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3,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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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왼쪽 나팔관 제거술을 한 2022년 8월, 산부인과 전문의가 제안한 자연임신을 시도해 볼 시간은 4개월이었다. 시간제한을 주지 않고 무작정 계속 시도해 보라고만 했으면 더 괜찮았을까? 시간제한을 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수술 후의 4개월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다. 생리, 배란일을 체크하기 위해 수시로 앱을 확인하고, 배란일이 다가오면 시작되는 매일매일의 배란 테스트기 지옥, 뭔가 숙제처럼 해야 하는 사랑 나누기, 생리 예정일이 다가오면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어 조급하게 꺼내보는 임신 테스트기. 이걸 반복, 반복, 또 반복.
나팔관 제거술 이전, 2021년 말부터 계속해서 이어졌던 한 달간의 루틴이었기 때문에 나는 심적으로 지쳐가고 있었고 수술을 했으니 이제 전보다는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매달 실패할 때마다 너무 절망스러웠다. 남들은 쉽게 임신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안되지, 남들은 사고로 애가 생겼다고 칭얼대는데 너무 얄밉다, 원하면 안 되고 원치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아기라는 존재인가, 내가 진정 아기를 원하는 건지 생기지 않으니 갖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 혼란과 우울, 자책과 비교 등등 너무나도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휩쓸었던 한 해 2022년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길 것도 안 생길 것이라는 걸 알지만 이 중압감을 내려놓기란 너무 어려웠고 힘들었다. 남편도 물론 실망이 컸겠지만 옆에서 열 배로 슬픔에 길길이 뛰는 나를 보고는 조용히 응원만 해줬다.
9월 실패.
10월 실패.
취미생활 따로 하나 없이 일, 집, 일, 집 생활을 반복하며 머릿속으로는 아이가 안 생기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너무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는 남편이 운동을 끊어볼 것을 추천했다. 동료의 아내가 나에게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엔 운동을 하는 것이 아주 좋다고 했다며. 그렇게 해서 시작한 집 앞 수영장에서의 아쿠아줌바. 직장과 집에서 한 번을 움직이지 않던 몸을 설렁설렁하게라도 흔들어주니 기분이 업되는 게 활력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그분이 해주신 또 다른 조언이 있었는데 술도 좀 마시면서 저녁에는 몸의 긴장을 풀어주라는 것이었다. 아기를 갖겠다고 마음먹은 그때부터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가 이때부터 저녁에 와인 한 잔씩을 마시며 긴장의 끈을 잠시나마 놓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동안에 남편은 나에게 소금램프를 선물해 줬고 명상 음악을 틀어주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줬다.
11월 실패.
12월은 3년 만에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달이었는데 이 달까지 배란일을 따지며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를 놓치기는 조금 아까운 심정. 큰 결심을 했다면 일단 배란 테스트기는 넣어뒀다. 하지만 일 년 넘게 배란 테스트기를 해본 짬바가 있어서 내 배란일이 언제 정도인지는 감으로 아는 상태라는 것. 그렇게 스스로 뇌에게 주문을 걸었다. '12월은 제낄 거야. 안 돼도 상관없어. 그래도 제끼면 아까우니까 한 번만 시도해 볼까?' 그렇게 12월에는 딱 한 번 시도했고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여행을 떠났다. 사실 떠나기 전에 1월 중순에 산부인과 전문의와의 진료도 예약해 뒀는데 그 이유는 이번에도 안될 테니 1월부터는 시험관을 준비하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반주 정도로 술을 살짝살짝 자시다가 하루는 속옷에 피가 비치는 걸 보고 또 물 건너갔구나 싶은 씁쓸한 마음 반, 후련한 마음 반에 남편과 소맥을 달려달려 달렸더란다. 술에 한껏 업이 되어 호텔로 돌아가는 그날 밤엔 눈이 왔었다.
다음날. 엥? 뭐지? 원래대로라면 그다음 날에도 갈색피가 비쳐야 되는데 속옷에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바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설레발을 떨었다간 후폭풍으로 몰려오는 실망감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 거 같아서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다음 날에도 감감무소식인 생리. 분명히 갈색피가 비쳤었는데 무슨 일인거지. 동생에게 말을 꺼냈더니 착상혈 같다고 말했다. 진짜 기대하기 싫은데 기대가 되는 이 상황.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샀고 엄마 집에 도착해서 테스트기를 해봤더니 희미하게 정말 희미하게 비치는 두 줄. 너무 희미해서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어서 하루만 더 기다린 후에 다시 해보기로 했다. 그다음 날은 2023년 새해였고 그렇게 우리는 기적적으로 새 생명이 내 몸에 찾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새해에 선물처럼 다가온 우리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