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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빙 Dec 26. 2023

[사색] 동물병원에서의 CPR

수의대생으로 동물병원에서 실습하다 보면 한 달에 1~2번 혹은 그 이상으로 CPR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CPR이란 Capillary-Pulmonary Resucication으로 즉,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응급 상황이다. 대부분 상태가 안 좋은 상황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며 CPR이 발생한다. 이때 수의사는 기관 삽관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심박과 호흡수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많은 경우 환자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다.

처음 CPR상황을 목격했을 때 굉장히 당황하고 놀랐다. 수의사 쌤들과 테크니션 쌤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처치를 했으나 안타깝게 환자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동물병원으로 면회 오는 보호자들은 많은 경우 눈물을 흘린다. 특히 대학교 부설 병원은 간단한 병보다는 어려운 케이스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생물들에게는 정해진 명이 있기에 언젠가 떠난다.


동물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우리에게는 환자이지만 보호자에게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릴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CPR이 발생하고 집으로 돌아온 하루는 침울하고 착잡한 마음이 든다. 물론 우리 눈에도 너무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지만 가족은 아니다. 그럼에도 생명체의 죽음이라는 것은 슬프다. 더욱이 남겨진 이들에게 슬픔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나는 2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삶에 이별이라 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이별이란 어떤 것인지. 우리 집도 반려견이 있다. 이제 11살이 된 노령으로 접어든 말티즈. 내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왔다. 우리보다 짧은 생을 살다가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 친구와의 이별이 두렵다.


한동안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네가 떠나간다면 나는 어떨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슬퍼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어떤 말을 들은 계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유난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반려 고양이를 정성스레 키우고 있는 동기 언니의 말이었다.


‘나는 우리ㅇㅇ이가 언젠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 하지만 우리가 함께 즐거워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면 괜찮아져.’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라는 책이 떠올랐다. 종양내과 의사가 바라본 환자들에 대한 책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는 것일까. 그 삶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아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있든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 넣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들이 죽고 태어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눈 기억들, 추억들. 그 순간이 행복했으면 그래 어쩌면 그걸로 괜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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