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웠던 나의 바깥이, 안으로 굽을 용기를 가진 순간
언젠가부터 여유롭다는 말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여유롭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말에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책과 함께 아침부터 사색에 빠지는 일. 마치 ‘여유’라는 단어가 스스로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한 문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장면보다 늘 바쁜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더 많이 느꼈다. 매시간과 매분을 잘게 쪼개 하루의 틈에 끼워 넣고, 빽빽해진 계획표를 따라 숨 가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모순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단단한 여유를 발견하곤 했다. 그 이유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답은 지하철역에서 문득 찾아왔다.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마지못해 발을 옮기는 얼굴이 아니라, 당찬 걸음으로 자신의 하루를 밀고 나가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고생하는 몸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단함을 가장 멋진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아도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지 훤히 그려질 만큼.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고생하는 몸을 가진 사람의 눈은 반짝인다는 사실을. 그 반짝임은 소모되어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몸을 써서 얻어낸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내는 빛이었다. 그들에게 에너지는 마모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라는 이름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항상 여유가 고팠던 나는, 그들을 보며 하나의 결심을 했다. 시간을 더 잘게 쪼개고, 그 쪼개진 시간만큼의 에너지를 욕심껏 모아보겠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나를 위한 일들을 그 틈 사이에 하나씩 다시 끼워 넣겠다고. 바빠져도 괜찮았다. 그 바쁨 속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결국 여유라는 얼굴로 드러난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에너지를 열심히 축적하며 천 걸음을 걷는 동안, 나는 내 방 안에서 열 걸음도 걷지 않은 날이 있었다. 일어나 있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날도 적지 않았다. 여유는커녕 에너지는 바닥이 되고, 더 피곤해지고, 마음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과거에 머물 이유는 없어진지 오래다. 결국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들을 지하철역에서 본 순간이, 나에게는 ‘매서웠던 나의 바깥이 안으로 굽을 용기’를 가진 순간이 되었으니까.
나는 그걸로 됐다.
그렇게 나의 바깥은 조금씩 안으로 굽어갈 테니까.
한없이 굽은 여유가, 한없이 쌓여가는 에너지가,
나는 슬며시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