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빙 Jan 11. 2024

[사색] 무익함의 유익함

취미의 이유


 그림은 꽤 오랫동안 나의 취미였다.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화가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화가였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수업시간, 쉬는 시간, 집에서 간간히 그림을 그렸다. 예술적인 재능은 잘 모르겠지만 나름 손재주는 있어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칭찬을 받으니 신나서 더 열심히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의 삶의 일부처럼 친숙한 일이었다.


 그림에 대한 내 마음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술을 내 업으로 삼아 오히려 미술을 미워할까 두려웠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미술은 그저 취미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림 그리는 것은 계속 좋아했다.


 언젠가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림, 조금 더 넓게 말하자면 예술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찌 보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먹고사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 그것이 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고민을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무익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생산성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유용함의 세상 속에서, 조금의 틈을 만들고 여유를 주기 때문에. 무용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것을 향유하고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비록 실용적인 의미가 없을지언정.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지 즐겁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그런데 종종 그림을 잘 그리려고 하다 보면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의 즐거움을 놓치다 보면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고 목적을 찾으려고 한다. 사실 목적은 즐거움인데 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방황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가 태어난 이상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인데, 삶을 잘 살아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행복은 사라지게 되고 자꾸만 삶의 목적을 찾게 된다. 삶의 목적은 행복인데.


 그럴 때면 다시 그저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삶 자체를 즐겨야 하는 것 같다. 잘하려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자체로 목적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색] 불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