마음으로 급한 대로 일반의에게 다시 찾아갔고 일반의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아스피린을 복용하라고 얘기했다.
임신 중기부터 시작되는 산모의 병원 진료, 저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개 의사와의 진료보다는 midwife(조산사(?))와의 체크업이 이루어진다. 나도 한때는 저위험군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미드와이프와의 약속이 잡혀있었더란다. 하지만 임신중독증 의심이 된다는 초음파 결과지가 나의 발목을 잡았고 나는 다시 한번 병원에 전화를 걸어 성질을 한 바가지 냈다. 더 이상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바꿔줄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일처리를 한 뒤 나한테는 결과만 얘기해 달라며... 아니나 다를까 좀 세게 나가면 원하는 반응, 대답이 더 빨리 온다. 한순간에 저위험군에서 고위험군 산모가 되었기 때문에 미드와이프와의 약속은 의사와의 진료로 바뀌었고 임신 기간 내내 임신중독증 여부는 물음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