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늘 물건보다 빠르게 마음을 불러온다. 어떤 것을 바라보는 순간, 기억이 먼저 도착하고 감정이 그 뒤를 따른다. 애정은 사물의 형태를 빌려 커지기도 하고 아득히 덜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방 한켠에 놓인 인형이 되기도 하고 창문에 붙여둔 뽁뽁이 한 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조금 놀랍다.
이단으로 된 책상 맨 꼭대기에는 크고 작은 인형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 못생기고 꼬질꼬질한 곰인형 하나다. 어린 날의 내가 인형이라는 걸 처음으로 선물 받아본 날의 인형이다. 그날의 계절도, 입고 있던 옷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만은 선명하다.
어느 지하철역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 한쪽 벽에 기대어 인형을 팔고 계시던 노인분의 모습과 비닐에 덮인 채 가지런히 놓여 있던 인형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그 곰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로 조르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더 오래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알았는지 망설임 없이 그 곰인형을 집어 계산했다. 그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또렷하다. 세상이 갑자기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해진 것 같았다.
집에 가는 내내 그 곰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혹시라도 다시 누군가 가져갈까 봐. 아니면 이게 꿈일까 봐.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곰인형은 내 침대 위, 내 머리 바로 옆에서 잠을 잔다. 솜은 조금 죽었고 색도 바랬지만 여전히 내 하루의 끝을 함께한다.
나는 아마 그 곰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날의 아빠를, 그날의 나를,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을 알아주던 순간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 테다.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 곰인형인 주제에, 얽힌 감정과 기억은 가장 많이 끄집어내는 맹수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기억이 튀어나와 결국은 그 맹수를 사랑하게 만들 만큼 애정의 크기를 키워버린다. 이 감각은 옷에도, 가방에도, 향수에도 내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사물에 스며 있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대청소 날이 와도 사물의 배열과 청결함만 챙길 뿐, 그들의 무쓸모까지 챙겨주지는 못한다. 무쓸모에도 기억이 얽혀 있는 한, 애정은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옷장에도 옷이 넘쳐나고 책상 곳곳의 서랍에도 물건이 넘쳐나지만 나에겐 그게,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한 흔적들이다.
곧 이사를 간다. 빈 공간을 떠올리며 설레다가도, 내 기억 상자까지 텅 비워버릴까 봐 조금은 두렵다. 기억이 애정을 덜어내는 사물일지라도 나름의 애증 같은 애정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버려낼 수가 없다. 버려내는 대신 더 깨끗이 보관하고, 한 번 더 돌아서서 챙겨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