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둔 해피엔딩

by meldliy

예전에는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하루가 밝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안부를 묻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마음이었고 대답이 늦어져도 기다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조심스레 비켜서서 바라보게 되었다. 더 이상 묻지 않는 것들이 생겼고 묻더라도 끝까지 듣지 않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 변화 앞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라면, 그냥 내 맘대로 결말을 정해두어도 되지 않는가? 이왕이면 세드엔딩보단 해피엔딩으로. 언젠가 지워질 베겟자국이란걸 아는 듯이. 언젠가 유연해질 뻣뻣한 새 신이란 걸 아는 듯이. 그렇게 살게 되면 떠나가는 시절인연을 구태여 붙잡을 이유도, 마음을 떼어내는 중인 이의 마음을 구태여 붙여둘 이유도 없을 테니까. 더 이상 그런 일에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이 생겨버리니까.


결말을 정해둔다는 건, 포기와는 조금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다만 더 이상 모든 관계의 끝에서 스스로를 심문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애써 붙잡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알아보는 일, 놓아도 되는 마음을 제때 놓는 일. 그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차피 친했던 이와는 멀어질 운명이었다. 좋아서 골라 쥔 비누 역시 애초에 닳을 용도로 쓰여지기 위해 태어났지만, 누군가의 남다른 애정으로 열심히 사용되고, 절반이 되고, 점이 되고, 소멸한다. 언젠가는 내 손에서 전부 닳아 없어질 것이었다면. 시작부터 끝이 정해져 있던 것들이라면, 그 과정만큼은 조금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여도 괜찮지 않을까. 상처를 덜 남기는 쪽으로, 후회를 오래 붙들지 않는 쪽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에 미리 이름을 붙이는 일이 그렇게까지 무례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이라고 적어두었다고 해서 모든 장면이 환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닳아가야 할 시간도 있고 멀어져야 할 얼굴도 있을 테니까. 다만 끝을 그렇게 불러두는 것만으로도 그 사이를 지나오는 마음의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지나치게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이별 앞에서 이유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태도. 나는 그 정도의 자유를 나에게 허락하고 싶어졌다.


그 결말로 향하는 여정 동안에는, 조금은 나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을 테니까. 목욕을 마친 내가, 새 사람이 된 기분으로 앞으로를 살아갈 여유 정도는 몽땅 가져가도 괜찮을 테니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 하나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도 비난보단 옹호를 받을 테니까.